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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me Dec 30. 2020

Survive to Drive

[Netflix] Formula 1: Drive to Survive 리뷰

2010년 부터 2013년까지 4년동안,

10월의 첫주 목, 금, 토, 일은 제게 가장 가슴 뛰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2010년 부터 2013년까지 4년간 개최된 F1 Korean Grand Prix에 Race Marshal(마샬)로 참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Race Marshal (또는 Official)은 국제자동차연맹이 인정하는 모터스포츠심판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레이스의 운영을 위해 투입되는 일종의 심판입니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 레이스는 몹시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라이센스를 취득한 마샬들이 투입되고, F1의 경우 수 백여명의 마샬들과 소방관들이 투입되어 곳곳에 배치됩니다.


사족을 좀 붙이자면 저는 처음에 트랙 사이드 마샬로 코스 주변에 배치되었다가, 퀄리파잉(Qualifying, 쉽게 말하면 예선(엄밀히는 아님). 결승전 출발 순서를 정하는 경기)부터 피트 마샬(타이어를 교체하는 등의 활동이 벌어지는 그 곳.)로 전환 배치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과 2013년에는 영광스럽게도 체커기(경기 종료시 휘날리는 검정/하양 깃발)를 맡았고, 2012년에는 레이스 스타트 마샬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찰리 와이팅 경의 옆에 서서 경기를 시작시키는 감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정말 소중한 경험을 주셨던 Pit / Grid 마샬분들과 위원장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인생의 몇 안되는 순간이었어요!!)


2013 Korean Grand Prix Official Race Edit에 나온 저. 지인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사실 저거 퀄리파잉 체커ㅎㅎ)


지금은 F1이 V6 터보 엔진을 쓰지만, 당시 V8 N/A (자연흡기)엔진을 썼었는데요, 저는 그 당시 처음 들었던 그 고막이 나갈 것 같은 F1 머신의 괴기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군비행장에도 가서 전투기가 이륙하는 것도 봤었지만,  정말 그렇게 크고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는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고막에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싱가폴에서는 일정 나이 이하의 어린이들은 F1 경기장 입장이 어려웠을 정도였습니다). 저희는 그 항공모함에서 쓴다는 그 무전기 헤드셋을 쓰고 경기를 진행했는데, 2010년 첫 경기 종료 후 이명으로 꽤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저는 F1의 강렬한 매력에 빠져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묘한 커리어를 쌓게 됩니다.


하지만 이듬해 2014년부터 V6 터보엔진으로 바뀌며 귀마개 없이도 F1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다소 실망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야 V8 엔진부터 봤다고 하더라도 V10 엔진부터 보셨던 분들은 얼마나 격세지감을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해외 경기장에 가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꽤 많은데, 그런 분들이 요즘의 차량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그리고 경기의 내용도 '기승전메르세데스'의 시나리오가 구현이 되며, 뭔가 굉장한 배틀이 진행되거나 하위팀이 세상을 뒤집어 버리는 그런 드라마틱함이 줄어들어서 점차 F1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사실, 메르세데스팀은 2010년 슈마허와 로스 브런이 뭉쳐서 팀을 창단할 때,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다수 합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도 했지만요. 그리고 2014년 메르세데스와 루이스 해밀턴의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몇 년동안 챔피언이 반복되자 제대로 권태기가 찾아왔습니다. 지인들도 "나 경기는 안 봤지만, 경기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농담으로 말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뭔가 돈이 좌우하고(늘 그래오긴 했지만), 과거에 좋은 선수들을 발견해왔던 '자우버'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등 F1이 스포츠로서 가진 의미가 점점 퇴색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사실, 저는 오래전에 루이스 때문에 F1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한국 그랑프리의 레이싱 스타팅 그리드.  보통 결승날 아침에 받았습니다. 당시 사무국장님이 챙겨주신 것!




아무튼 식어가는 그 팬심에 다시 불을 지펴준 것은 바로 넷플릭스의 'F1 : Drive to Survive' 한국어판으로 'F1 : 본능의 질주'였습니다.


우선, 이 시리즈는 예고편부터 심장을 저격합니다.

무전으로 들리는 "30 second. 30 second."


F1 : 본능의 질주 예고편 캡쳐


레이스 스타트 시작 30초 전에는 모든 팀 스탭들이 트랙 사이드로 빠지고, 그리드에는 온전히 F1 머신들과 그 것에 탑승한 드라이버들만이 남는 시간입니다. 경기 직전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하는 순간 중 하나죠.

이 때 스타트를 지원하는 피트 그리드 마샬들 역시 함께 긴장을 하는데, 경기 스타트에서 갑자기 출발을 못하는 차들이 발생하면 스타트를 위해 머신들이 엄청나게 RPM이 올라가 있는 상황에서 뒷차들이 출발을 못한 앞차를 다 때려박는 최악의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땐, 관중석도, 팀도, 레이스 마샬들도 극도로 긴장한 상황에서 오직 F1 머신의 배기음 소리와 하늘에서 중계를 위해 날아다니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만이 5.615km의 영암 F1 경주장을 메웠었습니다.

고작 2분이 채 되지 않는 이 다큐멘터리의 예고편은 2019년 출근길 지하철에 낑겨있는 저를, 레이스 스타터를 했던 2012년의 저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2012년의 F1 스타트 포스트. 레이스 디렉터인 찰리 와이팅 경은 저 액정에 TV도 틀어주셨습니다ㅋㅋㅋ


소름끼치는 머신들의 괴기음, 시끄러운 타이어 교체소리, 경기장을 지배하는 타이어 타는 냄새.

천분의 1초를 다투는 레이스팀과 죽음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터뷰하는 드라이버들.

그리고 매년 변경되는 기술규정을 따라가며 공부해야함에도 열심히 따라다니며 열광하는 팬들.

F1의 매력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인 것 같습니다.




'F1 : 본능의 질주'의 구성은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욕심많은 크리스찬 호너 형의 Redbull 레이싱의 엔진 구걸 스토리는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는데, 역시 듣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는 꽤 달랐습니다.


그리고 특히 몹시도 비극적이었던 2014년의 F1, 일본 그랑프리를 재조명해주었던 부분(시즌 1, 8편)이 역시나 깊은 잔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지인들과 함께 단체로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친한 몇몇의 지인들은 스즈카 서킷으로 직관을 가서 경기를 관람중이었기 때문에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분다." 등의 카카오톡도 끊임 없이 오가고 있었죠.


그러나 직관을 갔던 지인들이 '많은 돈을 내고(F1 티켓 가격은 어마어마합니다) 일본까지 간 만큼 경기를 하면 좋겠지만, 트랙 컨디션이 워낙 좋지 않으니 경기를 미루거나 취소해야할 것 같다'는 우려섞인 이야기도 전해지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F1 머신은 바람과 트랙 노면에 몹시 민감하기 때문에 태풍상황에서 경기를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 아니냐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경기는 강행되었고, 결국 사고 상황에서 사고처리를 하던 중장기에 쥴스 비앙키의 차량이 부딪히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여전히 착잡하고 안타까웠던 그 사고는 이후 레이스의 많은 안전 규정을 변화시키며 많은 드라이버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얼마전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큰 화재사고로 이어진 로맹 그로쟝의 사고도 F1 차량의 서바이벌 셀이 얼마나 튼튼하고 잘 만들어져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하는 헤일로(Y자 모양의 안전장치)는 처음엔 미관상 좋지 않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다수의 드라이버의 생명을 지켰고, 그로쟝 역시 사고 후 '헤일로의 도입은 F1의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끔찍했던 사건이었지만, 그로쟝은 정말 다행히 손에 화상을 입었을 뿐 무사히 스스로 걸어나왔습니다.  


* 로맹 그로쟝의 사고 영상 (출처 : F1 공식 Youtube 채널)




시즌 2는 드디어 페라리와 메르세데스의 인터뷰도 추가 되었고, 젊은 드라이버들간의 치열한 순위 싸움이 꽤 볼만 했습니다. 특히, 피에르 가슬리는 1군 팀인 레드불의 드라이버였다가 다시 2군 팀인 토로로쏘(현재 '알파타우리')팀으로 방출되며 이를 갈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그 드라이버는 결국 올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포디움(시상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젖어 홀로 앉아있는 명장면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팀 알파타우리는 이탈리아 팀이기 때문에 그들의 본진인 몬짜에서 우승을 한 것은 실로 괄목할만한 일이었죠. 가슬리는 매일매일 하루하루 꾸준히 노력해서 이 결과를 얻은 것 같다고 인터뷰 했는데, 팀을 방출당하던 그 순간이 'F1 : 본능의 질주'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어서 가슬리의 우승 이후, 그 편을 다시보기도 했습니다.

피에르 가슬리 우승 인터뷰 (출처 : F1 공식 Youtube 채널)


저는 올해 3월에 돌아올 시즌 3이 몹시 기대됩니다. 

그 이유는 1.코로나 19라는 사상 최대의 변수로 시즌이 늦게 시작했고(유럽과 중동에서만 그랑프리가 진행됐습니다), 2.새로운 드라이버들과 새로운 팀의 활약, 3.중위팀의 선전(레이싱 포인트, 맥라렌, 알파 타우리), 4.맥라렌의 부활, 그리고 여름 방학이 없어서 5.머신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촉박한 상황과 페라리의 부진 등으로 매번 역대급 경기를 갱신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이 코로나 확진으로 결장하면서 메르세데스의 1st 드라이버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이 자리에 메르세데스의 팀 프린서플인 토토 볼프가 자신이 매니징 하는 드라이버 조지 러셀(윌리엄스팀)을 꽂아버리면서, 조지 러셀이 메르세데스 드라이버로 그리고 그의 빈자리는 한국계 혼혈인 잭 에이큰(한국명 : 한세용)이 차지해 실질적으로 한국계가 처음으로 F1 시트에 앉은 날이 되었습니다. 물론 조지 러셀이 중간에 실수하며 리타이어 하는 바람에 또 하나의 명장면을 남겼고, 많은 드라이버들과 팬들이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분명 이런 것들도 내년 3월에 새로 나오는 다큐에 담기겠죠? 으하하) 페라리는 엔진 무슨 게이트가 있어서 갑자기 다른 팀보다 훨씬 엔진출력이 낮아졌고(이것도 레드불팀이 목숨걸고 찔렀다는 후문), 귀여운 외모의 드라이버들로 은근히 콘텐츠 뽑아내는 재미를 보았던 맥라렌팀은 팬들이 "Believe in Mclaren" 해시태그를 걸며 주문하고 응원했던게 효염이 있었는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3위로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맥라렌 드라이버 중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일명 '칼사쥬', '산쥬')는 올해 6위한 페라리팀으로 눈물을 머금고 이적을 했습니다.


게다가 2021 시즌 드라이버들의 계약 상황도 꽤나 흥미진진 했습니다.

Haas팀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그로쟝과 바이킹의 후예 마그누센을 팽하고 황제 슈마허의 아들 믹 슈마허와 마제핀을 자신들의 시트에 앉혔습니다. 마제핀의 경우 여러가지 왈가왈부가 많았는데(분노하는 팬들이 좀 있었던), 막대한 불곰국 자본의 유입(무려 러시아 화학회사)을 위해 팀에서 내린 결정이었고, 믹 슈마허의 경우 아버지 마이클 슈마허의 스폰서들을 다 데리고 오다보니 Hass가 군침을 안 흘릴 수가 없었던 거죠. 아들을 위해 팀을 샀던 부자 아빠팀 '레이싱 포인트'는 에스턴 마틴을 F1에 합류 시켜 팀명도 '에스턴 마틴'으로 변경하고, 페라리의 드라이버이자 F1 4회 챔피언에 빛나는 세바스찬 베텔을 영입하며 2021년의 판을 키웠습니다.


자, 이전 시즌 1과 시즌 2도 재미있었지만 앞으로의 시즌들도 몹시 기대가 되는 'F1 : Drive to Survive' 한국명 'F1 : 본능의 질주'!!! 거센 풍랑과도 같았던 2020년도의 F1 이야기를 기다리며, SNS를 통해 머신 개발 과정이나 드라이버들의 다이어트 소식을 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상황이 나아져서 하루 빨리 시즌이 정상화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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