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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리셋코치 Aug 27. 2020

집안을 헤집고서야 깨닫다

지구에 얹혀사는 주제란 걸...

작년 11월 언제쯤, 계획에 없이 갑자기 집안 구석구석 다 헤집어 물건 정리를 했다.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일 벌일 때 다소 즉흥적이라 그날도 그렇게 시작됐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참고로 난 잘 어지르지 않는다. 그러니 치울 일도 없다. 불시에 손님이 온다 해도 허둥지둥 보이지 않는 곳에 물건을 숨길 필요가 없다. 설거지거리가 나오면 바로 해치우고, 자고 일어나자마자 침대 정리를 하고, 화장실 청소는 샤워하다가 후다닥... 결벽증이라기보다는 고된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 소일거리로 끝날 수 있는데 묵혔다가 땀 흘리는 노동이 되는 걸 피하려는 거다.  나의 체력 보존 제1법칙, 10분이면 될 걸 1시간짜리로 만들지 말자!!

그런 내가 이틀간 쉼 없이 노동을 했다. 쉼 없는 노동에는 일을 크게 만드는 나의 기이한 정리정돈 성향도 한몫했다. 난 물건들을 모두 꺼내 난장판을 만든 후 다시 위치 선정을 한다. 깔끔했던 집안이 삽 시에 아수라장이 됐다. 벌여놓긴 했는데 한숨이 먼저 나왔다. 일단 벌이면 끝장을 봐야 하니 밤늦게까지 이어질 체력전이구나 직감했다. 


버리기 아까워 뒀던 예쁜 포장 상자들부터 왜 샀는지 모르겠는 다양한 소품들, 나한테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생소한 아이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작은 방 벽장, 베란다 서랍장, 보일러 다용도실.. 정말 숨겨진 수납공간의 아이러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어떻게 그리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는지.. 앞쪽을 정리하니 뒤에 숨어 있던 아이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우선 나눔 할 것들을 따로 골라냈다. 누군가 받았을 때 기분 좋을 정도로 상태 좋은 아이들로만.. 몇 번 사용하지 않은 각종 식기류, 텍도 떼지 않은 옷들, 누군가에겐 필요할 예쁜 소품과 팬시 제품, 방석, 쿠션, 포장도 뜯지 않은 각종 영양제들까지.. 상태는 좋지만 중고로 내놓기도, 누구 주기도 애매한 가전제품은 그냥 버리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하는 가전제품은 사는 게 아니었다. 가습과 공기 청정 기능이 함께라는 달콤함에 샀다가 사용하는 내내 후회만 했다.  

멀쩡한 아이들을 골라내고도 일반 쓰레기 종량제 봉투로 들어갈 아이들이 산더미처럼 나왔다. 이사 갈 때나 사용하는 100리터짜리 봉투가 순식간에 가득 쌓였다. 밤에 그 무거운 봉투를 질질 끌고 버리러 나가는데 괜히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집안은 다시 깨끗해졌다. 예전과 달리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모두.. 근데 기분이 썩 좋지를 않았다. 노동을 끝내고 힘은 들지만 그래도 결과물에 뿌듯했던 예전의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죄지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지도 못하는 예쁜 쓰레기들을 얼마나 많이 키우고 있었는지... '지구야 미안해! 얹혀사는 주제에 내가 그동안 너무 못할 짓을 많이 했구나!' 나의 불필요한 물욕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그리고, 아홉 달이 지났다. 그때 이후 집에 새로 들인 물건은 하나도 없다.  

대단한 결심을 해서가 아니다. 나의 한심함에서 비롯된 당시 잔상이 꽤나 강렬했나 보다. 참고로 난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필요한 건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몇 번의 이사로 세간살이가 늘어나며 필요한 건 다 갖췄다. 더 이상은 욕심이란 걸 잘 안다. 


모든 사람들은 수납공간을 필요로 한다. 오피스텔처럼 평수가 작을 경우 매우 쓸모 있는 효자 공간이다. 숨은 수납공간, 지나치기 쉬운 수납공간 노하우, 수납공간 인테리어, 계단 아래 수납공간 등, 감추기 위한 공간이 미덕인 시대다. 신규 건축 아파트도 얼마나 많은 수납공간을 갖추었느냐가 입주자들의 관심사항 중 하나다. 아파트 인테리어 요청 시에도 중요시하는 항목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수납공간은 때로는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정리 정돈이 잘되지 않는 사람이 물욕까지 갖췄다면 그 공간이 채워지는 건 시간문제다. 감춰진 공간이 많을수록 내가 모르는 물건이 쌓일 확률이 높아진다. 과연 우리에게는 정말 수납공간이 부족한 걸까? 저 구석에 박혀있는 이름 모를 아이는 내가 1년 안에 확실히 사용할 물건인가? 그때 일을 계기로 결심한 게 있다. 불필요한 수납공간을 애초에 만들지 말자...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간은 60%만 채우자!! 비움의 미학... 여백의 미.


*이미지 출처 (타이틀 이미지 제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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