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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리셋코치 Aug 20. 2020

근육이 빠져나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준 유산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 난 몸짱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마른 비만에서 잔근육질 건강 체력으로 거듭나기 위해 주 4회 빠지지 않고 성인발레와 필라테스 클래스를 다녔다. 그렇게 2개월이 되어갈 무렵 팔과 허벅지에 살짝 근육 라인이 잡혔다. 몸도 예전보다 탄탄해진 것 같아서 나름 만족감이 생기려던 찰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벌어졌다. 2회 남은 발레는 그렇게 자동 종료됐고..... 당시 한 달 넘게 남아있던 필라테스는 우선 연기 신청을 했다. 상황이 괜찮아지면 다시 시작하려 했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게 될지는 몰랐다.


클래스라는 강제적 상황하에서만 겨우 솟는  나의 의욕이 홈트라는 자발성 백 프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가능하리란 건 애초부터 불가능이었다. 난 운동만큼은 자기 주도성이 결여된 사람이다. 특히 실외가 아닌 실내는 더욱 그렇다. 책상에 붙어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끼니때를 놓치기 일쑤였고.... 움직임이 없어지면서 에너지 소모가 줄어 그런지 없던 식욕이 더 떨어졌다. 덕분에 '확 찐자'가 아닌 '빠진 자'가 되었지만 문제는 더 떨어진 체력과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근육이다.

팔뚝살은 모찌인형보다 더 말랑말랑해졌고.... 발레로 인해 생겼던 앞 허벅지 근육이 빠져나가며 경계선이 더 분명해졌다. 살이 움푹 파인 것처럼 양쪽 모두 같은 위치에 뭔가 뚜렷한 라인이 생겨서 처음에는 정말 깜짝 놀랐다. '나이 들면 살이 움푹 파인다더니 이게 그 현상인가?'싶어 거울에 비춰보고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었는데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위치가 정확히 앞 허벅지 근육라인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만 있으니 운동부족이 남긴 영광스러운 자국이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오밤중에 집 앞 한강으로 갔더니 한강 나들목 입구가 막혀있다. 무슨 공사란다. 어쩜 이리도 나쁜 쪽으로만 상황이 딱딱 맞어떨어지는지.... 결국 도로변만 돌다 예상했던 강바람 대신 더위만 먹고 돌아왔다. 운동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백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운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열 가지가 채 안되니 늘 후자가 전자에게 밀린다. 거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너무나 그럴듯한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5월에 연기했던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하려던 찰나 이태원 사태가 터졌고.... 장마가 끝나니 다시 서울 확진자 폭발이다.


빠져나가는 근육보다 더 무서운 건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나 상황에 대해 점점 무신경해지는 나 자신이다. 외출은 삼가고 있고 나갈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며 근래는 카페도 가지 않는다.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지킬 건 지키고 있지만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야'하던 걱정과 우려의 감정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 확실히 3월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의 감정까지 현실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는 생각까지 든다.


정말 적응해서 그러려니 하고 무신경해진 걸까? 아니면 상황이 길어지니 마음이 지쳐 무기력해진 걸까? 답이 무엇이든 둘 다 바람직한 상황이 아님은 분명하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근육처럼 마음의 근육도 빠져나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몸이 무기력해지니 마음까지 무기력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몸을 움직여야 할 때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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