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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리셋코치 Jan 24. 2021

고양이를 못 키우는 게 정말 알레르기 탓일까?

책임감이 두려운 건 아니고?

몇 년 전부터 고양이 입양을 생각으로만 담고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포기한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캣맘 활동을 하고 있어 유기묘 입양을 고민했었다. 가끔 친구가 보내주는 고양이 사진이나 인스타그램 냥이들을 보고 혼자 실실거리며 웃곤 한다.


못 키우는 이유가 있냐고?? 표면적인 이유는 있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 예전에 본가에서 살 때 14년간 강아지를 키웠을 때도 수시로 알러지성 결막염과 비염으로 약을 먹곤 했었다. 가끔 친정에 오는 언니는 나보다 한 술 더 떠 눈 알레르기는 물론이고 천식 증상까지 있었다. 아예 천식 호흡기를 본가에 두고 간혹 불곤 했는데 사실 결혼 전에 몇 번 파양 된 강아지를 상의도 없이 불쑥 집으로 데려온 장본인이 언니였다. 누구보다도 동물을 사랑하는 엄마였지만 근심 어린 표정으로 황당해하며 강아지를 빤히 쳐다보셨던 당시 엄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단지 예뻐한다고 키우는 건 무책임한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 분이었다.


계획된 입양이 아닌 갑작스러운 인연이었지만 깜치는 우리 집안의 예쁨 받는 막내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14년간 함께했다. 알레르기나 천식 등의 불편을 감수할 만큼 우리 집안 식구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았다. 물론 귀찮은 치다꺼리를 매일 해야 했던 건 밥 엄마인 울 엄마였지만....

14년을 키웠지만 온전히 내 책임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늘 집에는 엄마가 계셨으니까. 개를 키우는 동안 온 가족이 다 같이 가는 여행도 단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가족여행 후 개 호텔에 맡겼던 깜치를 찾으러 갔는데 몇 시간 동안 가족들도 못 알아볼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는 걸 확인한 후로는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자신이 버려졌다 생각했던 건지 처음에 우리를 못 알아보곤 미친 듯이 짖어댔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었는지 오줌까지 지리며 반가워 오랫동안 깽깽거렸다.


그때 놀랐던 기억의 잔상 때문인지 그 이후로 온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아무도 그러자 약속한 적 없는 그냥 무언의 합의였다. 2번이나 파양 당한 후 운명처럼 우리 집의 막내가 된 깜치... 강아지 때의 그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었던 걸까? 그래서 1박 2일 동안 자신이 또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그 모습은 우리 가족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후 난 독립을 했기에 가끔 주말에 들려 강아지와 놀곤 했다.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지 본가에서 살았던 때보다 알레르기는 더 심해져 엄마는 가끔 들리는 딸들을 위해 늘 상비약을 구비해 두셨다. 엄마, 언니와 시내에서 종종 만나 영화나 공연을 본 후 어둑해질 무렵이면 엄마는 강아지가 어두운 걸 무서워해서 걱정된다며 서둘러 돌아가시곤 했다.


키우다 보면 알레르기쯤은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가 이길거란 걸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책임감 인지도 모른다. 14년간 키웠다지만 나의 역할은 단지 예뻐하는 거였다. 그 외의 귀찮은 일의 80% 이상은 모두 엄마 몫이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들인다는 게 얼마나 큰 책임감을 요하는 일인지 잘 알기에 난 선택의 순간에 항상 머뭇거린다.


오래전 겨울에 마트서 사온 시금치를 씻다가 민달팽이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봄, 여름이면 아파트 앞 화단에 놔주었겠지만 하필 겨울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인터넷에서 민달팽이 키우는 법을 찾아 얼마간 키웠다. 상추도 넣어주고... 분무기로 유리병이 마르지 않게 수시로 물도 뿌려주고.... 상추를 먹고 나면 몸이 두배로 뚱뚱해지고.... 초록 똥도 싼다... 어찌나 잘 먹는지.... 미물이지만 신기하기도 하고... 나름 귀찮음을 감수하고 꽤 오랫동안 신경을 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야근이 잦아지면서 하루 정도 물을 뿌리는 걸 잊어버리고 출근을 한 거다. 10시 넘어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유리병 안에 민달팽이가 보이질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눈을 떼굴떼굴 굴리며 정신없이 안을 살폈다.


'설마... 설마.... 저건 아니겠지?'


병 한쪽에 붙어있는 작은 티끌 같은 검은 게 보였다. 우리 달팽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티끌 같아 보였기에 애써 부정하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몸이 굳고 쪼그라들어 티끌처럼 보였던 거다. 앞 화단에 묻어줬다. 죄책감이 들었고.... 그 기분이 몇 개월간 지속됐다.  

자의든... 타의든....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미물도 그러한데... 하물며 반려동물이야 말해 뭐할까?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선택됐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죽을 때까지 책임질 것이 아니라면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고민 없이 반려 동물을 들이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일단 입양하면 내가 분명히 최선을 다할 거라는 걸 안다. 다만 그 최선이 나의 선택에 대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될까 봐 두렵다.


내가 고양이를 못 키우는 건 알레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레르기는 그냥 핑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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