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 4세대와 컴퓨터의 관계 복잡한 이야기.
iOS 13.4와 함께 공개된 아이패드 프로 4세대. 이번에도 애플의 컴퓨터 디스는 어김없었는데, 무려 제품 슬로건부터가 "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라고 선언했으니, 앞으로 애플이 아이패드라는 제품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갈지는 물 보듯 뻔한 이야기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대중들을 위한 컴퓨터로 자리매김하고자 시작한 건 팀 쿡 체제가 들어서고 나서인데, 전설의 "What's a computer?"광고를 시작으로, 아이패드 프로급 라인업에서는 꾸준하게 이와 같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현재로써 애플이 제시하고 있는 아이패드 라인업이 컴퓨터를 대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하고, 가격 정책이 필요한 수요마저도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iOS는 여태까지 누구보다 훌륭한 태블릿을 위한 OS였고, 지금에 와서도 압도적인 태블릿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팀 쿡 체제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기능적 차이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아이패드에 멀티태스킹이 들어간 시점이 이때쯤이다.
iOS 12에 와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iOS와 iPadOS를 비록 네이밍뿐이라도 별개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iOS 13부터는 아이패드용 매직 키보드 액세서리와 함께 트랙패드 지원이 추가됐다. 비록 아직 아쉬운 점이 매우 많지만, 말로만 "우리 제품은 컴퓨터를 대적할 수 있어요!"라고 백날 외치던 애플이, 이와 같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 게 의외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애플의 가장 맘에 드는 점이라고 한다면, 기능 도입이 늦더라도, 한번 도입하기 시작하면 정말 제대로 한다는 점인데, 이번 트랙패드 지원도 꽤나 창의적으로 지원했기에 더더욱 감명이 깊었던 것 같다. 정확하게는 이것뿐만이 아니라, 2019 ~ 2020년은 애플에게 있어서 "당연한 걸 하는" 년도다. 오랫동안 유저의 피드백을 듣지 않고, 본인들 맘대로 제품을 만드는 애플에게 있어서, 유저들이 원했던걸 해준다는 건 의미가 크다.
칭찬은 여기까지고, 앞으로 언급할 내용은 애플이 풀어가야 되는 문제들로 첩첩산중이다. 일단 트랙패드 지원은 좋다고 치겠다만, iPadOS는 근본적으로 터치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OS다. 즉슨, 마우스 및 트랙패드와 같은 액세서리를 통한 인풋을 받도록 설계한 OS가 아니라는 거다.
대표적으로 터치 기반 OS에 마우스 인풋을 거지같이 만들어서 실패한 OS를 꼽자면, Windows 8 & 8.1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무엇보다 터치에 걸맞은 큼지막한 UI와 제스처를 이용한 컨트롤을 기존의 마우스 시스템에 넣는 건 어색한 워크플로우(Workflow)를 생성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비효율성이 동반된다.
애플도 아이패드에 트랙패드 및 마우스 지원을 추가할 때 꽤나 고심을 한듯한데,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고자 여러 가지 조치를 해뒀다.
가장 큰 혁신이라고 한다면, 애플은 이번에 터치를 고려한 UI에 커서가 잘 어울리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반응형 커서를 새롭게 선보였다. 기존의 화살표 모양의 커서가 아닌, 동그란 모양의 커서에서 선택한 요소에 맞추어 모양이 바뀌는데, 꽤나 신박하면서 괜찮은 아이디어다. 오히려 맥 OS에도 개선해서 들고 와 줬음 할 정도로.
그 대신 제스처가 많이 동반되는 OS라 그런지, 어색한 워크플로우에 대한 개선은 시원찮게 내놨다. 사이드에서 앱을 불러오는 제스처나, 독(dock)을 꺼내는 제스처는 트랙패드로 사용하기 어색할 정도지만, 마우스를 사용하기에는 분노를 유발할 정도로 형편없다.
아이패드에서 문서 작업을 하거나, 뭔가 생산성을 요구하는 전문적인 작업을 할 때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는 거다. 아이패드가 노트북보다 저렴하다면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저렴한 것도 아니라서 더더욱 불만이 가중된다.
터치로 세밀한 작업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아이패드는 이러한 세밀한 작업을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하드웨어는 충분하다, 소프트웨어가 준비되지 않았을 뿐.
(이와 관련된 내용을 별도의 영상으로 내놓을 예정입니다.)
모든 것은 제마다 값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실제로 판매되는 가격이 있고, 제품을 사용하면서 고객이 느끼는 물건의 값어치도 있다. 전자와 후자의 거리감을 두고 우리는 이걸 "가성비"라고 부른다. 3만 원짜리 제품을 구매할 때, 3만 원어치의 값어치를 하느냐?라는 간단한 문제다.
애플은 아이패드의 적절한 값을 책정하고 있는가?
애플이 현재 제시하고 있는 아이패드의 라인업은 총 4가지다. 최상위 프로를 위한 "아이패드 프로", 대중들을 위한 "아이패드 에어", 학생과 저렴한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냥) 아이패드" 그리고 조그만한 "아이패드 미니".
가격은 각각 103만 원대부터 50만 원대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데, 왜 애매하다고 했을까? 본질적으로 컴퓨터로써 제 구실을 그나마 할 수 있는 제품이 "아이패드 프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미니와 일반 아이패드는 일단 애초부터 휴대용 컴퓨터를 대체하라고 나온 제품도 아니고, 애플도 그럴 생각이 없으니 배제. 가장 대중적인 아이패드 라인업인 "아이패드 에어"의 가격은 시작가 63만 원이라는 꽤나 준수한 가격을 제시하고 있지만, 64기가와 256기가 용량 옵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패드 에어는 애플의 독자 규격인 라이트닝을 사용하고 있어서 USB를 사용하기에 제약이 심하고, 64기가가 부족한 유저는 256기가 옵션밖에 없어서 가격이 83만 원까지 치솟는다. 상처에 소금을 더하는 이야기겠지만, 아이패드로써의 제 구실을 위해서 "애플 펜슬 (1세대)"가 12만 원, 컴퓨터를 대체한답시고 키보드도 없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스마트 폴리오 키보드" 20만 원을 추가하면, 63만 원이던 제품이 실제로 결제할 때는 95만 원이 되는 셈이다.
애초에 컴퓨터를 대체한다고 해놓고 키보드가 없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만약 애플 펜슬을 구매하지 않을 거라면 컴퓨터를 대체한다고 아이패드를 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100만 원이면 웬만한 하이엔드 노트북을 구매하고도 남는다.
그러면 아이패드 프로는 어떤가?
그나마 USB-C를 유일하게 채택한 아이패드지만, 가격이 103만 원부터 시작이고, 트랙패드를 포함한 매직 키보드가 39만 원에 별도 판매로 진행된다. 키보드만 사도 142만 원이고, 이 가격이면 맥북 에어 라인업에 범접하는 가격인데, 과연 노트북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이패드 프로를 살까?
물론 아이패드만 할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애플 펜슬을 통한 필기를 할 수 있고, 좀 더 가볍고 융통성 있게 아무 곳이나 사용할 수 있다. 근데, 필기를 하고자 한다면 17만 원짜리 애플 펜슬이 필요하고, 더 가볍고 융통성 있는 작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컴퓨터에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투자하진 않는다.
애플은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을 제시하면서, 아이패드는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가능성을 가진 제품이라고 홍보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2020년에 선보여지는 아이패드는 충분히 컴퓨터를 위협할 수 있는 제품이고, 대중들이 컴퓨터로써 사용하기에 충분한 제품이기도 하다.
근데 가격에서 모든 것이 틀어진다. 확실히 애플이 아이패드를 통하여 제시하는 경험은 컴퓨터를 위협할 수 있지만, 애플이 아이패드를 통하여 요구하는 값어치는 컴퓨터보다 높다.
컴퓨터보다 낮은 경험을 제공하고,
컴퓨터보다 높은 값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애플이 말하는 "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근데 그게 100만 원짜리 아이패드는 아니다. 설령 소비자가 아이패드를 구매했더라도, 컴퓨터의 대체가 아니라, 그저 아이패드가 필요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