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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릭리 Mar 30. 2023

고객사가 쓰는 협상전략

나는 정말 고객사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항상 돈을 승인해 주는 과정에 있어서 갑질이란 갑질은 총 동원해서 협상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기분 나빠할게 아니라 이건 배워야 되는 거 아닌가? 고객들은 고객 회사 입장에서 우리 을을 이렇게 쥐어 짜내서 이익을 취하고 있고 내부에서는 인정받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같이 일하고 있는 고객사의 추악한(?) 협상 전략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단 고객사가 협상에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같은 을이 납품 물량이 끊기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대안이 없다는 걸 고객사도 안다. 그러니 협상이 될 리가..


첫 번째 고객사가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윗사람을 파는 거다.

"우리 팀장님한테 물어보고 알려드릴게요."

"우리 팀장님께서는 이 금액 이상은 협상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팀장님께서는 이 부분을 더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팀장님께서는..."


그놈의 팀장, 팀장.. 또는 상무님을 자주 판다. 그렇게 하면 본인은 일단 그 자리에서는 그럴듯한 핑계가 생기는 거다. 우리 같은 을은 팀장이나 상무가 그 자리에 없으니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결정권자가 그 자리에 없는데. 그렇다. (사실 하도 듣다 보니 핑계라는 걸 안다. 그저 이 자리에서 불리한 포지션에 놓이길 원치 않은 일시적인 핑계라는 걸) 고객사들은 그렇게 남 핑계를 대며 불리한 협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 입장에서는 오히려 배워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두 번째는 흠을 잡는 거다.

"음, 보내주신 견적서는 봤습니다만 못 믿겠습니다."

"이걸 보완해서 내주세요"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전 이해가 가지 않아요. 보완해 주세요"

보완보완보완.. 지겹다. 한 마디로 뺑뺑이를 돌리는 거다. 흠이 없어도 기적의 논리를 내세우며 끝까지 흠을 잡는다. 그 흠을 보완해서 들고 가면 다시 다른 곳에서 흠을 잡는다. 아마 코멘트를 할 때 여러 개가 있어도 한 번에 코멘트를 하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 같다. 상대방이 그만큼 시간을 많이 투입하게 해서 지치게 하는 전략인 것 같다. 허브코헨의 <협상의 기술>에서도 상대방이 협상에 아쉽도록 유도하려면 시간을 많이 투입하도록 한다. 즉, 이런 것이다. 이 만큼 내가 시간을 투자했는데 이제라도 협상해야지 하면서 협상 위치에서 불리해지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른 경쟁사 사례를 들고 와서 네고하는 거다.

"다른 곳은 이 가격에 판매하던데요? 여기는 왜 이렇게 비싸죠?"

우리 회사가 납품하는 가격이 있는데 뜬금없이 가장 저렴하게 샀던 과거의 단가를 가져와서 협상한다. 물론 그건 옛날 가격이고 요즘은 원자재 가격이 이렇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하면 다시 첫 번째 전략으로 돌아간다. 우리 팀장님은 이 가격 아니면 협상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저한테는 권한이 없습니다. (이쯤 되면 직장생활 그만두고 싶어 진다)


네 번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략이다.

"잘 모르겠네요. 전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다시 한번 자료를 준비해 주시겠어요? 제가 모자라서 그런지 이해가 안 가네요."

이렇게 결국 시간을 끈다. 그럼 상대방이 지쳐서 협상에 응하게 된다.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말이다.


사실 내가 같이 일하고 있는 이 고객사는 아마 여러분들이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그런 회사일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홍보한다. 상생협력.. 협력사와 함께 공존하는 어쩌고 저쩌고.. 사실 X소리다. 겉으로는 그렇게 홍보해서 착한 기업 행세를 하지만, 실상은 우월적 권한을 가지고 온갖 갑질을 이용해 협력사 옷을 벗긴다. 이러니 협력사는 어떻게 살겠는가?


아마 담당자는 협력사를 쥐어짜서 위에서 칭찬받고 인정받을 것이다. 회사 이익에 그만큼 기여했을 거니까. 또 그만큼 우리는 힘들어지는 거다. 이런 고객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보'를 더 많이 아는 것과 '인내심'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대안을 만드는 것. 이 고객사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만이 이 고객사와 협상하는 방법이다.


"아 고객님 그러세요? 그럼 다른 회사에서 물건 사세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이러면 조금 더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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