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장님. 흑석자이 청약 넣으세요?
+아니, 그걸 왜 넣어? 넣을 시간도 없어. 바빠 죽겠는데, 어차피 안 될 거 넣어서 뭐 하냐.
- 그래요? ㅎ
오늘 아침, 부서 과장님과 나눈 대화다. 아니나 다를까 무순위 청약으로 19세 이상 대한민국 시민이면
모두 넣을 수 있었던 6억 로또 흑석자이 청약은 59c 타입 기준으로 83만 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로 접수를 마무리했다. '21년 개포자이에 25만 개 청약통장이 몰렸다고 하는데 그 세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83만 명 중에 1. 가히 로또라고 부를만한 숫자다. 청약경쟁률이 3대 1이어도 당첨 안 되는데 선배 말대로 어차피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청약을 넣지 않는 게 시간도 아끼고 괜히 쓸데없는데 신경 안 써도 되니 이득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청약 접수를 안 한 우리 과장님은 청약에 당첨될 확률이 '0'이다. '0'에 가까운 게 아니고 그냥 '0'이다.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이 숫자가 변할 수는 없다. 죽었다가 여러 번 깨어나도 당첨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청약을 넣은 사람들은 어떨까? 그래도 될 확률은 있다. 정말 미미하지만 될 확률은 있다. 83만 대 1을 소수점으로 변환하면, 0.00000120482가 나온다. 맞다. 내가 될 확률이 그래도 0.00000120482는 있는 것이다. 0이라는 차원이 다른 숫자다. 0.00000120482는 될 수 있는 숫자이지만 0은 죽었다 깨나도 될 수 없는 숫자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내가 흑석자이에 당첨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왜냐면 내가 인생을 살며 로또 5천 원 이상 당첨된 본 것도 손에 꼽고 심지어 수없이 많이 넣어본 청약에 단 한 번도 당첨이 안 됐었으니까. 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행운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것과 문을 걸어 잠가놓는 것은 상당히 큰 차이다. 운을 바라는 건 나에게 사치일 수 있지만 적어도 운을 버려서는 안 되지 않는가. 나도 이런 행운에 당첨될 일말의 운을 말이다.
인생은 모두 본인이 만들어 낸다. 이 과장님 또한 83만 명이나 신청할 정도로 로또 청약이 당첨될 수 있는 기회를 단지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쳐냈다. 혹시 이 과장님이 당첨이 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나 또한 가능성을 열어났기에 이번 한 주는 약간의 설렘으로 기다려보려고 한다. 83명 중의 1명이 내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