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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릭리 Dec 01. 2023

연말인사철, 패자들의 회동

임원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멀면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갑질을 일삼고, 말이 안 되는 걸 되게 하라고 윽박지르고 주변사람들을 못 살게 군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되게 하라고 사람과 그와 연결된 협력업체까지 피가 마르도록 닦달한다. 내 직장터에 이런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고위 임원 지시라고 하면 무슨 일이건 하려고 달려들었고 협력사들을 힘들게 했다. 협력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원래 계약했던 일에 추가적인 일이 더 해지면 공짜로 해달라고 떼를 썼다.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닌데 말이다. 하물며 음식점에서 공깃밥을 시켜도 2천 원은 줘야 하는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이 되는가. 이때 나는 봤다. 임원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까지 추악해지고 어디까지 양심을 버릴 수 있는지 말이다. 


어느 때나 12월은 임원 인사철이다. 회사에는 누가 사장이 된다더라. 누가 본부장이 된다더라. 이번에 누구는 집에 간다더라. 수많은 찌라시가 회사 메신저, 카톡 그리고 입을 통해 퍼져 나간다. 소문의 근원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부분 이런 소문의 20% 정도는 맞지만 대부분은 틀리다. 여하튼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내가 모시는 팀장이 갑자기 바뀔 수 있고 내 신변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이번에 우리 직장에도 어김없이 임원인사가 났다. 임원에 눈이 멀어 있는 팀장은 아마 내심 기대를 많이 했을지 모른다. 임원 발표가 나면 어떻게 축하를 받아야 되지 하고 고민했을지도. 하지만, 임원 발표가 났지만 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회사에서 온 본인보다 후배가 임원을 당당하게 차지한 것이다. 결국, 사람들을 못 살게 굴며 오직 성과만을 위해 일했던 이 팀장은 목적한 바를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패배자가 됐다. 아마 이 팀장이 임원이 될 거라 생각했던 똘마니들도 많이 기대했을 거다. 내가 황금줄을 잡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임원 발표가 나니 깨달았을 거다. 내가 썩은 동아줄을 잡았다는 것을. 


임원 인사가 있기까지 김칫국을 마시고 결국 임원의 전선에서 탈락한 팀장은 자기를 믿고 따랐던 사람들을 데리고 회동을 한다. 임원에서 떨어졌으니 법카도 못 쓰고 개인돈을 써야 하지만 기분도 꿀꿀하니 엄청나게 비싼 곳으로 간다. 그리고는 한참을 떠든다. 회사가 바보라고. 내가 이렇게 일했는데 왜 내가 임원이 안 됐는지 모른다면서 말이다. 내가 아니고 왜 그 사람이 임원이 됐어야 하는지 시기질투하며 재가 잘못이 아니라 회사 잘못이라고 떠들어재낀다. 제 3자가 봤을 때는 누가 봐도 이 사람은 임원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욕심에 눈이 멀기도 했지만 본인 자신도 제대로 판단할 줄 모르니 어떻게 임원이 되겠는가. 패자들은 기억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다. 그래야, 이 꿀꿀한 기분을 날려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집에들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 마셨던 술의 지독한 숙취와 함께 깨어난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임원 되는 것 하나만 바라보고 왔는데 오늘도 출근하면 여전히 나는 만년 수석이다. 


나는 이 패자들의 회동을 보면서 느낀다. 임원은 되는 것은 운칠기삼이라고. 내가 아무리 협력사를 쪼고 사람들을 윽박질러 성과를 만들어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실력이 있고 거기에 성과를 내야 임원이 되는 게 아니라, 실력도 있고 성과도 냈는데 거기다 운이 좋아야 임원이 된다. 그러니 기대할 것이 없다. 기대하면 나만 손해다. 만약 임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본과 원칙에 맞춰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저 기다릴 뿐이다. 만약 임원이 되는 시기를 놓쳤다면, 이번생에는 안되는가 보구나 생각하면 된다. 임원 되는 확률이 몇% 인지 아는가? 1.1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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