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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릭리 Jul 21. 2022

부모님께서 어릴 적 사주신 전자피아노

애착이 생긴 물건은 팔기 어렵다 

나에겐 20년 된 전자피아노가 하나 있다. 모델명은 야마하 EX5. 내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물건이니 20년도 더 된 거 같다. 내가 지금 30대 후반이니까 말이다. 언제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는지 이제는 이 물건도 골동품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 전자피아노는 20년 전에는 전자피아노의 명기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경기도에 살 때 대전에서 이 물건을 당일 살 수 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려가 무려 380만 원을 주고 사셨다고 한다. 그때 당시로는 지금으로 치면 1,000만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을 것이다. 아껴서 생활하고 있는 살림에 저런 고가의 전자피아노를 아들을 위해 사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왜 이제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까. 어릴 때는 그저 전자피아노가 하나 생겼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비싼 것인 줄도 몰랐고 아들에게 최고의 물건을 선물하고픈 아버지의 마음도 몰랐다. 


20년이 지나 30대 후반인 나는 이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혹시나 한 번이라도 치지 않을까 싶어 혼자 사는 원룸에 피아노를 들여놨지만 젓가락 행진곡, 캐논 변주곡 조금 치다가 덮어버렸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니 먼지가 소복이 쌓이더라. 나는 원래 쓰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웬만해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역시 이 녀석도 팔아야 성이 풀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팔리겠어?라는 생각으로 중고나라에 50만 원에 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0년이 지났으니까 감가상각으로 치면 아마 가치도 없는 물건일 텐데 다른 물건도 60~70에 내놓은걸 보니 50이면 적당하겠다 싶었다. 일주일간은 잠잠했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이게 팔릴 리가..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세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람은 피아노만 살 수 있는지 물어봤고, 한 사람은 앰프만 살 수 있는지 물어봤다. 물론 안된다고 했다. 나는 두 개를 한꺼번에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두 개를 사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흔쾌희 쿨 거래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물건을 팔기로 하고 나서부터 내 마음은 요동쳤다. '아 괜히 판다고 했나.. 팔기 싫은데... 이건 아버지께서 사 주신 소중한 물건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물건과 애착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20년 동안 내가 잘 때 항상 옆에 있던 피아노였다. 물론 잘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그랬다. 그래서 그래인지 마음이 아팠고 떠나보내기가 싫었다. 이성적으로는 팔아야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팔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자피아노라고 입장을 바꿔 생각했다. 내가 전자피아노라면 어떻게 하고 싶을까? 30대 후반에 직장생활에 지친 노총각 방에 먼지만 수북이 쌓인 채 있고 싶을까? 아니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서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며 살고 싶을까? 물론 후자다. 나는 이 녀석을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모른다. 너무나도 전자피아노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렇게 입장을 바꿔서 생각했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 물건을 구매해 간 사람은 음악에 반쯤 미쳐있는 사람이었다. 집을 합주실로 꾸며놓고 여러 개의 전자피아노가 있는데 이 명기는 놓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에게 내 전자피아노가 간다면 분명 이 전자피아노는 기뻐할 것이다. 본인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리를 뽐낼 수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서 사주신 물건에는 애착이 남는다. 가격이 비쌀수록, 그리고 그게 오래될수록 더더욱 그런 거 같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차를 팔 때도 눈물이 날 만큼 가슴이 아팠다. 이 번 전자피아노를 팔 때는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팠다. 잘 가 야마하 EX5 전자피아노야. 좋은 주인한테 가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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