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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한글 교육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

엄마 말씀에 의하면 나는 한글을 다섯 살 때 스스로 익혔다고 한다.

나의 조카들은 지금 9살, 7살인데 두 명 모두 별 다른 한글 공부 없이 6살쯤 스스로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듯 언어란 많이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학년을 맡게 되었을 때 한글 수업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현실을 접해보니 한글 수업이 정말 어려웠다. 우선 60시간이나 되는 한글 수업 시수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가  문제였다. 국가에서는 아이들이 한글을 하나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라며 60시간이나 시수를 배정하였으나 이미 한글을 어느 정도 알고 오는 아이들이 80프로 이상이었고 아이들의 수준차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한글을 읽고 조금씩 쓸 수 있다고 해서 머릿속에 한글에 대한 체계가 잡힌 것은 아니었다.  모국어 환경에 노출되어 자연스럽게 습득된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말하고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60시간을 통해 머릿속에 흩어져있는 한글에 대한 지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잡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ㄱ의 첫소리는 [그] , [그]와 [ㅏ]가 만나서 [가]


아이들이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을 살펴보니 조금 이상한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가나다'의 '가', '가갸거겨'의 '가'는 읽는데 '가오리'의 가는 읽지 못했다. '가나다'의 '가'는 쓰는데 '가시'의 '가'는 쓰지 못했다.  위의 책(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을 읽은 후에야 아이들의 읽기 발달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위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나다'의 '가', '가갸거겨'의 '가'를 읽고 쓸 수 있는 이유는 한글 음절 표를 유치원 또는 집에서 공부할 때 수도 없이 읽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를 한 덩어리로 인식한다. 각각의 글자가 따로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똑같은 '가'인데도 '가시'의 '가'는 '많이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덩어리로 기억할 기회가 적어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가나다'의 '나'는 읽지만 '나물'의 '나'는 읽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이 이러한 읽기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아이들이 어떤 낱말이나 문장을 만나도 글자의 모양과 각각이 갖는 소리를 통해 읽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다수의 1학년 선생님들도 이러한 방법으로 한글을 지도할 것이다. 영어를 공부할 때의 파닉스 수업을  한글 수업에도 적용한 것이다.


우리 1학년 친구들 따라 해 봅시다.

ㄱ의 첫소리는 [그] , ㄱ+ㅏ 는 [그]+[아]

자, 우리 빠르게 발음해볼까? 그아 그아 그아 가!!!


ㄱ의 끝소리는 [윽] 아+ㄱ 은 [아]+[윽]

자, 우리 빠르게 발음해볼까 아윽 아윽 아윽 악!!!


나는 아이들이  소리값을 인식하여 한글에 대한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이런 방식으로  자음, 모음을 수업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글자를 읽다가 막혀 나에게 질문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며 아이들의 이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닥'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질문한 학생)

ㄷ의 첫소리가 뭐였지?

......

[드]였어. [드]랑 [아]를 빨리 읽어봐.

드아드아드아 '다'요.

ㄱ의 끝소리가 뭐였지?

.....

[윽]이었잖아. 그러면 [다]에 [윽]을 더하면 어떻게 될까?

다..윽 다..윽...

다윽다윽다윽 닥!! 이 글자는 닥이라고 읽는 거야.


60시간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각각의 자음이 어떤 소리값을 가지는지도 몰랐고 소리끼리 조합해서 하나의 글자를 읽는 과정도 무척 힘들어했다. 아이들이 이해를 못하니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위의 책을 읽어보니 나의 방식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대로 아이들이 이해를 잘하지 못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수업이 어려워서 서로 고생했던 시간이었다.



어려운 한글 지도, 그래도 방법은 있다.


1년 가까이 1학년 아이들을 지켜보니 이제야 어떤 식으로 한글을 지도하는 것이 좋을지 가닥이 잡혔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 또 이 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내년 학기의 수업 아이디어를 일일이 적을 수는 없으니 큰 원칙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첫째, 낱말이 덩어리가 아니라는 사실 깨닫게 하기

위에서 언급했듯 아이들은 낱말이 각각의 글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방'을 '가+방'으로 인식하지 않고 '가방'으로 인식한다.  '가방'을 '가'+'방'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더욱 발전하면 '가'는 'ㄱ+ㅏ', '방'은 'ㅂ+ㅏ+ㅇ'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기 위해선 일단 글자들을 덩어리가 아닌 개별 요소의 합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위 책에선 이러한 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자석 글자 만들기를 추천했다. 자석은 전부 자음과 모음이 흩어져있기 때문에 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글자들이 개별 요소의 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글 수업 자료는 아이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것이 가장 좋다.

교과서나 학습지에 있는 말을 배우는 것보다 아이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 아이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눴던 주제에 대해서 학습하면 아이들의 동기가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나는 내년 학기는 주제 중심으로 교과서를 재구성하여 한글 수업도 계절 교과서와 통합하여 진행하려 한다. 가정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재미있게 읽었던 그림책 등을 활용하여 그 속에 나왔던 낱말과 문장 등으로 한글을 공부하면 아이들이 흥미 있어하지 않을까 한다.


셋째,  놀이처럼 하기

위의 책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이고 나도 1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든 생각이지만 재미있어야 아이들은 잘 배운다.  그러면 한글 수업은 어떻게 놀이처럼 할 수 있을까. 먼저 말놀이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한 차시 수업을 구성할 때 무작정 읽고 쓰는 연습을 하기보다는 그날 학습할 낱말 중 몇 개를 추려 그 문장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게 한다든지, 그날 학습할 낱말과 관련한 그림책 등을 읽어주고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든지 아이들에게 충분히 말할 기회를 먼저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말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충분히 말할 기회를 주고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한 후 읽기와 쓰기의 순서대로 가면 좋을 것이다. 또한 읽기, 쓰기 활동을 할 때에도 아이들이 말한 내용과 동떨어진 것으로 학습하기보단 아이들이 말한 내용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넷째, 파닉스 식의 한글지도는 글쎄

많은 1학년 선생님들이 위에서 언급했던 파닉스 식의 지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결과 파닉스 식의 한글지도는 아이들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각각의 모양에 어떤 소릿값이 있는지 명시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아이들이 이해도 잘하지 못하고 기억도 하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소릿값을 인식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하는 것이 더욱 좋다.


다섯째, 해독 vs 독해 , 그림책

위의 책을 통해 해독과 독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해독은 문자는 읽을 수 있지만 읽으면서 내용 파악까지는 못하는 단계이고 독해는 문자를 읽으며 글의 내용까지 이해하는 단계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영어 공부했던 것을 떠올려보니 나는 해독은 할 수 있었지만 독해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1학년 아이들에게도 독해는 힘든 경우가 많다. 글을 읽어보라고 하면 문자는 읽을 수는 있지만 정작 다 읽은 후 내용에 대해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이들이 해독을 넘어 독해하는 연습을 저학년 때부터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교과서나 학습지 등이 전부 독해를 요구한다. 글자를 읽을 수 있어도 문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하루 한 문장을 읽더라도 스스로 읽어서 문장의 뜻을 파악할 수 있는 연습을 꾸준히 하려 한다. 그 방법으로 그림책을 적극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한글 교육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다


나는  사실 한글 교육과 국어 수업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일단 국어가 모국어라서 쉽다는 인식이 컸고, 수험생 시절에도 별 다른 공부 없이 언어영역에선 점수가 잘 나왔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국어는 자연스럽게 누구나 다 익힐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이 책을 통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나는 이 부분에 매우 공감이 갔다. 성인 중에서도 어려운 공문서, 대학 서적, 다소 어려운 글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살면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거나 국가 정책 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목소리를 내려면 글을 이해하는 능력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조그만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자신들을 지키고 똑똑하게 살아가려면 글만큼은 꼭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을 넘어 글 속의 생각은 물론, 글에는 직접적으로 담겨있지 않은 생각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열심히 국어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물론,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님들이 한 번쯤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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