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
인문학 바람, 독서 바람이 분지 몇 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바람을 이제야 맞고 있다. 인공지능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에이트>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저자의 이야기가 솔깃해 그 작가가 지은 다른 책들도 읽게 되다 보니 인문학,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다룬 책을 최근에 많이 읽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 교육도 결국 고전이나 철학 독서를 통해 이루자는 것이므로 이 둘을 모두 합쳐 크게 독서교육이라 칭하겠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부터 독서교육이 다시 화두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성공요인 중 하나를 인문학으로 꼽아서 일수도 있고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독서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 이유야 어떻든, 책을 읽자는 메시지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하며, 베스트셀러들로 인해 어쨌든 많은 대중들이 독서에 관심을 갖는 현상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득 <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이라는 책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10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 인물들이 어떻게 독서 교육을 받았는지 소개하고 있다. 세 명의 인물의 에피소드를 읽었을 쯤만 해도 독서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며 나의 초라한 그간의 독서 이력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사실 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어린아이도 안다. 하지만 책을 가까이 하기까지, 즉 독서를 생활화하기까지는 많은 힘이 든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와 씨름하고 성인은 새해 목표 리스트에 거창하게 독서를 계획한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아도 그 무수히 많은 학생들 중 항상 책을 끼고 다녔던 아이는 딱 한 명만 떠오를 뿐이며, 내가 교사로 근무하며 그간 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생활화하던 아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의 10명은 놀랍도록 책을 좋아했다. 환경이 좋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들은 책을 자발적으로 집어 들었고 게다가 그 어려운 고전과 철학을 척척 읽어냈다. 굉장한 깨달음과 즐거움을 느끼며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책에도 그들이 책을 집어 들기까지 부모의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어떤 환경적 요인이 있었는지 등은 나와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과정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존 스튜어트 밀의 경우 아버지가 독서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고는 하나 이 역시 온전히 아버지의 노력으로 밀이 책을 즐겼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그 어려운 책을 본인도 즐거워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아버지가 무서웠다 해도 절대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쯤 되니 의문이 드는 것이다. 과연 독서가 천재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천재여서 독서에 끌린 것인지 말이다. 또 다른 의문은 천재들이 읽었다는 독서 목록은 천재가 읽었기에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같은 독서 목록을 평범한 사람들이 읽었다면 과연 그 정도의 강력한 파급력을 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막상 <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을 읽어보니 10명의 독서 리스트를 고전으로 요약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의 독서 목록은 제각각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독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도 독서를 생활화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고 위대한 역사 속 인물들 모두가 고전을 읽은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고전을 읽고 내 아이에게도 고전을 읽힐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 간의 나의 독서에 대해 스스로 비판을 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이트>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고 그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으면서 작가의 세계관이나 가치를 내가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우리 반 학생들에게도 독서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고전도 반드시 읽혀야겠노라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번 책을 읽으며 의문을 가지게 되며 내가 이전에 읽었던 책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글들도 읽어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다.
물론 나는 내가 읽은 책들과 그러한 좋은 글과 깨달음을 준 작가님께 감사한다.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독서는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반드시 경계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인간이란, 아니 나라는 인간이란 어찌 이리 줏대가 없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 여기에 혹하고 저기에 읽으면 저기에 혹하고 이 책을 읽으면 이렇게 아이들을 교육해야지 했다가, 저 책을 읽으면 저렇게 아이들을 교육해야지 하니 말이다.
나는 이 책 저 책들을 읽으며 여러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받아들이고 적절히 조화하여 아이들에게도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스스로 단련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책이 천재를 만드는지, 정말 고전이 내 삶을 송두리 째 바꿔줄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단지 여러 가지 지식을 받아들여도 휩쓸리지 않고 취사선택하며 나만의 중심을 세울 수 있는 줏대를 가질 수 있도록 책을 읽겠다. 아이들에게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