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
생의 시작은 본인의 의지와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생을 살아가는 과정은 인간에게 많은 의지를 요구한다. 나는 이 삶을 살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닌데 자꾸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정녕 원하는 삶을 살란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우리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 나의 경우 아무리 마음을 들여다봤자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은 결국 세속적인 욕구, 물질적인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나고 자란 나의 마음은 초월적인 세계, 정신적 자유의 경지 혹은 만물의 소리, 자연의 언어, 신과의 합일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쇼펜하우어는 ‘인생론과 행복론’이라는 책에서 물질적인 것,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명예 등을 하등 한 행복으로 언급했다. 한 때는 나 역시 치열한 이 삶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현실을 초월한 궁극적인 행복을 꿈꾼 적도 있더랬다. 순례길을 오르거나 현실을 벗어나 훌쩍 장기간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면 보다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도를 닦든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든 결국 나는 세속적인 것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행복을 형이상학적인 것, 거창한 것으로 간주하고 진정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나의 솔직한 욕구를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책에서의 구절처럼 현재에 충실하고 세속적이든 무엇이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닿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행복 비슷한 느낌도 종종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하고 있나 하는 부류의 생각들이다. 하지만 나는 <연금술사>를 읽으며, 특히 산티아고에게 건넸던 집시의 말을 읽으며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나는 사람들의 미래를 점쳐주는 일로 먹고살지.… 사람들이 내게 점을 치러 올 때, 그건 내가 미래를 읽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야. 미래는 신께 속한 것이니, 그것을 드러내는 일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네. 그럼 난 어떻게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건 현재의 표지들 덕분이지.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다음에 다가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고. 미래를 잊고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신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네. 하루하루의 순간 속에 영겁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네."
나의 현재에 나의 영원한 세월이 깃들어 있다는 말. 나의 순간이 또 다른 순간을 부르고 그것들이 전부 하나의 표지가 된다는 말. 그렇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충실하다 보면 온 우주가 나를 그곳으로 향하도록 도와준다는 말. 이는 문득문득 부정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도록 해주는 ‘늙은 왕’의 돌이 되어줄 것이다. 산티아고처럼 만물의 언어는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내게는 늙은 왕이 건네 준 두 개의 돌, 그리고 내가 만든 가치 있는 ‘철학자의 돌’이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