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80년 생각>
이어령 교수에 대해 아는 바가 딱히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화부장관, 교수, 논설위원, 문화평론가 등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그를 교수라고 칭하는 게 적절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아는 이어령 교수란 이상문학상의 심사위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의 작가 이 정도였으니 그에 대해 몰랐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어령, 80년 생각>이라는 책을 내가 어떤 경로로 주문해서 왜 읽게 되었는지는 스스로도 정말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이자 그의 열렬한 팬(?) 중 한 사람인 김민희 편집장이 쓴 책이다. 그녀는 도대체 이어령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하기에 그토록 많은 창의적 결과물을 낼 수 있었는지,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매우 궁금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가 80년간 살면서 남긴 창의적 산물, 그러한 산물이 탄생하기까지의 뒷이야기 통해 이어령 교수의 창의적 발상법을 파헤쳐 본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어떠한 창의적 유산을 남겼다는 것일까. 몇 가지만 예로 들면 ‘갓길’이라는 낱말, 한국예술종합학교,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공원들 (이러한 공원을 ‘쌈지공원’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원의 시초가 이어령 교수이다.), 찾아가는 음악, 미술 등 예술 공연 (이 역시 지금은 흔하지만 시초는 그였다고 한다.), 88올림픽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 이상문학상, 백남준‧김승옥‧박완서 등의 발굴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약간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김승옥 작가를 여관방에 두고 글을 쓰게 한 사람 역시 바로 이어령 교수였다. 나의 최애 소설 중 하나이자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랑 이야기는 바로 김승옥 작가의 <서울의 달빛 0장>이다. 절필하려 했던 김승옥 작가를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몇 명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여 여관방에 가둔 뒤 글을 쓰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서울의 달빛 0장>이었다는 사실도. 그런데 김승옥 작가를 여관방에 가두고 몇 사람을 보초 서게 하여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사람이 이어령 교수였다니.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렇다면 이어령 교수는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호기심을 갖는 태도, 그리고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남들이 모두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은 결코 아이디어라고 할 수 없다고. 남들이 모두 의심하고 안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아이디어라고.
“남들이 그건 다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확신했지. 이거 되겠구나.”
그는 인터뷰 도중 이러한 이야기를 자주 남겼는데 나는 이 부분이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언뜻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 남들에게 이야기하면 모두 코웃음을 치는 아이디어, 이런 것들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연구해서 결국 되게 해 보이는 것. 대부분의 것들을 실현시키는 데까지 이어령 교수는 수많은 의심과 다수의 반대에 맞서야했지만 결국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혁신이 되었다. 이러한 태도가 진심으로 와 닿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내 속에 잠자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을 기꺼이 언젠가는 풀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이어령 교수의 창의적 발상의 두 번째 비법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나라의 전통이다. 그간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아야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 식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사실 이러한 말들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하물며 지금 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어떨까.
그가 남긴 것 중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다수 있지만 그 중 나에게 큰 영감을 준 것은 바로 굴렁쇠 소년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올림픽 개회식은 보통 어마어마한 기술을 투입하여 화려하게 치르기 마련인데 이어령 교수는 이와는 상반된 굴렁쇠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당시 세계는 한국에 대해 후진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한국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엔 어김없이 기아가 등장했다고 한다.
우선 이어령 교수는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보여주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택하기 보단 사람을 택했다. 1981년 9월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을 발표했던 정확한 그 순간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 중 한 명을 골라 굴렁쇠 소년으로 택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그 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건강하게 자랐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의 경쟁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인 상태에서 드넓은 운동장에 점처럼 나타나 조용히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를 등장시킴으로써 온 세계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세상을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퍼포먼스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서구의 기자들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는지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 때 그가 남긴 발언은 또 얼마나 멋지던지.
우리 선조들은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민족이었다고. 서양은 화폭을 전부 색과 형으로 채우는 문화이지만 우리 동양의 문화는 화폭을 전부 채우지 않고 비워두고 여백을 남겨둔다고. 굴렁쇠 퍼포먼스 또한 그러한 선조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이제 세상은 인공지능을 향해 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잘 사용하기 위해선 인류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인류를 위해 잘 활용할 수 있어야만 이 기술로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최첨단을 향해 가는 이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감성, 휴먼터치,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온기 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나라 전통에서 힌트를 얻어 교육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한국적인 것이 왜 세계적인 것이라는지, 현재를 살아가는 데 왜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수업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 역시 샘솟는 기분이다.
여러분은 80대 노인과 이야기하며 가슴 설레 본 적이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은 그와 함께 펄떡이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한다고 한다. 내 생각에 동안과 노안을 가르는 기준은 피부 나이도, 머리카락도, 몸매도 아닌 유연함과 호기심 그리고 상상력이 아닐까 한다. 새로운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쁜 사람은 결코 나이가 들 수도 꼰대가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80대인 그 또한 여전히 젊게만 느껴지고 멋지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그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진심으로 안타깝다.
부디 꼭 건강을 회복하여 앞으로도 우리들에게 많은 혜안과 지혜를 제시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