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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현우 Jun 23. 2015

더 헌트(The Hunt, 2012)

진실을 겨누는 이성의 총구들

더 헌트(The Hunt, 2012)

감독 :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 매즈 미켈슨(루카스 역), 아니카 베드리코프(클라라 역), 토머스 보 라센(테오 역), 등등

별점 : ★★★★☆

한 줄 평 : 진실을 겨누는 이성의 총구들


※제 리뷰는 언제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읽으신다면 더 뜻 깊은 리뷰가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내가 싫어하는 말들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바로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는 나기 때문이다. 굴뚝을 청소하던 청소부가 배가 고파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을 수도 있고, 어른들의 눈을 피해 고등학생들이 아궁이 모여 앉아 담배를 피웠을 수도 있다. 하물며,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포장해 온 아빠가 드라이아이스를 아궁이에 던져버렸을 수도 있는 것인데. 단지 굴뚝 위에 번지는 연기 만으로 아궁이를 땠다고 단언하다니!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담은 이성이나 논리보다는 경험과 지혜에 의존하는 다른 격언들에 비해 '묘한 논리성'을 지니고 있어, 실생활에서 자주 인용되곤 한다.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보통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그러므로, 누군가 아궁이에 불을 땠다.'라는 이 속담의 기저에 숨어있는 통계적 근거와 오류투성이 삼단논법은, '연기를 나게 한 다른 변수들에 대한 탐색'을 일차적으로 저지한다.


 이와 더불어 언론, 사회적 통념, 집단 압박(Group Pressure) 등의 공동체적 변수들은, 이 속담에 저항하는 마지막 양심, 또는 이성을 효과적으로 마비시킨다. 합리성의 탈을 쓴 비합리성과 그것에 대한 집단적 확산 및 인정은 개인이 외치는 진실의 힘을 꺾어버리고, 한 개인의 삶을 너무나도 쉽게 파멸시킨다. 만들어진 방화범이 화형에 처해질 때, 굴뚝은 조용히 연기만을 뿜는다.


 이런 집단적 마녀 사냥의 희생자에 관한 영화는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더 헌트」말고도 많다. 하지만,「더 헌트」에는 클라라와 테오, 그리고 라스트 신이 있다. 클라라는 루카스와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점은 클라라가 '어린 꼬마 소녀'라는 점이다. 클라라가 '어린 아이라는 점'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한다. 클라라의 거짓말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自身)들을 분리할 자신(自信)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클라라가 자신의 딸, 혹은 자신이 아는 어느 순진한 꼬마 아이라고 가정해보자. 그 누가 클라라의 말에 루카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체로 어린 아이들은 진실을 말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광기인 모성애와 부성애를 끌어들이는 클라라의 '유아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이성의 마비'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게 만든다. 이로써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나도 언제나 루카스가 될 수 있다'라는 불안과 동시에 '나도 언제나 마을 사람들이 될 수 있다'라는 불안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심어낸다.


 클라라가 「더 헌트」를 어느 다른 영화들보다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라면, 테오는「더 헌트」에서 희망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영화의 초중반에서 테오는 '설마 내 친구가 내 딸을.......'이라는 의심과 '어떻게 내 친구가 내 딸을.......'이라는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후자에 압도당해 루카스를 적으로 돌린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교회 장면에서, 테오는 루카스의 '눈'을 보고 그에게 찾아가 담담한 화해를 한다. 여기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영화 내내 무기력해 보이던 진실을, 그리고 그것에 대한 회의를 희망으로 바꿔 놓는다. 그토록 피하던 루카스를 마주하는 순간, 그리고 진실이 담긴 그의 '눈'을 보는 순간, 테오는  말없이 서 있는 교회의  십자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눈 멀어 있었던 진실에 의해 구원받는다.


 그렇게 한 줄기 햇빛과 함께 마무리되는 듯 했던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영화의 대미를 한껏 비틀어 논란의 심지를 만든다. 다시 한 번 진실은 총성에 웅크리고 루카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섣부른 낙관은 소스라치듯 놀라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다시금 찾아온 불안과 불편이다. 매즈 미켈슨의 마지막 눈빛은 우리에게 묻는다. 영원히 위협받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싸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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