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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팽나무 Dec 20. 2021

12월, 여백의 미

 바람이 냉기를 거느리기 시작하더니 숲의 지도가 바뀌었다. 복잡한 미로처럼 얽혀있던 꼭대기의 수줍음이 훤하게 트였다. 아니 유채색의 소멸이다. 색이 바뀌는 접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건 투명한 시간이다.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 하늘과 땅 사이에 여백이 생겼다. 짙은 화장을 지우고 민얼굴을 드러낸 나무들, 본래의 색에 충실한 계절이 돌아왔다.

 공간을 메웠던 생명은 순환의 고리를 따라 무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무 속에 유가 있으니 생명은 다시 우주의 반환점을 돌아 각자의 자리에 안착할 것이다. 이파리에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바빴던 수관은 이제 겨울준비에 한창이다. 공간이 생기니 나무들의 일정한 거리가 보인다. 크기와 두께가 분명해지고 높이도 가늠된다.

 여백은 생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숲이 가득 차 있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생기로움 대신 고요라는 이면의 세계다. 고요는 정靜의 중심이다. 잠잠함 속에서 생각이 돌고 여유가 생긴다. 허공에서 내려온 잎들이 땅을 덮고 있으니 땅은 반대로 동動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와글와글 소란스러움이 굳은 땅에 활기를 준다. 위아래의 순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무시로 순환하는 원리를 가진다. 우듬지와 뿌리, 사람으로 치면 머리와 발바닥이라고나 할까. 뿌리의 상태에 따라 우듬지까지 생생한 기운이 전달되듯 사람도 발바닥이 몸의 중심을 잡게 한다.

 여백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자상함이다. 채워져 있었을 때는 몰랐던 나무들의 가지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본다. 이미 여백의 미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비워주고 물러나는 아름다움, 얽히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건 그곳에 여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여백은 숨을 쉴 수 있는 틈이기도 하다. 물건도 가득 차 있으면 답답하게 느껴지고 사람도 완벽하면 부담스럽다. 약간 허술해도 친근함이 묻어나는 사람에게 정이 가는 겨울은 따뜻한 여백이 필요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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