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창

키 작은 꽃과 풀잎처럼... 지상으로 올라온 그녀

by 팽나무

희란(가명) 씨를 다시 만난 건, 그녀 아들 덕분이었다. 며칠 전,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자꾸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고 의자 쪽을 바라보다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와 눈이 딱, 마주쳤다. 빵을 먹던 그 애는 무안한 듯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지?’ 궁금했지만 우연이겠거니 생각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남자애가 다시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 애는 계산대 앞에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나는 그 애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애는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저기, 00이 이모~”하며 말끝을 흐렸다. ‘누구지?’ 순간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전에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굴까?’ 내가 자신을 못 알아본다고 생각했는지 그 애는 이름을 말했다. “아~~” 반가움에 나는 그 애의 손을 덥석 잡았다. 키는 훌쩍 커버렸지만 어릴 적 모습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그 애는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했다. 간식이 필요할 때면 빵집에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자, 먼저 아는 체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희란씨 집을 찾게 되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이사 온 지 칠 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집은 그녀처럼 아담하고 아기자기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거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집마저 야무지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전보다 살이 오른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늘 그렁그렁하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그녀 얼굴에 주름을 그려놓았지만, 목소리가 환했다. 집이 밝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실 한쪽에 외 붓듯 가지 붓듯 자란 화초가 즐비했다. 진초록 화초의 이파리를 세며 나는 십여 년 전 그녀의 집을 생각했다. 한 줄기 빛조차 인색하던 그녀의 집은 3층 양옥의 지하에 있었다. 바람에 덜컹대던 낡은 샛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란히 있던 지하방들, 맨 안쪽이 그녀의 집이었다.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던 낮고 허술한 문을 열면 어둠이 덥석 손을 내밀었다. 세 사람이 앉으면 꽉 차던 부엌을 지나 방 두 개가 기역자로 붙어 있었다. 부엌은커녕 방에도 햇살은 깃들지 않았다. 작은 창문으로 겨우 밖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창문으로 보이던 나무 밑동을 통해 계절을 가늠했다. 나무 밑동에 눈이 쌓이면 겨울이었고 흙이 촉촉해지면 봄이 왔다. 나무 그늘이 짙어지면 여름이었고 낙엽이 뒹굴면 가을이었다.

그녀는 부엌에 낡은 상을 펴놓고 쪼그려 앉아 밥을 먹었다. 작고 가느다란 몸을 웅크리면 아이 같았다. 그 몸으로 아들 둘을 거두고 건물 청소 일을 하러 다녔다. 남편은 있으나 마나였다. 도박에 빠져 빚을 산더미처럼 걸머쥔 남편은 자기 앞가림도 힘들어했다. 빚쟁이들이 문을 두드리면 그녀는 어둠 속으로 숨어야 했다.

그녀 집에는 구석에 물건들이 쌓여 있곤 했다. 누군가 가져다준 옷이며 신발, 책이며 가방, 먹을거리들이었다. 더러 쓸 만한 것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어진 물건들이 그녀의 좁은 집을 채웠다.

두 아들이 그녀에게는 삶의 이유였다. 큰애는 몸이 약했지만, 공부를 제법 했다. 작은애는 오동통한 게 한없이 귀여웠다. 약간 개구 진 구석이 있어 엉뚱한 짓을 하곤 했다. 이웃해 살던 나는 그녀 집을 자주 찾았고, 아이들도 내게 이모라 불렀다. 특히, 작은애는 나를 잘 따랐다.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얼굴이 발개지면서도 좋아했다.

나 또한 삶이 녹록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히려 그녀에게 내가 위로를 받은 적도 많았다. 위를 쳐다보면 도저히 살 수 없는 날들이었다. 수없이 밟힌 땅처럼, 키 작은 꽃과 풀잎처럼, 바닥을 배회하는 상처 받은 영혼들처럼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마음이 처절하게 찢긴 날, 우리는 지하방바닥에 앉아서 누군가 가져다준 유자차를 홀짝거렸다. 그런 날, 밖에서는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고 천장에서는 도배지가 너덜거렸다. 빗물이 흘러들어 떨어져 나간 도배지는 그녀의 삶만큼이나 축축했지만, 우리에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햇빛 아래서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했다. 우아하지 않아도, 고급스럽지 않아도 괜찮다 했다. 그저 곰팡내 대신 햇빛 냄새를 맡고 싶다 했다. 햇빛이 반사되는 투명한 잔을 만져보고 싶다 했다. “그럴 날이 있을까요?” 그 말을 할 때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던 것도 같다.

몸이 약해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청소일도 고맙다 했다. 처음에는 하루 일하고 하루는 누워 있어야 했다며 이젠 파스만으로도 견딜 수 있다고 호호 웃었다.

나는 이사를 했고,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바빠졌다.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나는 내 속으로 숨어들고 말았다. 가끔 그녀가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져 갔다. 훌쩍 십여 년이 그렇게 흘렀다.

둘째 아이는 여전히 날 ‘이모’라 불렀다. ‘잘 생겼네.’ 하자,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수줍어했다. 큰애는 공부를 제법 한다고 그녀가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살아서 야무지게 지상으로 올라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잠깐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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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무의 우듬지마다 푸른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무 밑동에 흙이 포슬포슬한지, 그늘이 졌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밑동의 변화를 몰라도 넓은 창은 그녀의 집에 사계절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그녀 손등 위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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