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과 연민 사이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는데 한 남자가 거울 속으로 쏙 들어왔다. 하던 일을 마저 하고 몸을 돌리자 그 남자가 꾸벅 인사를 한다. 그냥 인사가 아니라 허리를 푹 꺾어서 하는 인사에 나도 덩달아 머리를 숙였다. 남자는 아침 일찍 고생한다며 말을 붙였다. 나는 순간 남자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억지웃음을 지었다.
좀 전과는 달리 남자의 얼굴을 대하니 싫은 내색을 할 수가 없다. 남자는 갓 만든 도넛 두 개를 샀다. 남자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자 그는 아이처럼 얌전히 손을 모으고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빵 몇 개와 도넛을 봉지에 담아 남자에게 건넸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남자는 또 허리가 꺾이도록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야윈 몸, 구부정한 어깨, 꾀죄죄한 차림새에 머리는 봉두난발이었다. 그가 매장을 나가자 옆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저 사람 아무래도 혼자 사나 봐.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저러지. 근데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냐? 맨날 덤을 주니까 그것 때문에 오는 거 같아.”
그녀 말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맞다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어서였다. 내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 남자가 비굴해할 필요도, 내게 고마워하며 과한 인사를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그 남자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건 그런 이유였다.
정도에서 지나치다는 것, 뭐든 정도를 넘어서면 불편해지는 게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내 행동은 제어가 안 되었다. 그가 산 빵보다 더 많은 빵을 매번 그에게 건넸다. 그는 그런 내게 한없이 고마워했다.
남자를 알게 된 건 이 년 전, 매장 옆 철물 가게에 낯선 남자가 보였다. 나이는 육십 대쯤, 입성은 초라했다. 그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면 벌써 일을 하고 있었다. 우직하게 일만 하는 그가 성실해 보였다. 그는 우리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의 발음은 어눌했다. 치아 몇 개가 없었다.
그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겨울이었다. 칼바람이 불던 어느 겨울날, 남자가 건물 벽 쪽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오지 않아 기다리는 듯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던 나는 남자더러 매장에 들어와 있으라 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건네긴 처음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괜찮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몇 번 권유했으나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직원도 남자가 신경 쓰였던지 남은 빵이라도 가져다주자 했다. 그때부터 남자에게 가끔 팔다 남은 빵을 두어 개씩 건넸다.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던 남자가 괜찮다고 하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받았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변화가 생겼다. 빵을 사러 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 개만 사면 안 될 것 같아서 못 왔어요.”
남자의 말이었다. 남자는 배가 고파도 빵을 한 개 사는 게 실례될까 봐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순박함에 우리의 동정심은 봇물이 터졌다. 그가 빵을 사러 오면 하나를 사든, 두 개를 사든 덤으로 주는 빵이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허리가 꺾이도록 인사를 했다.
언젠가부터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옆 가게에는 그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우리에게서 잊혔다. 그러던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남자를 만났다. 내가 궁금해 하자 남자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큰 수술을 받아 몇 달 쉬었다고 했다. 건강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우리는 남자를 쉽게 잊었다.
몇 달이 지난 뒤 남자가 불쑥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었다. 막 영업을 시작한 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그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때는 오랜만이어서 몸은 괜찮은지 안부를 물었다. 남자는 일당벌이를 한다고 했다. 아마 그날은 일이 있어 빵으로 아침 요기를 할 요량인 듯했다. 늘 그랬듯이 남자는 도넛 두 개를 샀다.
나는 남자에게 어제 팔다 남은 빵을 담아 주었다. 남자는 일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겠다며 입이 귀에 걸렸다. 그는 발걸음도 가볍게 매장을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또 남자가 잊힐 거로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남자는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남자가 사는 빵은 두 개나 한 개가 전부였다. 두 개 이상은 사지 않았다. 나는 전날보다 반쯤 적은 양의 빵을 그에게 건넸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덤으로 제공될 빵이었다. 장사가 신통치 않은 날은 재고 빵이 많아 처리가 곤란할 때도 있었다. 나는 그 많은 빵 중 몇 개를 남자에게 건네는 것뿐이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해야 할 빵에 남자는 필요 이상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실 남자가 그런 것까지 알 리는 없다 해도 정도를 지나친 겸손에는 비굴함이 숨어 있음을 나는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잉여의 빵에 그렇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손님은 없었다. 대놓고 덤을 달라는 사람도 있고, 미처 챙겨주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당연한 듯, 빵을 받아 가는데 남자는 아니었다.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던 날, 나는 소화시키지 못할 음식을 먹은 듯 속이 불편했다.
남자는 이 주일 간 거의 매일 아침에 나타났다. 어느 날은 영업 준비를 마친 시간에, 어느 날은 문을 열자마자 들어왔다. 그날도 너무 일찍 나타난 남자를 보고 나는 시큰둥했다. 다른 손님 같았으면 재빨리 계산대로 갔을 테지만, 그 남자는 내게 더 이상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기다리든 말든 할 일을 하던 나의 변질된 얼굴이 거울에 오버랩되었다.
그런데도 남자의 깡마르고 가무잡잡한 얼굴을 보자 내 손은 자동으로 빵을 담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순박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남자의 입가에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거울 속에는 경직된 내가 서 있었다. 그는 내 얼굴에서 변질된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일까. 남자처럼 웃지 못하는 내가 타산적인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 건, 어쩌면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