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을 세며

원망, 후회, 눈물, 그리고 삶에 대하여

by 팽나무

방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묵직한 돼지저금통을 뜯었다. 하루 반찬값이라도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저금통장에서 쏟아진 건, 십 원짜리와 오십 원짜리 동전이었다. 백 원이나 오백 원짜리는 단 한 개도 섞이지 않은 동전을 앞에 놓고 나는 잠시 멍해졌다.

몇 년을 모은 것일까.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도 않는 동전들을 왜 이렇게 모아 두었을까. 가끔은 길에서 뒹굴어도 아무도 줍지 않는 십 원짜리와 오십 원짜리라니, 동전에 낀, 묵은 때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건 수많은 사람의 손이 거쳐 간 흔적이었다. 또한 남편이 상대했을 손님들의 자취이기도 했다. 한때는 누군가의 주머니에, 혹은 작은 손지갑에 있다가 남편의 손으로 건너온 동전은 그의 지난한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삶은 늘 전쟁터였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살아남아야 할 전쟁터에서 남편의 하루는 떠오르고 기울어지기를 반복했다. 별 쓸모도 없는 십 원짜리 동전을 그는 하나둘 돼지저금통에 넣었나 보다. 결국, 돼지저금통은 그의 손이 아니라 내 손에 의해 뜯겼다. 동전은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주는 일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그가 남긴 삼만 원도 되지 않는 현금이었다.

남편은 십여 년 동안 택시 운전을 했다. 번듯한 사회생활을 해 본 적 없는 그는 직업을 선택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고, 그나마 택시 운전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겨우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에서 그는 도시의 도로를 달리고 달렸다. 가족의 생계인 운전대를 움켜쥔 채 졸린 눈을 비비고, 저릿한 다리를 두드리며 하루치 삶을 채워나갔다.

밥때를 놓치는 건 허다하고, 생리현상 때문에 주차했다가 범칙금 통지서를 받기도 했다. 때로 만취한 손님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는 험난한 일이라 그도 화를 풀 곳이 필요했던지 술에 의지했다.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넋두리를 하는 게 그에게는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치열한 현실은 때로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기도 하나 보다. 먹고사는 데 급급해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망각해버렸다.

그리고 그에게 돌아온 건 뇌졸중, 남편의 나이 겨우 예순 초반이었다. 그는 맥없이 쓰러졌고, 쓰러진 뒤 다시 자신의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없었다. 119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하던 날, 나도 믿기지 않은 현실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침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다리와 왼쪽 팔이 죽어버린 것 같다고 그는 어리둥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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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검사를 거쳐 나온 그의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의사는 영상 사진을 보여주며 오른쪽 뇌가 하얗게 된 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오른쪽 뇌세포가 죽으면 왼쪽 몸이 마비된다 했다. 편마비가 온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왼쪽 몸의 움직임이 차단되고 말았다.

남편은 처음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걸어 다니던 몸이 하루아침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도 믿기지 않은 현실을 부정했다. 금방이라도 서서 걸을 수 있다며 자신을 붙잡아 일으켜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병은 한순간에 모든 걸 삼켜버렸다. 꿈도 희망도, 여유도 사라졌다. 사방천지가 어둠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보는 게 괴로웠고 병원비와 간병비는 날 향해 달려드는 맹수처럼 느껴졌다. 나까지 빈혈에 걸리고 말았다. 종일 서서 일을 하다 보면 피곤함과 어지러움이 몰려와 눈앞이 흐려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이었다. 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비 환자의 재활 기간은 6개월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남편은 눈에 띄게 회복되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씩 서서히 몸의 움직임이 나아졌다. 혼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는데 일어나 앉거나 휠체어에 혼자 앉을 수 있는 정도였다.

입원한 지 이년 정도가 지난 지금, 남편은 병원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처음에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격하던 감정 변화가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병원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 그런지 환자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도왔다. 남편은 인지에는 이상이 없어 사람들과 곧잘 농담을 하기도 했다.

재활병원을 드나들면서 많은 환자와 가족들을 만났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던 60대 환자였다. 그 환자는 아들이랑 둘이 살다가 병을 얻었다고 했다. 자신이 쓰러진 후, 아들은 결혼을 포기했단다. 아들의 월급이 고스란히 병원비와 간병비로 들어가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자신이 빨리 회복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나도 한때는 남편을 원망했다. 술에 의존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무서운 병을 얻지는 않았을 터인데 왜 그토록 어리석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회복만을 고대한다. 지나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법, 앞으로 남은 시간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일쯤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병원에 가야겠다. 그가 남긴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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