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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Mar 06. 2023

사소하지 않고, 대단하지 않은 일상

원동력(모티베이션)에 관한 단상


저는 생각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한 주 스케줄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들로 늘 머릿속이 바쁘죠. 작년 11월 이직을 한 이후로 회사 일은 바쁘지 않은데, 대신 그만큼 개인적으로 시간을 잘 쓰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회사 일에 묻혀 살 때보다 더 바쁘게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직 전에는 몇 년간 정말 미련할 정도로 회사 일에만 매달렸거든요. 그만큼 일이 정말 많았는데 어떻게 조절할 줄도 몰랐죠. 그땐 감히 다른 걸 생각할 엄두를 내기가 참 어려웠어요. 제 Capability(역량)와 체력이 그 정도밖에 되질 않았던 거지요.


정말 감사하게도 이직 후엔 생활의 모든 면이 질적으로 개선되면서도 커리어적으로 훨씬 더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기 힘들었던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두고 새로운 길을 택하니 저 멀리 가려져 있던(가려져 있는 줄도 몰랐던) 커튼이 열리고 시야가 보이더라고요. 무엇보다 더 이상 야근으로 무리하지 않으니 확실히 전보다 정신/육체적으로 건강이 개선되었고, 전에 가져본 적 없던 시간이 생기니 소중하게 잘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포함, 여러가지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금 서 있는 길에서도 다시 커튼을 열어젖히고 move on 해야 할 때가 오겠죠. 그때까지 또 후회없이 잘 해보려구요.


새해에 들어 일주일에 몇 번씩은 퇴근 후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학생 때 용돈벌이로 성인 기초영어 강사를 했는데 전에는 아예 시간을 맞출 수 없어 그만두고 잊고 살다가, 이직 후 예전 제 학생분을 통해 연락이 왔어요. 주로 여기 계신 40~60대 아주머니들이 더 이상 영어 때문에 자녀들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인 사업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며 수업을 부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귀하고 알 것 같아 정말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을 들여 수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와 재무, 자산관리 공부도 늘 어렵지만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주식으로 투자를 시작했고 지금 사는 집을 구매하면서 부동산이라는 자산시장에 첫발을 들였거든요. 집을 사기 전에도 공부하긴 했지만, 직접 시장에 들어와서 보니 이게 또 느껴지고 보이는 게 너무 달라요. 직접 모기지를 받고 이자를 내면서부터는 정말 남의 일이 아니게 되니 자연히 더 많은 공부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경제 공부는 내가 돈이 있든 없든, 아니 오히려 없을 때 더 해놓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돈이 생겼을 때 관리가 전혀 안되거든요.


이 외에도 간혹 유학, 이민, 취업 등 이런저런 분야에서 일을 부탁받으면 도와 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글을 쓰고요, 주말엔 데이트도 합니다. 하하.


이 정도면 이미 충분히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또 언제 밥솥에 김 빠지듯 무기력이 찾아오고 싫증을 낼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할만할 때 다 벌려둡니다. 원래 좀 그래요. 주변에선 저더러 멀티 태스킹을 잘한다고 하는데, 사실 멀티 태스킹 능력과 산만함은 한 끗 차이거든요. 이 중에 하나는 걸리겠지 하고 퍼질러 놓는 거예요.


물론 항상 재밌지만은 않습니다. 솔직히 재미고 뭐고 그냥 해야 하니까 한다는 느낌으로 살아요. 그게 더 맞지 않나 싶기도 해서요. 내가 하는 일이 사소하지는 않지만, 또 그리 대단하게도 생각하지 않는 것. 특히 요즘같이 혼란스러운 세계 경제 속에서 혼자 재정을 관리하고 삶을 꾸려나가려면, 이 모든 건 그냥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뭐 대단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끔 너무 많은 열정으로 어떤 일을 한동안 지속하다 보면 연료가 고갈된 느낌, 번아웃이라고 하죠? 뭣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하나 싶을 때 있잖아요. 그러면 아,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고. 저도 그런 때가 정말 강하게 찾아온 적이 있거든요. 오히려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좀 수월하게 이겨내고 롱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더 이상 제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사명감 같은 것도 함부로 가지지 않아요.


그리고 계속해서 일상에 크고 작은 애드온(add-on)을 만듭니다. 아무리 열정을 갖고 있는 일이어도 내가 하루에 배분한 시간만큼만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오늘은 이 일을 여기서 놓아야만 하는 핑계를 만들어 두는 거죠. 예를 들어 돈을 버는 사이드잡이 있으면 그 일에도 책임이 있으니 다른 일 하느라 빠질 구실을 찾기 힘들잖아요. 돈도 벌고, 또 그쪽으로 커리어도 쌓이니 1석 3조겠죠.


누군가가 제게 삶의 모티베이션(동기)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일이 생각 나 쓰게 되었습니다. 전 결국 모티베이션을 잃지 않으려고 오히려 많은 (가벼운) 일들을 벌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엄청 놀고 먹습니다.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모든걸 다 셧다운시키고 늘어지게 누워 게으른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면 다음 날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또 움직이는 거죠, 뭐.


토론토는 일요일 밤이 깊어갑니다. 당신의 사소하지 않고, 또 대단하지 않은 일상을 응원합니다. 별일 없는 한 주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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