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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Mar 10. 2023

밥벌이에 낙원은 있는가

대한민국 문과생, 캐나다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2>


캐나다에서 대학 졸업 후 첫 구직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6개월이라고 하지만, 사실 주변에는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나는 법무사 자격증 시험을 치고 난 이후부터 본격적인 구직활동을 시작해서 대략 4개월 정도 걸렸고,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계속 일자리를 알아봤던 기억이 난다.


구직 기간에도 단기 인턴쉽을 (또) 하러 다니기도 했고, 방방곡곡 피 말리는 인터뷰를 수없이 보러 다녔으며, 그러다 최종 인터뷰에서 떨어져 울고불고를 반복했다. 뭔가를 끊임없이 계속하고는 있는데 결과물은 없는 그 시기는, 참 고독하고 우울했다. 부모님과 같이 지내는 현지 학생들이야 좀 더 여유가 있지만, 가족도 없이 혼자 있는 유학생이면 그 외로움은 더하다. 졸업도 했는데 계속해서 한국에서 생활비를 지원받기가 엄청나게 죄스럽고 눈치 보이고, 근데 당장 방 값 내는 날은 또 돌아오고..... 반지하 방에서 그렇게 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결국 출근은 하게 되어있다. 


사회인이 된 동기/친구/선후배를 만나 얘기를 해보면 첫 취업을 두고 '결국 어딘가 가기는 가게 되더라'는 얘기를 한다 (그곳이 맞는 곳인지는 몰라도). 진짜다. 어디든 가서 밥벌이는 하게 된다. 이게 위로가 될 진 모르겠지만.....


회사도, 직원도 일해보지 않으면 서로가 잘 맞을지는 알 수 없다. 서로 복불복인 것이다. 기업에서는 채용한 신입 직원이 좀 다니다가 나오지 않으면 자기들이 가르치느라 들인 시간, 노력을 운운하며 엄청 손해 보는 거라고 열을 내지만(ㅈ소기업 특)  그건 직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힘들게 입사했는데 어지간하면 다니고 싶지 오죽하면 그만두겠느냔 말이다. 내게 잘 맞는 일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닐 수도 있고, 반대로 하다 보니 의외로 적성에 맞는 편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일은 별로인데 회사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잘해보자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회사도 누군가에게는 꽤 괜찮은 직장일 수 있다. 그러니까 괜찮다. 버티면 버티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일단 불러주는 곳이면 가서 경험해 보자.


사실 난 처음 입사하고선 매일 밤 울었다. 내가 거의 배우지 않은 법을 주력하던 작은 로펌이라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는데, 입사 단 몇 개월 만에 수많은 파일을 홀로 담당하고 당장 끝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입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당시엔 다 이렇게 한다며, 못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 해대던 매니저(정작 본인은 일을 거의 할 줄 모르는)의 말에 진짜 내가 멍청해서 못하는 건 줄 알고 밤을 새워 일을 익혔다. 물론 나한테만 그런 건 아니라서 누구든 들어오는 족족 개월을 채 못 버티고 혀를 내두르며 도망쳤다.


나중에는 회사의 거의 모든 일을 다룰 줄 알게 되었고, 회사 내에서는 나름 좋은 대우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말, 일은 너무 많았다.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렇게 기를 쓰며 익혔지만, 할 줄 아는 게 늘어나니 업무량이 더 늘어나서 오히려 갈수록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점심은 제대로 챙겨 먹은 날을 세는 게 빠르고, 수없이 야근을 했으며, 퇴근하고 집에서도 원격으로 일을 해댔다. 그리고 회사가 그런 내 고생을 당연시하게 될 즈음, 무려 꼬박 3년이 지나, 나는 사직서를 냈다.  


캐나다에서도 야근을 한다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놀란다. 한국에 비해 평균적으로 훨씬 빈도가 적고 하려는 사람의 수가 적을 뿐 당연히 업계마다, 회사마다 야근이 필요한 일이 있다. (물론 나는 그중에서도 유독 좀 비정상적으로 많이 한 편이긴 하지만) 다만 "불필요한" 야근은 없다. 야근을 한다면 정말 일이 많기 때문이지, 상사가 아직 퇴근을 안 해서라거나 누구 눈치가 보여서라거나 하는 게 이유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바쁘지 않은 회사에서 퇴근을 늦게 하면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내게 대체 뭣 때문에 그리 미련하게 (그것도 캐나다에서!) 살았냐고 묻는다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나와 직원들을 구박하던 매니저에게 너무 분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뭔갈 보여주고 싶은 치기 어린 오기가 있었고, 둘째는 그래도 존경하던 보스, 서로 힘을 주는 동료들과 일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적어도 한동안은 회사가 나의 노고를 인정해 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년을 갈아 넣은 이유 치고는 너무 단순하다고? 그렇다. 나는 사실 정말 단순(이라 쓰고 멍청이라 읽는다)했다. (나처럼 살지 마시오......)


물론 일을 하며 얻는 성취감과 커리어의 성장을 느낄 수 없었다면 그렇게 견디진 못했을 것이다. 돌아보면 좋은 순간이든 고통스러운 순간이든 매 순간 배울 것은 있었다. 당신이 훌륭한 선임, 보스를 만난다면 축복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불행하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혼자 아등바등하다 깨닫거나 외부로부터 배우게 되는 과정들은 억울하긴 해도, 잘 지니고 있으면 언젠가 나를 지켜줄 무기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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