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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Mar 09. 2023

캐나다에서도 문송합니다

대한민국 문과생, 캐나다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1>


막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 신입이 갈 곳을 찾기가 힘든 건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특히 문과는 정말 갈 데가 없다. 문과생은 세계 어딜 가나 '문송한' (문과라서 죄송한) 현실이다. 이곳에서도 문과생들은 졸업 후 뭐해먹고 사냐며 걱정 근심이 가득하다. 내가 캐나다서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한 데도 이런 이유가 컸다. 문과 안에서 전문직을 하면 그나마 사정이 낫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이공계 계열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으나, 뼛속까지 문과인으로 살아온 내가 현실적으로 선수과목(Prerequisite)부터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나도 꿈을 좇았다느니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느니 하는 낭만적이고 허울 좋은 말을 하고 싶지만, 밥벌이 없인 꿈도 희망도 없는 법.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단 생계는 꾸려야 한다.


졸업 후 지원할 곳은 로펌 혹은 사내 법무팀 정도로 좁혀지긴 했지만, 내가 갈 만한 곳은 많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난 어떤 분야의 법을 선택해야 할지 취업 때까지도 결정하지 못했는데, 사실 어떤 특정 분야의 법에 학생 때부터 엄청난 열정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보통은 처음 커리어를 시작한 분야로 쭈욱 가게 된다. 일을 하기도 전에 내게 맞는 일을 찾아야 하는 아이러니다. 물론 공부를 하면서 아예 나와 맞지 않는 쪽은 거르긴 하겠지만.


내가 뭘 고르고 자시고 할 신세는 아니니, 그냥 법률 분야에서 신입을 뽑는 곳이면 죄다 지원을 했다. 구인 공고가 없어도 이력서를 보내고 연락이 오면 면접을 봤다. 공고가 올라오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관련 회사를 찾고 연락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구인 공고를 올리면 경쟁자는 한 번에 몰려들지만, 이렇게 먼저 치고 들어가면(?) 경쟁자가 훨씬 줄어든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 내가 먼저 연락하는 방법으로 학생 때도 작은 로펌에서 여름 인턴쉽과 현장실습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정식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곳도 구인 공고는 없었지만 내가 먼저 컨택한 회사였다.


주의할 점은, 웬만하면 전화는 하지 말 것. 실제로 일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구직자들의 전화는 바쁜 업무 중에 그다지 달갑지 않다. ^^; 특히나 전화로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음, 절대 비추천이다. 궁금한 점이 있더라도 일단 회사에 먼저 자신의 이력서와 간단한 소개(커버레터)를 보내고, 답변이 와서 면접까지 성사가 되었을 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어떻게든 나와 맞지 않은 회사를 일찍 걸러내고 시간/체력 낭비를 하고 싶지 않겠지만, 구직기간이란 어쩔 수 없이 온통 시간과 체력 낭비 투성이인, 몹시 비효율적인 시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회사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노하우가 쌓이는 등 얻는 것이 있으니 조급해 말자.


대부분의 회사는 적어도 '우리에게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지금은 누굴 새로 찾고 있진 않지만 필요하면 너를 먼저 검토할게' 식의 예의 바른 답변을 주고, 뭐 아무런 답변이 없어도 그만이다. 당연히 커버레터는 복사+붙여 넣기로 죄다 같은 말만 써서 보내지 말고, 그 회사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 웹사이트와 링크드인(Linkedin)과 같은 소셜 미디어 염탐은 필수.


그렇게 연락이 오는 족족 면접을 봤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합격 연락, 즉 오퍼가 온 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을 봐 둔 몇 군데에서도 오퍼를 받았지만, 이미 처음 연락이 온 곳에 출근을 시작해 버리기도 해서 엄청 고심하다가 정중하게 고사했다. 그때 다른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캐나다에 구인구직 사이트는 많지만 경험상 양질의 포스팅은 인디드(Indeed)와 링크드인(Linkedin)이 가장 많은 것 같다. 그 외에도 졸업한 학교 취업 센터나 학과 게시판 등도 적극 이용하길 바란다.




구직을 해 보면 돈을 적게 주고 신입을 뽑는 회사보다 돈을 더 주더라도 경력직을 데려가려는 회사가 월등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딜 가든 경력이 없으면 실무는 처음부터 다 가르치고 배워야 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경력직을 쓰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다. 그래도 신입이 지원할 수 있는 회사는 있다. 크게 두 부류인데, A. 매우 큰 기업이거나, B. 아주 소기업이거나.


A의 경우, 주로 자신들만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매우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서 신입을 데려다가 자신들의 입맛에 게 a부터 z까지 훈련시킨다. 이런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연히 대기업에서나 가능하고 회사는 한 번 뽑아 입맛대로 잘 키워 최대한 오래 써먹는 것이 목표다. 일전에 알고 있던 게 독이라고 여겨질 만큼(이전에 너는 잊어라 새로 태어날지니) 매우 엄격한 회사 매뉴얼을 익히고 따르도록 훈련받게 된다. 회사의 네임벨류, 비교적 높은 신입사원 연봉, 좋은 복지가 갖춰진 만큼 채용과정이 매우 까다로우며 경쟁률도 엄청나다.


A의 대기업에 합격하는 인원은 매우 소수다. 채용과정은 피 말리는 수차례의 면접, 면접, 면접, 또 면접... 영어에 문제가 없는 네이티브도 줄줄이 탈락하는 판국에 유학생 출신 외국인은 비빌 데가 없어 보인다. 특히 영주권자가 아니라면 워크퍼밋(주로 1~3년짜리를 받는다)으로 구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회사에서는 대놓고 차별을 하진 못하지만 이왕이면 신분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사람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여러 가지로 우리에겐 너무 불리하지만 그래도 합격하는 똘똘한 친구들도 있다. (당연히 난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A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할 순 없다. 엄격한 트레이닝/업무 체계가 있다 보니 쉽게 일을 맡겨주지 않고, 실력을 쌓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A를 가는 것보다 이직을 통해 A로 가는 편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B의 경우는 경력자를 고용하는 비용이 부담스러운 소기업이다. 경험상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수입의 경로가 매우 한정적이어서 비싼 경력자보다 값싼^^; 신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조건이 마냥 나쁜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아도 내실 있는 기업들이 있다. A에 비하면 복지 면에서는 한참 못 미칠 수는 있지만, 신입 급여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비교적 빠르게 업무를 배우고 맡아서 실무 능력이 빨리 오르게 된다.


경력은 없지만 앞으로 커리어를 쌓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가능하다면 '배우고 얻어갈 것이 많은 곳'을 1순위로 두고 구직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신입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다. 사실 그냥 불러주는 대로 일단 가야 한다. 신입 땐 무조건 많이 배우고 스킬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쌓인 능력은 고스란히 나의 무기가 된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과도한 업무로 야근을 밥 먹듯 하게 될 수도 있고 내 포지션과는 상관없는 회사의 회계, 경영, 홍보 등의 일도 하게 될 수도 있다. 회사가 작을수록 한 사람이 맡는 일들이 많아지는 법. 캐나다라고 다르지 않다. 이런 경우, 좀 꼰대 같은 말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고 시작도 전에 몸을 사리기보단 하나라도 더 배워두자. 식상한 소리지만, 정말 배워두면 다 쓸데가 있다. 나도 그랬다. 이 부분은 추후에 더 자세히 다뤄보겠다.


기왕 꼰대 같은 말을 시작했으니 미친 척하고 좀 더 하자면, 가능하면 신입 때 워라밸은 개나 줘 버리길.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금 워라밸 찾을 군번은 아니다. 내 능력이 커질수록 워라밸을 포함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자연히 많아지게 되어있다. 우리의 목표는 바짝 고생해서 얼른 더 나은 곳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물론 회사 스트레스가 자신이 조절할 수 없을 만큼 육체와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정도라면 당장 그만둬야 한다.(비록 나는 미련해서 그러지 못했지만...)  캐나다에도 악덕한 회사는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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