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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Mar 11. 2023

문과생, 나도 어딘가엔 쓸모가 있겠지

대한민국 문과생, 캐나다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4>


문과적 성향과 이/공과적 성향은 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일까?


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땐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문과반과 이과반으로 나누어졌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각 계열마다 수업 과목에 차이가 있었다. 나는 볼 것도 없이 문과로 진학했다. 당시 담임 선생님도 내게 딱히 묻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간 나의 학업 성취도 평가들을 보면 당연했다.


문과 과목들을 잘해서?

아니. 사실 그보다는 이과 과목을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꼬맹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 써서 상도 많이 받았다. 장래희망도 작가였다. 하지만 그게 언어에 소름 끼칠 만큼 특출 난 재능이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나마" 문과 과목 형편들이 좀 나았을 뿐이다. 그중 문학 성적이 특히 좋긴 했지만, 사실 그런 애들은 너무 많았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전략적으로 과목을 선택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그나마 나은 과목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그 비율은 월등히 문과가 많다. 흔히 문과 과목은 여태까지 안 했어도 미친 듯이 벼락치기로 암기하면 어떻게든 대충은 따라갈 수 있지만, 이과는 그게 안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초/중학교 때부터 기초가 잘 쌓여야 하는 과목들인데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어서 기초를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나도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수년간 학원도 다녀보고 문제집도 사서 풀어보고, 남들 따라 할 건 다 했다. 대학 입시/진로를 문과 쪽으로 원한다고 해서 이공계 공부를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근데 안 됐다. 나를 거들떠도 안 봐주는 남자애 같았다. 그래서 더 좌절했다. 잘해보고 싶은데. 나는 이쪽으론 정말 머리가 나쁘구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었다. 학창 시절 외로운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났다.


한참 후에 캐나다에 와서도 진로를 고민하느라 헤맸다. 유학을 와 처음 선택했던 학과가 비전도 암담하고 적성에 맞지도 않아 그만둔 후, 나는 여러모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그간의 시간과 돈이 아깝고, 한국에서의 삶이 자신도 없어서 무엇이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 외엔 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졸업한 전공을 살릴 수가 없고, 진지하게 이공계 쪽 직업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해외에 나오면 유학생/교포들이 이공계 쪽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네이티브가 아니다 보니 언어적인 부분이 중요한 문과계열에서 불리하고, 또 이공계 쪽이 졸업 후 양질의 일자리가 많고 평균적으로 수입도 높은 건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 계열 과목을 듣지 않아 몇 과목은 고등학교 과정부터 시작해야 했고, 그러기엔 시간과 비용, 그리고 남아있는 학창 시절 짝사랑(?)의 트라우마까지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어딘가엔 쓸모가 있겠지.


법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왕 또 문과를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중에서 그나마 가장 써 먹을데가 많은, 그리고 돈도 좀 벌 수 있을법한 공부를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차피 남의 나라 말로 하는 공부, 뭘 하든 힘든건 같으니 좀 더 고생스러운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책을 좋아했으니 책상에 오래 앉아 읽을 순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물론 짧은 생각이었지만).


유학 시절 내내 교과서, 수십 수백 장의 판례들과 법전, 판례문 등을 읽고 이해하는데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읽고 또 읽었다. 원어민 동기들 사이에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이든 그냥 무식하게 오래 시간을 들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졸업이 오고, 7시간에 걸친 라이센스 시험에 합격하고, 내가 낄 데는 죽어도 없을 것 같던 취업했다. 그리고 이직도 잘 해서 지금은 꽤 괜찮은 회사에서 남들이 보기엔 나름 괜찮다는 연봉을 받는다. 읽는 것도 재능이요, 버티는 것도 재능이었을까. 나도 어딘가엔 쓸모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첫 학기, 교양과목 중 반드시 이공계 계열 수업 하나를 들어야 했다. 아 이놈의 이과, 대학을 와서도 괴롭히는구나 싶어 괴로워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유전과 질병>이라는 수업을 선택했다. 이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으니까 남들보다 훨씬 뒤처지겠지 싶어 전공 수업보다도 긴장해서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학기 말, 최종성적 A를 받았다. 진심으로 기뻤다. 나 생각했던 것보다 멍청하지 않네, 싶었다. 비록 교양 수업이지만, 이 작은 성취감은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를 약간이나마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다. 나는 지금도 유독 과학자들이 쓴 글을 좋아하고, 인문학이 결합된 이공계 기술 발전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 갈 수 없는 길에 대한 동경은, 내 학창 시절 짝사랑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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