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두해 사이에 여성 임원 여러 명이 회사를 자의로 나갔다. 회사 매출에 기여하고 있는 주요 사업부들에 소속된 여성 임원들이었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떠나간 여성 임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회사를 떠나갔다. 회사에 대한 애착은 강하지만, 소속된 사업부에서 기회가 부족하고 계속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불편한 마음을 안고 떠나갔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사업부에서 여성 임원들의 처우가 어떠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구조적 불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외국계 회사에서 그럴 수는 없다. 적어도 드러내 놓고는.
다만, 여성 인력을 효율적으로 적절하게 잘 활용하고,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지지하는데 보다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있다.
나랑 같이 일했던 그 여성 임원들은 큰 야망이나 야심이 있기보다는, 그저 본인들의 능력이 제대로 인정받고 본인들의 업적에 대해 공정하게 보상받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여성 임원들도 처음에는 자신의 권리나 처우에 대해서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목소리를 내고 버티기는 힘들었을까. 더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다른 데서 기회를 찾는 것을 택했다. 친했던 직장 동료들과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는 슬픔보다는, 회사 입장에서 능력 있는 여성 인재들을 잃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다행히 모두 능력 있는 여성들이라 바로 직장을 잘 잡았다. 그러나, 회사에서 여성 임원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조직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남아있는 여성 직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다양한 사업부에서 역량을 보여주며 이끌어주는 멘토의 역할을 하는 능력 있는 여성 임원들이 부족해진 것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화합을 중시하고 갈등을 피하려는 여성의 특성일까? 여성의 목소리를 반기지 않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직 있는 걸까?
남자 상사들이 여자 직원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이거나 억누르려고 하던 라떼 시절도 있었다.
25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나 역시 나의 상황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나의 권리와 니즈에 대해 솔직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서 불이익을 받은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 불이익을 받은 경험도 있었다.
점차 불편하고 눈치 보여서 나의 권리나 처우에 대해 당당하게 요구 못하는 상황이 많아졌고, 조직에서 미움받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갈등을 피하려고 입을 다물었고 감내했다. 당시에는 그게 올바른 처세이고 배려라고 합리화했다.
근데 아주 먼 훗날, 이제야 돌이켜보면 그것은 처세가 아닌, 배려도 아닌, 불편한 상황 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회피였고 소통을 단절시킨 비겁한 행위였으며 나를 안주하게 만든 편한 길이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때 주도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나 발전의 기회를 없앴다는 것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로도, 조직 측면에서도.
나는 잘 못했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부디 여성 직장 후배들은 용기 내어 마음껏 (그러나 정중하고 세련되게) 목소리를 내며 거친 사회생활을 헤쳐나갔으면 한다.
회사에 원하는 바를, 부당한 처우에 대한 개선을, 커리어를 개발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목소리를 내기를 바란다.
배너 이미지: 잔 다르크 (1854), Jean-Auguste-Dominique Ing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