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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Aug 06. 2020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그 "쯧쯧..."은 넣어두세요

어릴 때부터 아토피를 앓던 나는 여름이 오는 게 참 싫었다.

팔다리의 상처를 드러내야 하는 짧은 하복을 입기 시작하는 날짜가 싫었다. 친구들은 다들 하복이 더 예뻐서, 더 편해서 하루빨리 입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 날짜가 오는 게 괴로웠다.


한창 예민할 시기에,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에 팔다리에 상처가 가득한 모습으로 남학생들과 마주치는 게 싫었다. 내가 앞에 걸어가고 있으면 뒤에 걸어오는 사람들이 내 다리의 흉터를 보고 뭐라 하진 않을까 다리에 온 신경이 쏠렸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왠지 주눅이 들었었다.


하나뿐인 딸의 피부이니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어릴 때부터 피부에 좋다는 건 안 해본 게 없었다. 한약은 기본이고, 약초 마사지, 체질 개선을 한다며 땀을 빼보기도 하고, 아예 고기와 밀가루를 전혀 먹지 않는 식단도 해보았고, 연고, 로션 - 가격이 비싸도 누군가가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만 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 시도해보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절실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돈을 버는 나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와 부모님은 속는 셈 치고라는 마음으로라도 뭐든 해볼만큼 절실했다.


다행히 고 3 시기에 오랫동안 쓰던 스테로이드 연고를 끊고, 운동을 하고 한약을 먹으면서 힘든 시간을 겪긴 했지만 많이 피부가 좋아졌고 21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 그쪽 기후가 맞았던 건지 피부가 튼튼해졌다. 일본과 싱가포르 두 곳 다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피부에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일본에서 살면서 가장 좋았던 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단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놈의) 걱정이라는 이름하에 타인을 동정하고 평가하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하곤 한다. 큰 흉터가 있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면 "에구... 쯧쯧쯧... 여자 다리가 저래서 어떡해.", "쯧쯧쯧... 엄마가 고생이 많겠다."라는 이야기를 당사자와 가족이 다 들리도록 아무렇지 않게 하곤 한다.


나는 피부 덕분에 그런 "걱정"을 워낙 자주 들었던 터라, 본인이 원하지 않는 조언과 걱정은 오히려 상처가 된다는 걸 잘 안다. 당사자는 그 사람들이 걱정해주지 않아도 이미 절실히 방법을 찾고 있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을 것이고, 오히려 신경 쓰지 않고 모른 척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 눈에 보여도 그냥 안 보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해주는 게 당사자를 위한 최선의 배려가 된다.

또한 그 "쯧쯧쯧..."에 진심 어린 걱정이 담긴 것인지, 그렇게 타인을 동정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재확인하고 싶은 것인지 그 의도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중요한 건 누구도 그 동정을 부탁한 적이 없다는 것)


일본에서는 대중교통에서 실제로 장애우 전용 좌석을 이용하는 장애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버스에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탑승하는 분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처음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장애우가 더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도 일본은 이용하기 편리한 시설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롭기 때문에 장애우들이 사회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본 사람들은 아무리 특이한 차림새를 하고 있어도, 아무리 이상한 행동을 해도, 그 사람에게 시선을 잘 주지 않는다. 가끔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방 안에 커다란 코끼리가 있는데 다들 그걸 모른 척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런 의식적인 무관심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자유를 주곤 한다. 내가 어떤 상처가 있어도, 어떤 차림새를 하고 있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쯧쯧쯧..."과 동반하는 그 평가하는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자유로움을 주는지...


해외생활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아무리 외국이 살기 좋아도 한국인은 한국이 최고지!", "아직 덜 살아봐서 그럼 ㅇㅇ"이라고 또 충고를 ^^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 분들을 볼 때면, '네, 당신 생각은 그렇군요. 근데 제 생각은 달라서요.'라고 조용히 생각한다.(굳이 말해봤자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뻔하니...) 본인들의 기준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하지만 굳이 남에게 강요는 하지 말길. 동정도, 조언도, 충고도,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폭력일 뿐이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가끔은 모른 척해주는 것이 따뜻한 배려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 당사자는 이미 스스로를 충분히 걱정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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