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 메리어트 베케이션 클럽의 일본인 멤버십 어드바이저 업무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매너가 좋은 일본인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고, 호텔과 리조트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일이다 보니 즐거웠고, 게다가 메리어트 계열의 숙소는 직원 할인가로 묵을 수 있는 혜택도 있었다. 적성에도 맞았는지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원에게 주어지는 우수사원 표창도 받았었다.
동료들 중에는 워킹맘이 꽤 많았는데 그 날 본인이 해야 할 일만 잘 끝내고 나면 정시에 칼퇴근을 하고 오피스를 떠난 후에는 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업무의 특성 때문이었다. 나 또한 처음엔 그게 편했다. 내가 길게는 2주 동안이나 휴가를 떠나도 내 업무는 누구라도 대신할 수 있었기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즉슨, 굳이 내가 아니라도 내 자리를 누군가가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일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왠지 모를 공허한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분명 일도 편했고, 월급도 한국에서보다 만족스러울 만큼 받았고, 동료들도 좋았고, 칼퇴를 하고 개인적 여유시간을 즐길 수 있는 - 괜찮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좀 더 성장하고 싶다.', '나의 잠재력을 더 발휘하고 싶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싶다.’ 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물론 그 일을 계속했다면 관리직으로 올라갈 수는 있었겠지만 그건 별로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직장은 그저 월급을 버는 곳이라고. 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돈은 돈대로 벌고, 보람이나 즐거움은 개인생활에서 찾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딱 잘라 분리를 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매일 인생의 9시간을 보내는 직장을 그저 시간과 월급을 교환하는 곳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그러면서 돈도 버는 사람들도 분명 세상에는 많았다. 그리고 분명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그 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그 길을 찾아 나서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시간이 얼마큼 걸리더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분명 찾게 되리라고 믿었다.
최종면접에 합격하고, 싱가포르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처음 창이공항에 도착했을 때. 회사의 지원으로 호텔에서 2주를 지내던 시간. 마리나 베이의 풍경을 바라보며 출근을 하던 그 순간들. 그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설명할 순 없지만 가슴 한편 채워지지 않는 그 공간. 그저 무시하기에는 그 텅 빈 공간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걸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여정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깨우고, 내 영혼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일을 찾는 여정.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 싱가포르로 오게 해 준 첫 직장. 그곳에서의 시간이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나는 어느샌가 다시 취업 에이전시와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