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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Sep 29. 2020

나는 이제 핫플이 지겹다

오리지널과 아류의 차이

언제부터였을까.

'새로 생긴 핫플', '꼭 가봐야 하는 핫플'이라는 제목의 글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또한 디자인 프레스에서 싱가포르의 '핫플'과 '핫한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해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말이다.


어릴 때부터 잡지는 좋아했지만 왠지 '머스트 해브 아이템', '꼭 해야 하는', '꼭 먹어봐야 하는' 등의 수식어가 붙은 기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인데 왜 나도 사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남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하면 괜히 보려다가도 그만두었다. 잡지 모델 시절부터 좋아하던 김민희도 언제부턴가 티브이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인기가 많아지니 (아마도 말하는 걸 듣고나서부터였나) 왠지 감흥이 덜했다. 이건 내가 분명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일 것이다.


물론 처음 가는 지역을 방문할 땐 저런 리스트가 도움이 된다. 대충 어떤 장소들이 있고, 대중적으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으니까. 특히 맛집 리스트에서는 도움을 많이 받아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여행을 할 때는 '어디 어디 핫플'이라는 검색어로 정보를 찾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키워드라 정보를 찾기에 쉽다. 그리고 저런 제목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나 또한 기사에 저런 제목을 자주 쓴다. (쓰면서 혼자 찔리긴 하지만)

우리는 남들이 뭘 하는지, 뭐가 인기가 있는지 놓치고 싶지 않은 본능 FOMO(Fear Of Missing Out)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핫플이 지겹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후죽순 생겨나는 카페, 편집숍, 호텔, 식당들- 소위 '핫플'로 소개되는 곳들 중에서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한 디자인만 있는, 사진 찍기 좋은 스폿만 있고 알맹이는 텅 비어있는 아류작들이 지겹다.


하나가 잘되면 이 기회를 놓칠세라 비슷한 디자인과 분위기의 아류작들이 앞다투어 생겨난다. 어디선가 본 패러디에 친구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핫플들은 테이블이 다 의자보다 낮아서 거의 엎드려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혹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만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그래야 힙하다고. 다들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안다는게 웃프다.


오리지널과 아류의 차이는 뭘까?

바로 아류는 오리지널의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따라 했지만 자신만의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다. 알맹이가 없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은 맛은 보장되어 있고 예쁘기도 하면 더 좋다는 말이다.

맛은 없는데 보기에만 좋다면 그건 그냥 장식품이다.


내 인스타그램이 촌스러워 보였는지 자꾸만 광고에 '인스타그램 감성' 사진을 잘 찍는 방법과 촌스러운 인스타그램 피드를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가 떴다. 하도 여러 번 뜨길래 한번 어떤 내용인가 봤더니 확실히 사진들이 요즘 말하는 '인스타 감성'으로 잘 정돈된 느낌이라 눈이 갔다. 그리고 강의하시는 분의 계정도 있길래 팔로우를 시작했다. 예쁘고 분위기 있는 사진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런데 왜일까 뭔가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피드는 보기에 좋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분과 아무런 커넥션을 느낄 수 없었고 결국 얼마 안가 언팔을 했다.


인스타그램은 보이는 게 전부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냐 하실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에서도 삶, 가치관 등 나름 진중한 이야기를 하는 유저로써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분들과 연결되고 소통하고 있어 나에게는 그저 예쁜 사진을 보러 이용하는 플랫폼 이상의 역할을 한다.


내가 팔로우하거나 서로 팔로우하고 있는 분들의 피드는 설령 '인스타 갬성'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읽은 책, 지금 하고 있는 고민, 배우고 느낀 점등을 꽤나 긴 분량으로 적어 내려 간 포스팅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좋다. 우리는 그럴 의도만 있다면 인스타그램에서도 충분히 진심을 나눌  있다.


내가 디자인 프레스에 해외통신원으로 글을 기고할 때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주제를 선정한다.

싱가포르에 7년 동안 살면서 개인적으로 알게 된 디자이너, 비즈니스 오너들의 영감을 주는 '스토리'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다들 잘 알다시피 싱가포르에는 멋지고 화려한 핫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오리지널 이야기가 없다면 소개하지 않았다. 그런 곳들은 잠깐 인기를 끌지는 몰라도 분명 금세 사라질 거니까.


오랜 시간 사랑받는 사람들과 장소의 공통점은 '그들만의 진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 트렌드에 휩쓸려 시작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 말이다.

마지막은 내가 좋아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명언으로.


No need to hurry
No need to sparkle
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

서두를 필요도 없다
반짝일 필요도 없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도 없다

- Virginia Woolf 버지니아 울프


PS. 부디 오해는 말길. 나 역시 좋은 디자인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디자이너들을 존경한다. 그렇기에 진심을 다해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쓴다. 다만 공허함이 느껴지는 그저 겉모습만 예쁜 아류와 디자이너의 철학과 스토리가 담긴 오리지널 '디자인'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PS-2.  인스타그램에서도 진심이 있다면 진짜 소통은 가능하다.

"소통해요~"라고 하는 사람들은 빼고. (웃음)

https://www.instagram.com/erika.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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