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 매리어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 체인의 경우 자신들이 그 호텔을 직접 소유, 운영까지 맡는 곳도 있지만 실제 오너는 따로 있는 경우도 많다.
브랜드가 가진 운영 노하우와 체계적인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
싱가포르에는 전체적인 디자인과 틀은 브랜드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만 호텔 곳곳에서 오너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호텔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수준급의 아트 컬렉션을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싱가포르 럭셔리 호텔의 남다른 아트 컬렉션> 시리즈 첫 편에서는 세인트 레지스 싱가포르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국내에서는 2018년 김정은이 싱가포르 방문 시 묵은 곳으로도 잘 알려진 호텔.
뉴욕 맨해튼의 5성급 럭셔리 호텔로 유명한 세인트 레지스는 미국의 비즈니스맨 존 제이콥 애스터 4세 John Jacob Astor IV에 의해 세워져 뉴욕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호텔 중 하나이다. 세인트 레지스라는 이름은 뉴욕 북동쪽에 위치한 동명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따왔다고 한다.
럭셔리 호텔 체인으로 새 호텔을 오픈하는 것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하는 세인트 레지스로서 동남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문을 연 곳이 바로 싱가포르.
대표 쇼핑거리인 오차드 로드와 대사관이 모여있는 고급 주택가 사이인 탕린 로드에 위치해 있는데, 마치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하는 모던한 외향을 자랑한다.
호놀룰루에 본사를 두고 글로벌 오피스를 운영하며 호텔 & 리조트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는 WATG(Wimberly Alison Tong and Goo)에서 디자인을 맡았다.
세인트 레지스 호텔의 아트 컬렉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조각품이다. 입구에서부터 상당한 규모의 독특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조각품들의 상당수는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는 살집이 있는 인물들로 틀에 짜인 기준을 따라가는 사회를 장난스럽게 비평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 특징이 잘 드러나는 ‘춤추는 누드 커플’, ‘기대어 있는 여성’ 조각들을 호텔 입구와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과 함께 대만의 조각가로, 독특하게도 불상을 만드는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현재는 불교와 도교의 요소를 작품에 반영하는 리 첸 Li Chen의 작품들이 수영장과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감상할 수 있는 호텔 외부에 설치되었다.
호텔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호텔 체크인 카운터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리셉션이 기다리고 있다. 게스트들은 의자에 앉아 체크인 과정을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등 뒤 벽을 장식하고 있는 대형 작품을 보게 된다.
‘불멸자들의 집회’라는 이름의 실크 위에 그려진 페인팅으로 세인트 레지스 호텔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미니멀한 디자인이 대세인 요즘 세인트 레지스의 화려한 아르데코 양식의 인테리어는 독보적이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경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중국과 동양풍의 이국적인 아이템과 양식을 즐겼던 시누아즈리 요소가 돋보이는데, 태국의 고급 실크 브랜드인 짐 톰슨의 제품과 샹들리에가 방마다 사용되었다.
덕분에 럭스 트래블러, 포브스 트래블 등의 매체에서 럭셔리 호텔의 대표로 소개되곤 한다.
2018년 김정은이 싱가포르 방문 시 묵은 것으로도 유명해진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에는 특별히 의뢰한 마르크 샤갈과 샘 프란시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세인트 레지스 싱가포르는 총 70점에 달하는 오리지널 예술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삶의 예술 Art of Living’이라는 이름으로 전문 해설가와 함께하는 아트 투어 또한 진행하고 있다.
30분 정도 진행되는 이 투어는 무료로, 프레지던트 스위트 룸을 포함해 호텔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의 설명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다.
세인트 레지스 호텔은 해외 아티스트는 물론 특히 로컬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고 있는데, 호텔 게스트와 방문객들이 편하게 앉아 쉬는 라운지 공간에 전시된 첸 케 잔 Chen Ke Zhan의 작품들은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는 스폿이기도 하다.
첸은 현재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중 하나로 손꼽히며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싱가포르 파빌리온을 담당하기도 했다.
세인트 레지스 호텔이 자랑하는 아트 컬렉션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아트 오브 리빙’ 프로그램은 현지 언론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관련 매체에서 다루어지며 수많은 호텔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특별한 입지를 구축한 듯하다.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국내 예술가들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장소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호텔 이상의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