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FILMS
국립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싱가포르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인 숍하우스는 1840년에 처음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1층은 물건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샵) 2층은 주거형태로 사용하기 위한 (하우스) 목적이었다.
싱가포르를 여행하다 보면 위의 사진과 같이 컬러풀하면서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건물들을 볼 수가 있는데 지어진 시기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이 있지만 통틀어서는 숍하우스라고 한다.
국내에서 한옥을 개조한 카페나 편집샵 등이 트렌디해진 것처럼 싱가포르에서도 최근 숍하우스의 내부를 개성 있게 리모델링한 곳들이 많이 늘었다. (참고로 외부는 정부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된다.)
처음으로 소개할 곳은 싱가포르의 힙한 동네 중 하나인 덕스턴 로드 Duxton Road의 초입에 위치한 영상 프로덕션 스튜디오의 작업실. 덕스턴 로드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에는 이 거리의 숍하우스에서 아편과 겜블링이 성행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바, 힙한 카페들이 들어서 있는 동네로 바뀌었다. 그런 덕스턴 로드의 코너에 있던 숍하우스를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게 개조해 스튜디오로 사용 중인 EL FILMS를 방문했다.
이날은 싱가포르의 디자인 위크 주간이라 한 건축사무소에서 열리는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지나가면서 슬쩍 창문 안으로 비친 이 멋진 공간이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간단히 본인 소개를 하고 공간이 너무 멋져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니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두바이를 거쳐 싱가포르에 얼마 전 오피스를 연 영상 제작 스튜디오라고 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두 형제가 함께 Electric Lime Films를 줄여 EL Films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스튜디오는 알고 보니 데이비드 베컴, 페이스북, 파커 등 다양한 업계에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해온 실력파들.
싱가포르 스튜디오를 찾던 중 이 덕스턴 로드의 숍하우스를 발견했고 디자인부터 공사까지 직접 계획, 실행했다고 하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본 실내공간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멋졌고 흔쾌히 2층의 공간도 보여주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스튜디오 투어를 나섰다.
기존에 있던 벽지는 다 떼어내고 벽돌을 노출시켰고 카펫이 깔려있던 바닥은 밤나무 마루로 바꾸어 미니멀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2층에서는 주로 편집 작업이 이루어지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높은 천장 덕분에 실평수보다도 훨씬 넓고 쾌적하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
작업공간 겸 프레젠테이션 공간 옆으로는 편안하지만 멋스러운 소파와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팀원들은 스토리보드를 짜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등 자유롭게 이 공간을 활용한다고.
개인적으로는 숍하우스의 노출 천장을 참 좋아하는데 같은 공간이라도 자연광이 비추는 실내는 그 어떤 멋진 조명보다도 밝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옆에 마련된 작은 독립된 공간은 좀 더 집중이 필요한 세밀한 편집 작업을 하는 팀원을 위해 마련되었다.
숍하우스는 좁고 긴 구조가 특징이며 안쪽에서 계단으로 이어진 2층으로 올라가면 샵의 주인이 거주하는 주거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1층에서는 팀원들이 긴 테이블 형태의 책상에서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업을 한다. 영상제작에서는 바로바로 의견교환이 필요한 만큼 각자 데스크에서 일하는 것보다 협업을 하기 쉬운 환경이라고.
스튜디오 투어가 끝난 다음 지금까지 작업했던 프로젝트를 함께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좋아하는 브랜드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상처럼 Aesop, Monocle, Cereal이 공통적으로 나와 역시나라며 웃었다. 전체적인 콘셉트를 정할 때 이들 브랜드/매거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실외도 실내도 자신들만의 색깔이 뚜렷했던 EL FILMS의 스튜디오.
다시 한번 숍하우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