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온 오차드 & 부기스 플러스
싱가포르는 역사가 짧아 유서 깊은 오래된 건축물이 많지 않다고 해서 아쉬워하긴 이르다.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장려하는 만큼 과감하거나 혹은 신선한 디자인이 용납되는 -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색다른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이번 <싱가포르에서 꼭 봐야 할 건축물> 시리즈에서는 싱가포르라서 가능한 독창적인 디자인들을 다양한 타입별로 소개하려 한다.
리테일 편
넓은 대로를 따라 명품 매장과 대형 쇼핑몰이 즐비하게 늘어선 이 곳은 싱가포르의 대표적 쇼핑지역인 오차드로드 Orchard Road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핑백을 가득 손에 든 여행객들로 언제나 분주한 이곳은 싱가포르의 잠들지 않는 거리.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곳이라면 아마도 MRT( 싱가포르의 지하철) 오차드 역과 연결된 쇼핑몰인 아이온 오차드 몰일 것이다.
2009년에 오픈한 이 거대한 쇼핑몰은 지하 4층, 지상 4층 총 8층에 이르는(총 26,465평) 리테일 공간과 4층의 주차장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싱가포르의 부동산 큰손인 캐피타랜드 CapitaLand와 선 헝 카이 부동산 Sun Hung Kai Properties의 합작투자로 화제가 되었다. 2016년에는 포브스지 Forbes에서 아이온 오차드를 싱가포르의 최고 쇼핑몰로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온 오차드의 마스터플랜은 영국에 본사를 두는 건축사무소 베노이 Benoy가, 설계는 현지 사무소인 RSP가 맡았다. (베노이는 서울 IFC 몰과 롯데월드 몰의 설계를 맡기도 했다). 건물의 정면인 파사드는 마치 거대한 메탈 캐노피처럼 보이는데 자연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패턴과 질감에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라고 한다.
오차드로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orchard는 과수원을 뜻한다) 이 거리는 한때 육두구, 후추, 과일 과수원으로 번영한 지역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이 도시국가에서 가장 현대적인 곳이 되었지만 그 역사에 오마주를 표하는 의미로 베노이가 선택한 요소이다.
시공은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설계기업인 아룹 ARUP이 맡았다.
나무 캐노피와 단풍을 연상케 하는 이 파사드의 디자인은 두 개의 ‘나무 기둥’에 달려있는데 이 두 개의 탑은 뿌리와 싹을 상징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아이온 오차드는 2006년에는 매년 11월 프랑스 깐느에서 열리는 국제 리테일 부동산 쇼인 마픽 Mapic에서 베스트 리테일 개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차드가 브랜드샵과 명품 브랜드들로 유명하다면 부기스는 싱가포르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싱가포르의 명동, 혹은 하라주쿠 같은 지역이 되겠다. 작은 개별 샵들이 모여있고 저렴한 기념품 샵을 살 수 있어 항상 바쁜 부기스 정션 Bugis Junction 옆으로 독특한 쇼핑몰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부기스 플러스 Bugis +이다. (예전 명칭 일루마 Iluma)
싱가포르의 현지 건축사무소인 WOHA가 설계를 담당했고 아이온 오차드의 엔지니어링을 맡은 ARUP이 파사드와 화재 컨설팅을 담당했다.
싱가포르의 많은 건물들이 그러하듯 부기스 플러스의 매력 또한 밤이 되면 더 빛을 발하는데 그건 바로 건물을 감싸고 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크리스털 메쉬 덕분이다. 부기스 지역을 활기 넘치는 문화지구로 조성하고자 한 정부의 의도에 잘 부합하도록 이 빛의 움직임은 역동적인 인상을 만들어낸다.
크리스털 메쉬 미디어 파사드라고 불리는 이 디테일은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아트 & 건축 스튜디오인 리얼리 티스:유나이티드 realities:united와 함께 작업한 결과이다. 크리스털 메쉬가 빌딩의 외부 골격을 구성하고 실제로 물리적인 지지는 내부의 또 다른 벽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파사드는 특별히 제작된 소프트웨어에 의해 컨트롤되며 에너지 절약 전구를 사용했다.
부기스 플러스는 예술, 리테일, 교육의 종합몰로 운영되고 있어 주로 10대-20대에게 인기가 많은 영캐주얼 브랜드가 입점해있다.
중앙 공간의 상당 부분이 비워져 있는데 덕분에 큰 쇼핑몰에서 받는 답답함 대신 탁 트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하지만 넓은 중앙 공간 주위로 리테일 공간이 넓게 퍼진 형식으로 배치되어 사실 독창적인 디자인에 비해 실제 이용하는 고객의 동선은 조금 불편하다는 평이 있기도 하다.
외관은 현대적인 디자인의 표본이지만 오래된 전통을 간직한 부기스 지역의 개성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주변 건물들의 규모와 사용되는 소재의 질감을 고려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대표적 쇼핑거리인 오차드와 부기스의 첫인상을 담당하고 있는 아이온 오차드와 부기스 플러스. 묘하게 닮은 듯 다른 두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