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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취업비자 취소만 하지 말아 주세요

by 에리카

싱가포르는 보통 첫 3개월을 probation period 즉 수습기간으로 정해두고 직원과 회사가 서로 케미가 맞는지를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한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나서는 배짱도 생기고 이 수습기간이 직원 또한 이 회사가, 이 직무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여유를 가지고 대할 수 있다는걸 알았다.


하지만 사실 제대로 된 첫 직장은 이 회사가 처음이었던 당시에는 모든 게 너무 걱정되고 긴장되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도 아니고 외국에 혼자 와있으니 아무도 의지할 상대가 없다는 생각에 더욱더 몸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회사가 이 3개월 동안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일거수일투족 지켜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저 일주일 노티스만 주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비자도 취소되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겁이 났다. (정직원일 경우엔 한 달 노티스가 보통이다) 그래서 이메일 하나를 쓸 때도, 상사에게 말 한마디를 할 때도 내가 혹시라도 실수를 하진 않을지 내 언어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형편없다고 생각하진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일본인 고객들이 가장 좋아했던 하와이의 코 올리나 비치 클럽 ©MVCI

처음 입사해서 2주 동안은 트레이닝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메리어트 베케이션 클럽이라는 콘셉트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오너십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고객들이 자주 하는 질문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다루는 리조트의 기본정보들에 대해서 등등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의 양이 방대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써보는 프로그램을 그것도 영어로 트레이닝을 받으니 처리속도가 반으로 줄어든 기분이었다. 사내 트레이너였던 M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말도 엄청나게 빨라서 트레이닝을 연이어서 받고 난 후에는 뇌에 과부하가 걸린 느낌이랄까. 말은 M이 다 했는데 왜 내 입에서 단내가 다는 건지. 가뜩이나 저혈압이라 휘청휘청할 때가 많은데 이 시기에는 거의 좀비처럼 스르르 스르르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출근 후 고민하는 마음을 썼던 일기

나는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블로그에 일기를 남겨왔었는데, 지나고 나서 읽어보면 다 좋은 추억이 되어서 참 좋은 것 같다. 이 때도 힘들었던 마음을 적고는 금세 또 "뭐 일단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또 단순하게 결론 내리고 주말은 신나게 놀았다 ㅎㅎ"라는 부분이 참 나 답다.



메리어트 계열사의 호텔, 리조트를 예약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 사용법까지 배우고 난 후, 나는 본격적으로 일본인 팀에 소속되어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상사는 조금 깐깐한 타입의 여성분이었다. 이 수습기간에는 나 말고 한국인 남자동료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나마 서로 힘든 점을 이야기하고 의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업무를 해보니 트레이닝 때 겁을 먹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프로그램도 사용해보니 금세 적응이 되었고, 일반 고객들이 아닌 리조트 오너십을 구매한 고객들이다 보니 오너십을 재판매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케어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사이로, 보통의 고객 서비스와는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내 포지션의 명칭은 멤버십 어드바이저 Membership Advisor로 고객이 자신의 멤버십을 잘 활용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고객들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멤버십의 혜택과 사용법을 우리에게 물으며 도움을 요청하는 구조였고 게다가 일본인 특유의 예의바름, 공손함이 고객 서비스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매너가 좋았고 "예약을 부탁드립니다." 혹은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요."와 같은 태도로 대하니 별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내가 20대 초반을 일본에서 보내면서 일본어를 배웠던 것이 문제 아닌 문제가 되었던 것.

당시에 친구들과 즐겨 쓰던 일본어 스타일이나 표현이 배어있던 나의 일본어는 정중하고 세련되게 말해야 하는 이 멤버십 어드바이저 역할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종종 내가 고객과 통화를 하고 있으면 피드백을 주기 위해 상사인 U상이 내 전화를 함께 듣곤 했는데, 전화를 끊고 난 후에 내 자리로 와서 방금 내가 쓴 어떤 표현이 부적절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바로바로 고쳐주었다.


영어 선생님으로도 일한 적이 있던 U상은 영어 문법에도 무척 꼼꼼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인 팀원들에게도 언제나 좀 더 정중하고 좀 더 세련된 표현을 사용할 것을 항상 강조하곤 했다.

사실 처음엔 계속해서 지적을 당하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의기소침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한때는 U상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철없는 오해였지만.


누군가가 내가 하는 전화를 듣고 있고, 이메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긴장이 돼서 오히려 더 실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U상은 계속해서 나를 집중적으로 트레이닝시켰고 가끔은 정말 눈물이 날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그녀의 스파르타식 트레이닝이 나의 일본어, 영어 실력을 늘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U상과의 보충수업으로 비즈니스 일본어 예시를 공부했던 그때 © Wasabi

U상은 나에게 개인 공부 할당량을 주면서 비즈니스 메일을 쓰는 연습을 시켰고,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당근도 주면서 상사가 아니라 마치 선생님처럼 나를 특별 지도해주었다. 그렇게 20대 초반의 아이 같은 말투였던 내가 세련된 비즈니스 일본어를 익히게 된 것은 그다음에 일본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모든 것은 다 필요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싱가포르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하셨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짤리지 않았고 취업비자도 취소되지 않았다.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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