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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도 서러운데 앰뷸런스 비로 70만 원이라뇨

싱가포르 병원비, 너 나빴다 진짜

by 에리카

이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서럽다. 흑흑. 눈물 좀 닦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어떻게든 3개월 수습기간을 무사히 넘겨서 정직원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열심히 트레이닝을 받고, 실습을 하고, U상과의 스파르타 일본어 수업도 들으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인 3개월이 그때는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트레이너와 매니저들의 업무평가를 통과하고 정직원으로 다시 오퍼 레터를 받는 날짜를 D-DAY로 저장해 두고 그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결정적으로 이 수습기간 동안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보험이 적용이 되질 않았는데, 그래서 이 기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프지 않아야지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겠나. 일상생활에서는 허당끼 넘치는 나이지만 일적인 면에서는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엄청 몰아붙이는 성격이 결국에는 몸에 무리가 됐던 것 같다. 같이 지냈던 룸메의 말에 의하면 나는 밤에 잠꼬대를 하는데 영어로 했다가 일본어로 했다가 하면서 뭔가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게 너무 웃겨서 룸메가 대답을 하면 이어서 설명을 했다고 하는데 도통 나는 기억에 없었다. 대신에 아침에 일어나면 뭔가 푹 잔 것 같지 않고 몸이 피곤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혼자서 긴장상태로 보내다 보니 몸에 많이 무리가 갔던 걸까. 이상하게도 싱가포르에 온 이후로는 생리가 없었다. 건강체질이라 항상 생리주기가 규칙적인 편이었는데 두 달 연속으로 생리가 없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날 아침, 드디어 일이 터졌다.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기 이주 전 정도 됐을까, '정말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하며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생리가 터졌는데 거의 하혈 수준으로 피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게 아닌가.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다. 일단은 진정될 때까지 화장실에서 기다리는데 이와중에도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U상에게 전화를 거는데 아파서 늦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게 왜 그렇게 꺼내기 어렵고 떨리던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고, 순진했다.


늦는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는데 혹시 내가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면 어쩌지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프더라도 수습기간인데 지각을 하면 안 되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일단은 정신을 차리고 출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어째 어째 출근을 했다.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는 핑핑 돌았다.


오피스에 도착해서는 U상에게 늦어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내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동료가 내 얼굴을 보고는 괜찮냐고 묻기에 괜찮다고 하고는 가방을 정리하고 파일을 꺼내려고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책꽂이에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나는 의식을 잃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뒤에 있던 내 의자 위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바로 박지는 않아서 머리에는 충격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대로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동료들이 나를 흔들고 괜찮냐고 묻는 소리에 눈이 떠졌고 사무실 안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나 있었다. 나는 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저 온 세계가 핑핑 도는 느낌에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오피스 매니저가 구급차를 부르는 통화소리가 들렸고, 동료들의 "지은 쨩 괜찮아? 어떡해..."라며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한 병원 직원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졌고 근처 병원에 이송되었다. 중간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링거를 맞고 있었고 U상이 내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괜찮냐는 U상의 말을 듣자 나는 지금까지 눌러왔던 감정이 터졌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서럽게 엉엉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나는 그때까지는 깐깐한 U상이 혹시라도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건 아닐까, 내가 기준에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계속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U상은 "지은 쨩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지금까지 아주 잘하고 있어. 스스로를 엄청 푸시하는 스타일이지?"라며 슬며시 웃는 게 아닌가.


나는 눈물 콧물을 닦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자기도 비슷한 성격이라 잘 안다고,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오피스가 아닌 장소에서, 게다가 평소에 잘 웃지 않는 U상이 그렇게 편안한 태도로 대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는지 대화를 하면서 점점 몸이 안정되는 게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간호사가 커튼을 걷고 들어와 좀 괜찮아졌는지 물으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지만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으니 당분간 쉬는 편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청난 무게의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U상도 걱정하지 말고 3일 정도 집에서 푹 쉬고, 어떤지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오피스로 돌아가 봐야 해서 간호사에게 뒤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응급실의 간호사는 나에게 좀 더 쉬고 나서 이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며 종이와 펜을 건네주었다. 무슨 서류인지 읽어보니 내가 병원으로 올 때 타고 온 앰뷸런스 출동비용과 응급실 이용비용이 적힌 청구서였다. 아픈 사람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런 서류를 들이민다는 게 참 너무하다 싶기도 했지만 응급실에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어서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금액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앰뷸런스 출동비용이 무려 800불(한화 약 70만 원)이었던 것. 그리고 내가 그 응급실을 이용한 얼마 되지 않는 시간과 링거로 400불 정도가 청구되어 있었다. 세금까지 해서 나는 거의 1300불 정도를 청구당했는데 나는 아직 보험이 적용이 되지 않는 상태라 그대로 생돈을 다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었다. '아, 외국에서 아프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내가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프거나 말거나 결국에 아픈 건 나이고
그걸 회사는 책임져주지 않는다라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얻은 경험이었다.


앰뷸런스를 부른 오피스 매니저가 비용을 대신 내줄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그 상황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잠시 원망한 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리 비용을 말해주고 부를 건지 내 의사를 묻지그랬어... 라며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나는 이때의 경험 때문에 어떤 일도 내 건강을 해치면서는 하지 않는다는 신조가 생겼다.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지만,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확실했다. 아프면 나만 손해고, 회사는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일을 열심히는 하되 적절하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을 항상 가장 우선순위로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엄청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 큰 교훈을 얻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자매님들 중에 나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부디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특히 우리 여자들은 생리주기야말로 가장 먼저 알려주는 첫 번째 경고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 건강이다. 내가 아프면 무슨 부귀 영화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돈 모아도 한번 아프면 저렇게 훅 나간다. 그러니 내 몸은 내가 챙기자!

그래도 진짜 싱가포르 병원비... 너... 다시 생각해도 너무 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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