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긴 했지만 나는 다행히도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정직원으로 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수습기간보다 월급도 올랐고, 드디어 보험도 커버가 되고! 무엇보다 심적으로 엄청난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드디어 이제는 어딘가에 정식으로 소속되었다는 느낌이 생각보다 무척 든든했다. 아쉽게도 함께 입사했던 한국인 남자동료는 수습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인 팀에는 내가 유일한 외국인 직원이었다.
10명의 소규모 팀에서 혼자 한국인으로 일한 다는 건 꽤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모국이 아닌 외국에 자신의 의지로 나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형적인”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일본인 팀은 나를 포함해서 여자 직원이 9명, 남자 직원이 1명이었는데 다른 동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웃음) 다들 캐릭터가 무척 특이했다. 유일한 남자 직원이었던 Y상은 내 옆자리에 앉아 특히 친하게 지냈는데, 누구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우리 모두 게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Y상은 나보다도 더 나긋나긋한 말투에(아니, 그 누구도 Y상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웃음소리 또한 정말 특이했는데 Y상이 고객과 통화를 하고 있으면 나는 그 통화내용에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집중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일본어 데스크로 연결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면 팀원 중 누구라도 지금 통화가 가능한 사람이 전화를 받아서 대응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고객의 멤버십 번호를 시스템에 입력하면 이전 통화기록과 우리가 어떤 예약을 도와줬는지, 클레임이 있었다면 그런 내용도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고객을 전담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고객들 중에서는 전화를 받으면 “Y상 연결될까요? Y상께 상담을 하고 싶어서요.”라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Y상은 전화를 받으면 고객의 안부를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지난번 여행은 어땠는지, 심지어 고객의 아드님이 어디에 취업을 한 이야기, 다음 휴가 때는 아들 가족과 함께 갈 건데 어디가 좋겠냐며 묻는 고객과 거의 한 시간씩 통화를 하곤 했다. 하이라이트는 중간중간에 “꺄! 핫핫핫!”하며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Y상의 엄청난 하이톤의 웃음소리였는데, 매니저인 U상을 제외한 우리 팀의 큰 즐거움이었다.
Y상의 고객응대 스타일은 고객에게는 무척 즐겁고 고마운 일이었지만 각자 하루에 얼마만큼의 전화와 이메일을 처리했는지, 그 수치와 고객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업무평가를 하는 만큼 Y상은 언제나 최하위권을 기록하곤 했다. 다른 직원들이 전화를 5통 처리할 때 Y상은 아직 한통도 끝내지 못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보는 매니저는 속에서 천불이 났을 터.
덕분에 Y상은 언제나 늦은 시간까지 밀린 이메일을 처리하느라 야근을 하고 본사에서 특별지시를 받곤 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호텔에서 VIP 고객 담당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Y상이 사용하는 기품 있는 일본어 표현들을 매일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기에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였다. 그리고 새침데기 같은 성격에 유머감각이 있는 Y상은 같이 일을 하는 동료로는 최고의 옆자리 짝꿍이었다.
내 앞자리에는 K와 Y가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그 둘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이미 친한 사이였고, 나와 비슷한 또래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K는 발랄한 성격에 만화 캐릭터 같은 사람이었는데, 말레이시안 남자 친구와 동거 중이었는데 언제나 아침에 출근해서는 그 전날 남자 친구와 뭘 했는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다 업무시간이 시작되고 나서도 이야기를 하다 U상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조용해지는 그녀 덕분에 마치 여고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Y는 어릴 때 가족이 다 같이 싱가포르로 이민을 온 케이스였는데 친절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두운 면이 있는 그녀는 내가 제일 대하기 어려웠던 동료였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오하요 고자이마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매번 내가 뭘 입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듯한 은근한 시선이 느껴졌는데, 치마를 입거나 원피스를 입은 날은 꼭 “오늘 지은 쨩, 데이트 있나 봐?” 라며 묻곤 했다. 그저 내가 입고 싶어서 입은 것뿐인데라고 하면 “흠~ 그래?”라고 대답을 하는데 거슬리긴 했지만 딱히 뭐라 콕 집어서 표현하기엔 애매한 그런 기분 나쁨이었다. 그냥 기분 탓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대부분은 넘겼다.
그 외에도 점심때마다 매번 내가 뭘 먹는지 물어보고, 간식으로 사과나 견과류를 먹고 있으면 “지은 쨩은 참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한국 여성들은 피부가 다 좋은데 식습관 때문인가 봐.”라고 한 다음에 “그런데 진짜로 성형도 많이 해?” 라며 눈을 반짝이며 묻는데 그 음흉한 저의가 느껴져서 “잘 모르겠네? 일본이랑 비슷한 정도 아닐까?”라고 응대하곤 했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대놓고 하지 그러니라고 해주고 싶었다. 그 이후로도 Y는 언제나 상냥한 말투로 은근히 사람을 자극하는 재주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스테레오 타입의 음흉한(?) 일본인이 실제로 있다면 바로 Y였다.
또 한 명, 재미있는 캐릭터인 M상은 싱가포르로 오기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몇 년을 살다 온 싱글맘이었다. 그녀는 일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데리고 필리핀 남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본인의 말에 따르면 남자 친구는 필리핀에서 꽤 유명한 모델이었고 덕분에 마닐라에서 고급 콘도에 살며 보디가드와 메이드를 고용해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고 했다. 메이드는 집안일 전부를 해줄 뿐만 아니라 마사지에 네일아트까지 할 줄 알아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싱가포르로 이사할 때 그녀의 비자까지 함께 발급해주면서까지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녀의 메이드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도 많은데 이건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다!)
M상은 언제나 마닐라에서의 호화로웠던 생활에 대해 추억을 회상하듯이 이야기하곤 했는데, 쇼핑몰에서 쇼핑을 할 땐 언제나 보디가드가 자신과 딸을 보호했던 이야기, 마닐라에서 살던 콘도에 비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얼마나 가성비가 떨어지고 시설이 보잘것없는지, 싱가포르는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등등… 그러면 왜 싱가포르로 왔어요라고 묻고 싶어 지는 이야기들이었다. 하나뿐인 딸의 교육 때문에 오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닐라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실제로 몇 년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마닐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곳에서 행복하길!)
일본인 팀의 유일한 외국인으로 일하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한국인/외국인이라는 점을 다른 동료들이 가끔 잊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일본어로 자신들끼리 있을 때만 할 법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하곤 했는데 그걸 듣는 게 흥미로웠다.
M상은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것에 무척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필리핀과 싱가포르에 살면서 그 부분이 더욱더 강화된 것 같았다. 가끔 싱가포르 사람이나 생활수준에 관한 불만을 이야기하며 “역시 일본의 서비스가 세계 최고지. 어디 가서도 그런 수준은 기대할 수가 없어.” 라던가 (이 부분은 동감한다!) 얼마나 일본의 식재료가 최고인지, 디자인이 최고인지, 시민의식이 최고인지 등등 기승전 일본 최고인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M상의 주된 낙이었다. M상은 장을 볼 때도 꼭 일본 슈퍼마켓인 메이지야에서만 본다고 했다.
M상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다른 동료들도 맞장구를 치며 어느샌가 “일본 최고!”라고 외쳐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갔는데, 그러다가도 뒤늦게 내가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면 아차 싶었는지 “한국도 그렇지?” 라며 한 마디씩 덧붙이곤 했다. 그러면 나는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게 나도 공감한다고 하곤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아… 일본인들끼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나 또한 해외에 살면서는 참 새삼 한국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일본인들끼리 있을 때만 했을 법한 대화를 날 것 그대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마치 스파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며 느낀 것은 그들이 스스로 그렇게 자부심을 느낄 만큼 일본의 서비스 마인드는 정말 놀라울 만큼 섬세하단 것이었다. M상의 표현에 의하면 고객이 여기가 가렵다고 했을 때 딱 거기만 긁어주는 것은 하수요, 그 주위도 좀 더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은 중수요, 고객이 이야기하기도 전에 ‘고객님 여기가 가려우시죠?’라고 알아차리고 긁어주는 것이 진짜 고수라고 했다. 이 표현이 꽤나 인상 깊었던지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던 그녀의 표정과 몸짓마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팀에는 그 외에도 미국에서 살다온 섹시미가 넘쳤던 B상, 스페인 남편과 결혼해 인형 같은 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즐기던 K상, 필리핀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다 와 M상과 항상 필리핀을 그리워하던 S상 등 평범한 일본 사회에서는 잘 만나기 힘든 흥미로운 캐릭터들로 가득했다.
그때 일본인팀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고 들었던 것들이 내가 일을 할 때의 태도와 자세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하다. 대충대충 그저 해치운다는 마인드로 일을 대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프로의식을 가지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내 기준으로는 조금 피곤하게 느껴질 만큼 사소한 것에 신경을 써야 했지만 (그 리조트의 주방에 일본식 간장이 비치되어 있는지, 비데는 있는지 - 없으면 가지고 가려는 걸까?), 고객의 입장에서는 만족할 수밖에 없는 서비스였고 우리 팀은 언제나 고객만족 설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곤 했다.
심지어 손편지를 써서 고맙다고 보내오는 고객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싱가포르인 오피스 매니저가 우리 팀에 가져오면서 호들갑스럽게 놀라움을 표시하곤 했는데 그런 경우는 역시 일본 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열정은 넘치나 섬세함이 부족했던 내가 좀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은 일본인 동료들과 일을 하며 배웠던 가치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팀의 유일한 한국인으로 일했던 그때의 그 시간은 단순히 업무 이외에도 다양한 삶의 방식, 일을 대하는 태도, 진정한 의미의 서비스 정신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던 좋은 인생수업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