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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Jul 10. 2020

M상의 메이드 그녀는 구세주일까, 여자의 적일까

싱가포르 헬퍼 문화 이야기

전 편에서 잠시 나온 M상의 메이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자. 처음 M상의 메이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었다. 식사 준비를 포함해 집안일을 도맡아 해 주고 (심지어 일식, 양식 요리 자격증도 있고 M상보다도 일식을 더 잘한다고), 아이도 돌봐주고, 퇴근 후에는 마사지도 해주고, 네일아트도 해주는 그 완벽한 메이드 언니를 두고 M상은 자신의 구세주라고 했다.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녀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구세주의 월급이 얼마인지 아는가? 무려 혹은 고작 700불 (한국 돈으로는 약 60만 원 정도) 이란다. 나는 앰뷸런스를 15분 타는데 700불을 냈는데 말이다! 물론 순수 월급 외에도 생활비나, 비자 발급비, 그 외에도 정부에 내야 하는 등록비 등을 포함하면 1000불 정도가 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채 100만 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구세주”를 고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산업혁명이 아닌가!라고 처음엔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메이드 문화는 싱가포르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메이드는 집에서 숙식을 하며 집안일 대부분을 담당하고, 아이를 돌보기도 하는 가정부를 말하는데 헬퍼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출퇴근을 하며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 계약을 하느냐에 따라 자유롭게 고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출신 국가에 따라, 경력에 따라 월급은 달라지지만 그래도 한 달에 드는 비용은 최대 한화 150만 원을 넘지 않는다.

메이드 에이전시 광고 © LabourExpress

사실 집안일을 도맡아 해 주고, 육아까지 도와주는 이 멋진 언니들이야말로 싱가포르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출산 후에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숨은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하고 난 후에는 커리어를 포기하고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본인이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어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를 맡길만한 곳이 마땅치 않거나 따로 가정부를 고용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월급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복직 대신 직접 육아를 선택한다고 한다. 또한 비용을 부담할 수는 있어도 무책임한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에 비해 싱가포르에서는 여성이 부담 없이(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나는 아직 미혼이라 사실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퇴근 후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고 느낄 때 엄마들은 다시 집안일을 하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심으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싱가포르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출산 거의 직전까지도 만삭의 몸을 하고 출근을 하고, 출산 후에도 2개월의 육아 휴직 후에 바로 업무에 복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녀들의 이런 슈퍼우먼 라이프는 메이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끔씩 아침 출근길에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면 탑승자 전원이 여자일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새삼 싱가포르가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이 높은 곳이란 것을 실감하곤 했다. (메리어트 베케이션 클럽의 싱가포르 지사장 또한 여성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메이드를 고용하는 것으로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책임한 엄마”라는 비난을 들을 일이 없다. 그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엔 양면이 존재한다. M상이 ‘조금 오버를 보태’ 구세주라고 부르던 메이드는 사실 싱가포르의 암묵적인 사회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는 것이 현대 자본사회의 법칙이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임금이 너무 저렴한 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일부 비인간적인 고용주의 폭행, 학대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래도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성추행이나 불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메이드에게는 하루에 식빵 한 조각만 준다거나 화장실에서 잠을 재운다거나 하는 등의 학대가 적발되어 뉴스에 보도될 때도 있다.

메이드 학대사건으로 기소된 싱가포르인 부부 © The Straits Times

메이드는 법적으로 일주일에 하루를 휴일로 제공받는데, 일요일이면 싱가포르 전역의 메이드들이 이 달콤한 휴일을 즐기기 위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이는 곳이 바로 특이하게도 쇼핑거리로 잘 알려진 오차드 로드이다. 아마도 러키 플라자 쇼핑몰에 들러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거래소에 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러키 플라자 쇼핑몰과 명품 쇼핑몰인 파라곤 사이에 있는 공간이 바로 메이드들의 핫 스폿. 이 일대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가로수 밑에 돗자리를 펴고는 집에서 싸온 음식이나 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인 졸리비 Jolliebee의 치킨세트를 함께 먹으며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메이드들로 빼곡하다.

 

깜찍이 마스코트가 돋보이는 필리핀 언니 오빠들의 최애 맛집 © 졸리비

월요일이 되면 M상은 일요일에 친구들을 만나고 온 그녀의 메이드에게서 들은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곤 했는데 그 내용들은 실로 아스트랄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일부를 이야기해보자면, 필리핀에는 흑마법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신의 오줌을 상대방에게 먹이면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게 된다는 미신이 있어서 집주인의 식사에 오줌을 섞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무려 페트병에 담아서 찬장 안에 넣어두고 식사 때마다 넣는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부터, 아예 작정하고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딱 달라붙는 섹시한 옷을 입고 육탄공세를 벌이다 부인에게 걸려 쫓겨난 메이드, 결국엔 유혹에 성공해 임신을 하고 멀쩡한 부부를 이혼시킨 성공 케이스(?)까지 그 내용들이 어마 무시했다.


싱가포르의 노동법의 외국인 가정부 (FDW:Foreign Domestic Worker)에 관한 조항 중에는 6개월마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테스트와 임신할 경우에는 모국으로 송환 조치된다는 항목이 있다. 현지 뉴스인 스트레이츠 타임스 Straits Times에 의하면 1년에 약 100명의 메이드가 실제로 강제로 출국을 당한다고 한다.  


이것과 관련된 싱가포르의 도시괴담 중에는 주재원으로 파견 온 서양인 부부가 남편이 메이드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이혼을 하고 남편은 메이드와 재혼을 한 경우가 많으니 잘 단속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설마…싶다가도 실제로 나이가 지긋한 서양인 남성과 어린 동남아 여성이 함께 다정히 허리를 감싸고 오차드 로드를 걷는 모습을 볼 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김태희와 결혼해도 전원주랑 바람나는 게 남자라는데 정말 그런 건가요, 형제님들. 그렇다면 남자는 꽤 복잡한 존재다.  


자매님들 중에 혹시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메이드를 고용하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기존의 메이드를 추천받거나, 성실히 일한 경력이 긴 메이드를 고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직접 비교해보고 싶다면 ‘helper agency, maid agency in Singapore’이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업체들을 둘러보자.


자매님들도 부디 구세주를 만날 수 있기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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