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에 관심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던 사람들은 요새 "복이 많은 얼굴이세요", "기운이 좋아보여요"라며 레파토리를 바꿔서 나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좀 키가 커서 눈에 잘 띄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걸을 때 내 표정이 영 별로여서 일까. 유독 말을 붙이는 사람들이 많은 날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내가 그렇게 착해 보이나.'
그렇다. 생각해보면 어릴때도 엄마에게 그런 말을 종종 듣기는 했던 것 같다. "착해 빠져가지고" "맨날 약은 애들한테 뺏기고 어떻게 할래?" 그래서 유독 그 말이 듣기는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학 생활과 사회 생활을 거치면서 착하다는 그 말은 여지없이 따라붙었다. "OO는 착하니까" "너는 착하잖아" 그들에게는 그 말이 일종의 칭찬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조롱으로 들렸다.
하지만 사람 성격은 천성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본래 말싸움을 못하기도 했지만 모처럼 '싸움'을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날에도 결국 마무리는 훈훈하게 끝이 나곤 했다. 잘못한 후배를 혼낼 때도 심장이 떨려서 결국 제대로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섰고 엄청난 손해를 안긴 증권사에 따지러 들어갔다가 적당히 잘 마무리하고 돌아선 경우도 많다. 처음에는 씩씩 거리고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보면 이렇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착한 성격때문에 그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이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성격을 보고 이를 악용하려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들. 특히 유교 사상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최근 서점가에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이와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착하다는 것은 분명 미덕이지만 주변을 둘러 보면 '착한 사람'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대방에게 '만만하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그 사람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상사나 선배가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임을 간파하는 순간 나에게 부과되는 일은 점점 더 늘어난다. 겉으로는 '착하다' '편하다'는 당의정으로 포장될 수도 있지만 그 말 뒤에는 착한 천성을 이용하고자 하는 못된 심보가 섞여있다. 어찌된 일인지 상사는 평소 기가 세고 성격이 강한 후배에게는 지적도 잘 하지 않는다. 본인들도 대하기가 껄그럽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의 기분이 나쁜 어느 날, 제일 만만한 사람을 불러다가 온갖 혼을 낸 뒤에 1분 뒤 걸려 온 전화에 바로 '하하호호' 하는 상사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소름이 끼친 적도 있다. 누군가를 혼내거나 싸우면 잔상이 적어도 반나절 가야 정상이건만 그들에게는 타인의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참 뒤에 깨달았다. '아,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되는 거였구나.' 또한 그들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것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간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착하다는 것을 간파하는 순간 이를 악용해 막 대하는 덜 성숙한 사람들을 많다. 친하다는 면죄부로 다른 사람의 시간과 돈을 뺏고 감정을 상하게 하고도 그것이 어떤 상처를 주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는, 속칭 무례한 이들이다.
남녀 관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안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가족 관계에서도 착한 구성원에게 유독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골든슬럼버'에서 착하고 성실한 택배기사 건우(강동원)는 고교 동창 무열(윤계상)에게 속아 대통령 후보 암살자로 몰려 생사를 넘나드는 온갖 고초를 겪는다. 무열은 모범시민으로 꼽힐 정도로 착하고 정직한 건우의 품성을 악용한 것이다. 건우는 어느 날 뜬금없이 무열에게 연락을 받고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반가워하다가 '변'을 당했다.
건우는 "손해보면서 살면 어때요 착하게 사는게 죄인가요"라며 울부짖지만 그의 지인은 "최소한 속지는 말아야지"라고 말한다.
물론 건우의 말처럼 착한 것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메마른 이 시대가 원하는 덕목이자 판타지일 수도 있다. '권선징악'을 소재로한 영화와 드라마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허구와 다른 경우도 많다.
만일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늘어난다면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이 많다는 증거일 테니까. 무례한 사람들이, 무례한 사회는 언젠가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기 마련이지만 그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착한 사람들은 상처 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거절할 때는 거절하고,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사람 사이에 가까워질 때도 덥썩 정을 두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점차 거리를 좁혀가기. 분위기가 좀 어색하거나 험악해져도 참고 넘어가 보기. 혹시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거나 미움을 받을 것 같은 걱정때문에 정작 하고 일을 미루지 않기.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늘 당당하기.
특히 늘 인간 관계에서 뒤통수를 맞거나 자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싱글 여성들이라면 어떤 상황에든 휘둘리지 않고 소중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한다. 더 이상 사람에, 세상에 상처받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