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기자 Mar 20. 2018

여자는 미모가 재산이라구요?

  “여자는 미모가 재산 아니야?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 온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적잖은 기간 동안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라는 프레임에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온 사람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요즘은 남자들도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라지만 여성들은 자의든 타의든 외모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강요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어느 대학에서 18세부터 30세까지의 여성 1000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외모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중 82%는 성형수술의 필요성에 동감했고, 48%는 이미 성형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많은 여성들이 외모에 대한 강박 관념에 시달린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적정 체중의 여성들도 자신이 살쪘다는 생각에 휩싸인 사람들이 많다.

 

 물론 아름다움을 좇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이고 이를 추구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외모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매력 자본이고, 실제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일으키기도 한다. 문제는 미의 획일화와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다.

 

 여성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여자는 자고로 예뻐야한다'는 고정 관념과 함께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다. 이것은 TV, 영화, 광고 등 각종 대중 미디어에서 주입한 여성상이다. 예쁘다고 평가받는 여자들은 왠지모를 자만감에 사로잡히고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주눅들고 자신감을 상실한다.

 

 10여년전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의 뚱뚱한 파티쉐 김삼순(김선아), '그녀는 예뻤다'의 홍조에 뽀글머리 김혜진(황정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사랑스러운 극중 캐릭터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살찐 여성을 희화화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마르다 못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여자 연예인들을 본 날이면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진다. 학창 시절 다이어트 강박에 사로잡힌 친구가 음식을 삼키지 않고 맛만 보고 뱉어낸 것을 보고 처음에는 독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녀의 절박함이 이해가 간다. 식욕억제제를 처방받고 얼굴이 반쪽이 된 지인이 "너도 독한 맘 먹고 함 빼봐"라는 말을 한다면 혹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성형외과를 찾게 되고 이후에도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어디 고칠 데가 없나'를 끊임없이 살피게 된다.

 

 그러나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무조건 쌍꺼풀이 있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야 미남, 미녀라고 생각됐지만, 요즘에는 쌍커풀이 없는 '무쌍'이 매력적인 배우들도 적지 않다. 코도 예전에는 무조건 높은 것이 정답이었다면 이제는 분필을 넣은 듯한 인위적인 코보다는 조금 낮아도 귀여운 코를 선호하기도 한다. 오히려 성형발로 비슷비슷한 얼굴 속에 개성있는 얼굴이 더 선호되기도 한다.

 

 한때 양악 수술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치아 교정을 찾으러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 선생님은 얼굴이 약간 긴 듯 하다면서 은근히 양악 수술을 권했다. 돈도 돈이지만 사고도 아닌데 고의로 양쪽의 턱뼈를 부러뜨리고 하관을 안으로 넣는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다. 한동안 입이 좀 튀어나왔다는 불만에 휩싸였던 어느 날, 성형외과를 찾았는데 상담 내내 왼쪽 책상 한켠의 투명한 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m 가량의 투명한 통 속에는 양악 수술 후 잘려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턱뼈가 마치 전리품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진 양악 수술은 요즘은 뜸한 추세다.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양한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을 아름답게 여기는 당당한 자존감에서 나온다. 과도한 다이어트 역시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으로 뚱뚱한 남성 보다는 여성에게 더 가혹한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옥죄는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이 많다. 광고계에서도 거식증처럼 마른 몸매 대신 슈퍼 사이즈의 모델 열풍이 불었고, 누군가의 잣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는 탈코르셋 열풍이 불기도 했다.

 

 얼마 전 국내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영국 팝스타 제시 제이(Jessie j)는 자신이 쓴 곡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는 ‘퀸’(Queen)을 부르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대로 잊지 마세요. 거울을 볼 때 바꾸고 싶고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찾지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어요. 여러분 자신을 먼저 사랑하세요.“


 ‘I love my body/I love my skin/I am a goddess/I am a queen’으로 시작되는 후렴구가 되자 주변에 눈물을 훔치는 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찾아 보니 다양한 인종, 개성있는 외모의 여성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내면을 단단하고 채우고 인품이 좋은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빛이 나고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미모 순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 오랜 친구의 편안한 미소는 그 어떤 성형 미인과 바꿀 수 없다. 그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획일적인 외모 지상주의를 벗어나 진정한 아름다움 무언지를 돌아볼 정도로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미팅을 위해 화장을 공들여 하고 나간 날이면 집에 들어와 가면처럼 그대로 벗어두고 그 다음날 다시 쓰고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는 순간, 진짜 나를 만나고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민낯으로 가볍게 나가 볼 생각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자존감에서 나오는 것일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착한 사람'들은 왜 더많이 상처받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