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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Jul 17. 2018

'먹방'을 보는 여자


 "헉. 나 또 쪘네ㅜㅜ“

 진영씨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눈에 띄게 불은 살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절망했다. 순간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정상 범주에는 들지만 다소 통통한 편에 속하는 진영씨는 연초는 물론 수시로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하지만 10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체중은 매년 나이를 먹듯이 1년에 1kg씩 꼬박꼬박불어났고, 정확하게 오른쪽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다이어트 의지는 매번 꺾이건만, 왜 체중 그래프는 한번도 꺾이지 않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진영씨는 '살'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들을 갖고 있다. '이 정도는 맞겠지 싶어' 피팅룸으로 가져간 바지나 스커트가 들어가지 않을 때, 작년에 입었던 옷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타이트할 때, 살 빼고 입겠다며 옷걸이에 걸어놓은 옷이 몇년째 그 자리에 걸려있을 때...

 

 사실 위의 사례는 애교에 가깝다. 소개팅에서 호감을 가졌던 남자가 반년 뒤에 만나 "왜 이렇게 살이 쪘냐"는 타박(?)을 남기고 연락이 두절된 사연. 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가 "진영씨는 살만 조금 빼시면 퀸카일텐데..."라며 에둘러 그녀의 체형을 걸고 넘어지며 "뚱뚱해서 좋은 남자를 소개해줄 수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들어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핍박과 협박 속에서도 살을 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살 쫙 빼고 제대로 한번 대시해 보던가"라는 썸남의 다소 건방진(?) 발언이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살찐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을 들을 때에도, "기분 나쁘라고 말하는거야. 지금 애엄마 같애. 10kg는 빼야 해."라는 친구의 충격 요법도 큰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강한 화를 일으켜 스트레스성 식욕만 불러왔다.

 

 다이어트가 자기관리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그녀에게 ‘의지 박약’, 게으르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몸에 붙어 있는 살, 즉 그동안 먹은 음식들은 곧 그녀의 ‘삶의 역사’이기도 하다.

 

 상사에게 어이없는 잔소리와 불같은 호통을 들었을 때, 일로 인한 압박감이 머리 꼭대기까지 다다를때면 매운 떡볶이와 쫄면으로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렸고,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과 친구가 마치 남처럼 느껴져 외로울 때 부드러운 크림 스파게티나 달달한 단팥빵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휘핑 크림을 얹은 달달한 커피는 하루하루 지루한 회사 생활을 이겨낼 작은 용기를 줬다.

 

 이뿐만이랴.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달콤하거나 짭짤한 과자 한봉지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게 할 지구력을 줬고, 기분이 우울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입안에 감기는 달달한 초콜렛 한 조각은 작은 위안을 줬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살이 찌지 않는다고. 또 TV에는 허리가 한줌도 되지 않고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여자 연예인들은 김밥 한줄을 세끼에 나눠 먹은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모든 미디어는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여자는 날씬해야 사랑받는다’는 명제를 마치 기정 사실인양 떠들어댄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를 서슴지 않고 여기에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때문에 누구도 만나지 않고 먹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껴야한다면 과연 그것이 행복한 삶일까.

 

 하루종일 사람에게 시달리다가 엄마표 밥을 한술 떴을 때의 포근함, 오랫만에 반가운 친구와 기울이는 맥주 한잔과 맛있는 음식, 연인과 헤어진 친구와 함께 슬퍼하면서 마주한 소주 한잔 등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음식을 포기할 수 있을까.   

 

 진영씨는 ‘먹방’의 달인 이영자가 갖가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인생 뭐 있냐? 마음 편하게 맛있는 것 먹는게 행복이지"라는 외칠 때 묘한 통쾌함을 느낀다. 몸매 강박에 위축된 여자들의 스트레스와 심리를 한방에 날리는 것 같아서다.  

 

 진영의 엄마는 가끔 멍하니 먹방을 쳐다보는 그녀를 보며 “쯧쯧. 실 없게스리 왜 남이 먹는 걸 보고 있냐”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지만 진영씨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이후로 TV에서 수많은 ‘먹방’이 앞다투어 등장해 그녀의 눈과 귀는 물론 허기진 마음까지 맛있게 채워줬기 때문이다.      

 

 외신에서 다이어트를 하다가 거식증에 걸려 사망한 모델들의 사례가 관심을 끌면서 전세계적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주목을 받았다. ‘탈코르셋 운동’은 사회에서 ‘여성스럽다’고 정의해 온 것들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과도한 다이어트나 짙은 화장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마른 몸매의 여성이 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 맞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다이어트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은 아주 어릴 때 부터 시작된다. 여고시절, 살을 빼기 위해 음식의 맛만 보고 바로 뱉어냈던 친구의 다소 엽기적인 행동은 십수년이 지나도 좀처럼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진영씨 역시 거액을 주고 다이어트 약을 구입하고 먹었던 적도 있다.(후기에 속아 샀는데 거의 변비약이었다ㅜㅜ) 실제로 전세계에는 약 2만 6000개의 다이어트 방법이 존재하고, 다이어트약의 소비는 80%, 향정신성의약품이 들어간 식욕억제제도 70%가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다이어트 산업은 점점 커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최근 유행하는 '먹방'은 ‘마른 몸매’와 과도한 다이어트에 대한 반작용일 지도 모른다. 더불어 사회에서 강요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고 위축되기 보다는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자는 무언의 외침이다. 

 

 건강을 위한 운동과 다이어트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하지만 남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한 무리한 다이어트는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 

 

 지금 이 순간. 조용히 마음과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조금 오글거리더라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한다고, 고생했다”고 격려해보자. 내 모습을 더이상 혐오의 대상이 아닌 사랑하는 대상으로 인식을 바꿔보자. 


 내 몸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위축되기 보다는 장점을 찾는다면, 어제보다 훨씬 더 건강해진 몸과 함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을 그 누구도 사랑할 수는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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