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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Oct 19. 2018

뉴욕에서 생긴 일 part.2

"Can you take photo of me?"("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했던 그 문장. 혼자 다니다보니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할 일이 많아지고 그때마다 저 문장이 자동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엔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하는게 어색했지만, 사람 습관이 무섭다고 자주 하다보면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거절당해도 별로 상처받지 않게 된다.

 

 뉴욕은 워낙 혼자 여행 온 사람이 많다보니 유명한 관광지에서 혼자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종종 먼저 "사진 찍어줄까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어떤 중년의 여성이 카메라를 들고 뻘쭘해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그녀는 나에게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라고 하면서 정성껏 사진을 찍어줬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 속의 나는 날개 달린 천사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날개 달린 조각품 앞에 나를 두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때로는 같이 온 친구도 사진을 찍어주는 문제로 티격태격할때가 있는데 이렇게 정성들여 내 사진을 찍어주다니. "이것이 바로 인류애인가"라며 울컥한 마음에 뒤늦게 주위를 둘러봤는데 그녀는 이미 시라지고 없었다. "그 분은 분명 하늘에서 온 천사가 틀림없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진은 때로는 모르는 누군가와 친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음 먹고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한 날, 때마침 미술관의 한 편이 공사중으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은 현저하게 적었다. 조각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데 멀리서 한국인처럼 보이는 여성이 걸어왔다. 사진을 부탁했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홍콩인이었다. 화통한 성격의 그녀는 "엄청 기대하고 왔는데 미술관에 볼게 별로 없네요. 나가서 같이 커피나 마실래요?"

 

 우리는 근처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홍콩에서 CF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는 그는 마치 내가 모델인양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모델이 영 시원찮은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고 최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즐겨봤다는 그녀. 우연히 배우 이병헌과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녀는 입가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중일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중국 여성들은 좀 불친절하고, 일본인은 상당히 여성스럽지. 한국인은 그 중간인 것 같아." 사라가 말했다. 나는 그 전날 저녁 맨해튼 소호 근처의 리틀 이태리에서 펼쳐진 '생 제나로 축제'에 갔다가 겪은 경험을 털어놨다. "리틀 이태리의 근처에 있는 차이나 타운에 물을 사기 위해 들렀는데 중국인 여성 점원이 전혀 웃지 않고 '뭘 살 것이냐. 빨리 골라라. 우린 이제 곧 문 닫는다. 지금 시간에 음식은 전혀 안된다고 위압적으로 말하는 거야. 좀 무서울 정도로."

 

 그녀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물론 자신도 홍콩에 살고 있고 중국계지만, 중국은 모계 사회인만큼 여성들의 생활력이 강하고 상당히 거친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내 생각에는 일본이 가장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고, 중국은 모계 사회니까 그 정도가 덜 한 것 같아. 한국은 그 어디 중간쯤 아닐까?"
 
 물론 하나의 사례로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같은 아시아 여성들도 사는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결혼했다는 그녀에게 한국에서는 결혼할 때 통상 남자가 집을 마련하면 여자가 집에 들어가는 혼수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더니 사뭇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물론 집은 굉장히 작지만, 반반씩 나눠서 집과 가구를 장만했어. 물론 월급 통장도 따로 각자 관리하지."

    

 '그래. 세계에는 정말 많은 삶의 방식들이 존재하는구나.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들이 때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니까. 미국, 영국, 프랑스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모두 다른 것처럼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요구됐던 삶의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니었어. 그곳이 어디든, 누구나 인간답게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속으로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나'를 외치는 순간 그녀와 아쉽게 헤어졌다.

 

 미국을 떠나기 전날, 사진은 또다른 해프닝을 낳았다. 아쉬움에 길거리를 방황하는데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났다. 통상 미국인 보다는 아시아인들이,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사진을 잘 찍는다는 나름대로의 '사진관'을 갖고 있었지만, 그날 주변을 둘러보다 아무도 없었고 마침 누군가와 전화를 막 마친 남성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예의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물어봤지만 괜찮다는 그의 말에 그냥 헤어졌다. 하지만 다음 사진 스팟에서 우린 또다시 마주쳤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인상의 한 남성. 외국인이었지만 약간 아시아계가은 느낌이 들어 어색하지는 않았다. 내가 호기심에 먼저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왔어요."(남)
 "아. 그러시군요."
 "혼자 여행오셨어요?"(남)
 "네. 이따 늦게 동생을 만나기로는 했는데"
 "아. 그럼 그전까지 같이 구경할까요?"(남)

 

 그 순간 속으로 "드디어 나에게도 영화같은 로맨스가 펼쳐지는구나. 혹시 그럼 사우디의 왕자?"라며 뭔가 설레임이 번졌다. 그는 현재 IT 기업 컨설팅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일 관계로 미국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는 생각보다 꽤 나이가 많았다. 자동 반사적으로 "결혼은 하셨어요?"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네. 결혼했어요. 아이들도 있죠."


  순간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내 물었다. "아 그럼.. 혹시 부인이 여러명?"

 "아.. 세명이요. 그런데 지금은 한명하고만 살아요."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 네" 그동안 회사에서 갈고 닦은 '포커페이스' 기법은 그때 빛을 발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세계의 여러가지 문화를 포용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단은 같이 다니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고, 근처의 파스타집에 들어갔다.


 "미국에 자주 오시나봐요."

 "아. 형이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기도 하고 미국의 문화를 좋아해서 자주 오는 편이에요."

 

 또다시 침묵. 그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대화에는 달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영어로 외국 사람과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순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에게 최근 운전이 허용됐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사우디 여성들에게 최근 운전이 허용됐다는데, 사우디 여성들의 인권은 어떤가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사우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운전도 그렇고 여성들의 주장도 최근 점점 세지고 있죠."


 사우디의 여성 인권에 대한 편견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하는 그를 보면서 '설마, 4번째 부인이 되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게 다 연애를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로 배운 탓인게야ㅜㅜ. 늘 현실은 영화보다 차갑고 무미건조하다. 우리는 그렇게 뜬금없이 9.11 테러와 미국과 아랍권의 관계, 남북한 관계에 관해 떠듬떠듬 영어로 한참을 이야기하다 반갑게(?) 헤어졌다.


 순간 허탈했지만, 로맨스가 없으면 어떠랴. 대신 두달 동안 더 큰 세상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하누순간에 좌절하지 말거나 실망하지 말고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긍정적으로 살아갈 것.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나 자신을 더욱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당당하게 살아볼 것. 그것은 두달간의 여행이 가르쳐 준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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