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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Nov 19. 2018

오늘도 회사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진다면

  일요일 오후 4시 반. 지민씨의 마음속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운다. 분명 어제와 같은 시간인데 기분이 착 가라앉는게 뭔지 모를 불안함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온다. 그렇다. '월요병' 증후군이다. 한국에서 '월요병'은 국민병인지 TV에서는 일요일 늦은 오후부터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가 넘쳐난다.


 다가올 무시무시한 한주를 생각하면 어디 밖에 나돌아다니기도 부담스러운 시간. 멍하니 TV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심리를 귀신같이 아는 방송국들은 일요일 밤 늦게까지 예능 프로를 편성한다. 지민씨는 거의 TV를 보다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상태에서 눈이 아파 반강제적으로 잠이 든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 눈을 뜨니 마치 가슴 위에 돌덩이 하나가 얹어져 있는 것만 같다. 이불 속에서 천장을 보면서 '이번주에는 또 얼마나 많은 외부의 공격 속에서 내 자신을 지켜낼까'하는 생각으로 가슴 깊숙한 곳부터 한숨이 올라온다.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지난 한주가 아슬아슬하게 끝났지만, 긴장을 풀고 제대로 마음을 누일 겨를도 없이 또다시 공포의 한주가 시작된 것이다.


 회사에서 외줄타는 것도 어려운데, 상사는 어느날은 외줄에서 긴 장대를 들도록 시킨다. 줄 위에 의지를 놓고 앉거나, 외줄에서 한발로 뛰었다 내리기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월급 주는 만큼 네 능력을 증명하라'는 이 무언의 요구에 지민씨는 처음에는 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매번 엄청난 두려움을 이기고 꾸역꾸역 해낸다. 하지만 그 '곡예'는 이미 당연한 것이 되버린다. 상사는 이번엔 그것보다 더 어려운 임무를 주고는 사라진다. 또다시 무대에 혼자 남는 것은 지민씨. 외로움 속에서 '1년만, 2년만...' 했던 곡예는 어느덧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답답한 마음을 애써 달래면서 나온 출근길.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찌릿'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의 전류가 흐른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만 같다. 몇년전부터 지민씨를 고깝게 본 여자 선배는 오늘도 뭔가 그녀를 혼낼 '꺼리'를 열심히 찾는 눈치다. 가만히 눈앞의 모니터만 쳐다보는데도 뒤꼭지가 뜨겁다. 화장실을 들고 나갈때, 전화할 때 뭔가 자신을 스캔하고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뜨거운 눈초리가 느껴져서다.
  
 지민씨는 회사에서 고슴도치처럼 온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월요일부터 회사에서 깨진다면 '멘붕' 상태에서 한주를 제대로 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이번 한주도 '무사히' 살아내야 한다' 월요일 아침이면 마치 총탄이 퍼붓는 전장에 나간 군인처럼. 지민씨는 몸과 마음의 방탄모와 방탄 조끼를 든든히 챙긴다. 온갖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주말 내내 갈고 닦은 방패와 총알들이다.

 

 어쩌면 회사 생활은 '역할 놀이'와 같은지도 모른다. 매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회복 탄력성을 갖추느냐가 회사 생활의 성공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회사의 하나의 부품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녀는 회사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거꾸로 강을 거슬러 흐르는 연어가 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회사는 마치 계량한 것처럼 딱 월급 주는 만큼 일을 시킨다. 딱 '아, 더이상 회사 못 다니겠어. 더이상 못해먹겠어'라고 하는 말이 목구멍으로 올라오기 직전까지 말이다.

 

 점심을 대충 처리하고 다시 사무실 자리로 앉아 모니터를 대면한다. 이젠 이 차가운 모니터와 마치 대화를 하는 경지에 오른 것만 같다. 이 모니터는 지민씨가 가족들보다, 친구보다 더 많이 보는 사이다. 사무실 창을 통해 바깥으로 눈을 돌리니 가로수의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지민씨는 늘 익숙한 사무실 창밖의 풍경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창문 밖의 노랏 나뭇잎을 보면 가을이 왔구나. 눈이 오면 겨울이구나. 벚꽃이 날리면 봄이 왔음을 직감한다.

 

 어느날 지민씨는 마치 자신이 감옥에 같인 수인(囚人)같다는 생각을 했다. 감옥의 작은 창틀을 통해서만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수인. 자기 연민에 빠져들 즈음. 부장님이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지민씨, 아침에 시킨거 어떻게 됐어. 아직도 안하고 지금 뭐하는 거야?" 마음과 영혼이 갇히고 뭔가에 지배당하는 느낌.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읊조린다. "이게 감옥이지, 달리 감옥인가."


 친한 사람들도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부서마저 흩어져 마음 둘 곳 없는 지민씨. 앙숙같은 상사와 같은 부서가 되니 더욱 주눅이 바짝 들었다. 게다가 그가 은밀하게 자신의 험담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을때는 더없이 외로운 회사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회사의 월급에는 일 보다도 힘든 인간 관계를 이기는 대한 대가라는데 그런 것은 어째 한푼의 에누리도 없이 정확히 적용되는 것일까.


 직장인은 누구나 가슴에 사직서 하나쯤은 품고다닌다지만,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어느날 지민씨는 그동안 품어왔던 사직서가 드디어 세상 빛을 보게 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외투도 걸치지 않고 회사 밖을 나온 지민씨는, 아무 준비없이 회사를 나온다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누군가의 충고가 피부에 와닿았다. 손은 굽을 정도로 추위에 얼얼했지만, 순간 지민씨의 머리는 쨍한 동치미 국물을 마신 것처럼 맑아졌다.

 그녀는 속으로 감옥과 회사의 차이점을 조용히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았다. 야근에, 잔업에 묶여있을 때가 있지만 일단 감옥과 달리 회사는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보니 육체적 속박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신적 속박이었다. 회사는 직간접적으로 '나보다는 전체'라는 의식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상사들은 복종을 요구했다.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파도에 휩쓸려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지민씨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회사가 바뀌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관점을 약간 바꿔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처럼 대책없는 문구는 아니다. 다만 회사가 당신을 마른 수건 짜듯이 부려먹었다면, 당신도 적어도 회사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단 회사 생활이 오래되고 연차가 쌓일 수록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민씨도 그랬다.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였지만, 점차 일과 회사가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위험신호다. 즉각 회사와 나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변에는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외에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져 오히려 외골수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사회적으로도 '워라밸'이라며 과거처럼 회사와 당신의 거리두기를 죄악시 하는 풍토가 없어졌다. 이것은 주인 의식과는 또 다른 문제다. 다른 사람이 대신 구해줄 수 없다. 회사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스스로 자신을 구해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회사내 인간 관계의 어려움도 일정 부분 해소가 가능하다. 지금 회사서 사람때문에 힘들고 괴롭다면, 이것만 기억하라. 회사는 동아리나 놀이터가 아니다. 회사는 당신과 살아온 배경과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회사에서 누구나에게 사랑받는다는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때로는 과감하게 '미움받을 용기'를 선택하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또한 '다름'을 인정하라. 생각과 행동의 다름을 인정하는데서 상당 부분 인간 관계에서 오는 실망감을 줄일 수 있다. 상대방은 나와 처한 입장과 모든 것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사적 영역아 아니라면 나와 다른 누군가가 하는 말에 지나치게 상처를 받을 필요가 없다.(물론 폭력적인 위해를 제외하고) 자신이 회사 내 인간 관계에서도 상관성이 높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 일정 거리를 확보해야한다. 지민씨도 지나치게 회사 상관도가 높아 회사 사람들을 이분법적인 피아 관계로 해석해 니편, 내편을 만들어 점점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사회 생활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회사와 정서적 거리두기를 했다면, 이제 회사를 다니는 목표를 좀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숨이 차고 쓰러질 것 같아도, 저 멀리 펄럭이는 깃발의 끝자락만 보아도 힘을 내서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면 자신이 회사를 다녀야 하는 단기, 장기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물론 금전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성취 등도 포함한다.

  

  주변에 무조건적인 충성과 희생을 요구하고 소통이 사라진 직장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진다는 이들이 많다. 요즘은 각종 SNS와 휴대폰으로 감시도 심해졌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을 바짝 차려 살아 남는 토끼처럼 회사라는 프레임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내적 파워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역경을 이기는 힘은 감사에서 나온다는데, 지민씨는 감사까지는 못하더라도 내외부에서 빗발치던 불평불만과 비난을 멈췄다. 마음이 잠잠해지면서 뭔가 내적인 에너지가 풍부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양팔을 크로스해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조용히 다독였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사직서를 품 안으로 다시 접어넣었다. 빌딩 사이로 부는 칼바람에 얼굴이 얼얼했다. 하지만 다시 '감옥 아닌 감옥'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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