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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Dec 31. 2018

"당신은 루저가 아니다"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l the end/We are the champions, we are the champions/No time for losers/Cause we are the champions of the world"(우리는 챔피언, 나의 친구들/그리고 난 끝까지 싸워나갈거야/우리는 챔피언, 패배자를 위한 시간은 없어/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챔피언이니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 간 극장에서 이서씨는 '위 아 더 챔피언'의 후렴구가 나오자 터져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참을 따라불렀다.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를수록 감정은 더 격해졌다. 마치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같았다. 퀸의 광팬은 아니지만, 그 비장한 멜로디를 들을 때마다 지난 10여년의 시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학점 관리에 애썼고, 입사 시험에 매달려 청운의 품을 품고 시작한 회사 생활. 하지만 직장 생활은 만만치 않았따.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마치 기계의 나사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기계 속 나사는 내가 없어도 언제든 다른 나사로 교체 가능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점점 더 내가 사라지고 존재감이 없어질 때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결혼도 미루고 일에 올인했던 지난 시간들. 내 시간도 희생하고 회사일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연말 인사 평가에서도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1등은 아니더라도 남들에 비해 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나는 늘 2%, 아니 20%쯤 뒤쳐져 있는 것 같아. 사회적으로 이룬 것도 없고 돈도 많이 모으지 못했고 이 나이에 결혼도 못했고, 이쁘거나 날씬하지도 않고. 사회는 끊임없이 '너는 루저야'라고 말하는 것 같고." 이서씨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친구에게 나즈막한 소리로 읊조린다.


 "여자는 남편 잘 만나 시집 잘 가는게 최고"라는 엄마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했다. 올 한해도 나름대로 열심히 버텼지만, 세상은 '애썼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혼기 놓친 노처녀", "결혼을 하지 않은 문제라도 있냐" "숙제를 마치치 못한 낙제생" 취급을 하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아주 가끔 선자리나 미팅을 나가보면 외모부터 경력, 재력 등 모든 것을 평가받는 '고시' 같다. 그마저도 매번 '낙방하는 고시생'이다.


 하지만 그녀는 퀸의 '위 아더 챔피언' 속 '우리는 모두 인생의 챔피언이고 패배자를 위한 시간은 없다"는 대목에서 위로를 받곤 한다.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는 말처럼 올해 힘들고 아팠던 경험도 분명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경험이 됐다는 것을 믿고 싶다.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에.

 

 이서씨의 옆자리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부르던 형석씨도 눈물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군대 가서 선임 잘못 만나 고생하고 취직해서 집을 마련할 돈도 모으지 못했다. 앞으로 더 얼마나 정글같은 사회 생활을 더 해야할지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세상엔 금수저도 많고, 돈 많이 번 부자도 많지만, 열심히 해도 힘만 들고 텅빈 통장 잔고를 보면 사회적 박탈감만 더욱더 커져간다.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만 간다. 도전마저 버거워 때론 '이번 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형석씨는 그때마다 루저가 된 것 같은 무력감에 휩싸인다. 힘들어서 넘어진 그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남자라면'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제대로 울지도 못하게 한다. 남자라면 당연히 좋은 차와 집을 가져야하고,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남자라는 이유도 아플때 울지도, 힘든 티도 못내게 한다.   
 
 연말이 되면 TV에서는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각종 시상식을 개최한다. 대부분 집안 잔치인 '사내 시상식'이고, 내년에 자기 방송사에 더 열심히 출연해달라는 일종의 증표 같은 것이지만, 주연 뿐만 아니라 조연은 물론 작은 부문을 만들어서라도 상을 주고 받는다.

 

 그런 광경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과연 나는 인생에서 상을 받아본 것이 언제인가. 고등학교때가 마지막. 아니 회사에서 요식행위로 받았던 상 한두개가 끝이다. 하지만, 한해를 마무리하고 마음이 허전해지는 이 때, 남들이 보기엔 아무리 괄목할만한 성과가 없고, 때론 찌질해 보이더라도 나만의 작은 시상식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해를 되짚어보며 아무리 사소해도 올해 잘했던 일을 칭찬하고 안타까운 일은 위로하는 작은 시상식. 세상은 끊임없이 당신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루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만만치 않은 1년을 버텨온 나에게 주는 시상식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퀸의 고향인 영국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흥행한 것은. 아마도 노래가 주는 힘과 위로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은 인생의 주인공이고 루저가 아닌 인생의 챔피언이라는 메시지에 모두 눈물을 삼켰다. 그 중에는 남들은 골드미스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돈도 없고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에 치를 떠는 이서씨. 금수저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흙수저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형석씨도 있다.

 

 하지만 이서씨도, 형석씨도, 그리고 당신도 올해 겪은 모든 일들은 무의미한 일들이 아니다. 혹시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일이 뜻대로 안되고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혹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정체된 느낌이 들어도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 그 시간들은 당신의 삶이라는 은행에 고스란히 축적된 경험이라는 재산이다.

 

 우리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적에 의한 서열주의, 즉 나로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에 물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에 나와도 유독 줄세우기를 좋아하고, 남과 비교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자신들의 잣대로 당신에게 루저라고 손가락질해도 절대 상처받거나 위축되지 말자.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신만의 삶이 있고 그 시간을 살아갈 주도권이 있다. 모두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시로 밀려드는 삶의 파고 속에서도 하루하루 쓰러지지 않고 충실히 버티고 살아낸 당신은 절대로 루저가 아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기에. 한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누군가 칭찬해주지 않더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해도 애썼다고. 그리고 '우리는 챔피언이고, 패배자를 위한 시간은 없는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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