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기자 Jul 23. 2019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연씨가 먼저 그를 좋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우연한 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나 호감을 느꼈고, 서로 연락만 주고 받기를 수차례.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됐을 때 그녀의 마음은 한없이 설렜다.


 결국 그와 마주한 날, 그들은 나름 솔직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했고, 다행히 그 역시 호감이 없어보이지는 않았다. 사람의 감정은 쌍방향이기 때문에 그 역시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거기서 더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물론 그녀도 안다. 대한민국의 관례상 남자가 더 호감이 있다면 상황이 더 빠르게 흘러갔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 1~20대도 아닌데, 남자가 쉽게 상대방에게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디 쉽겠어? 이 나이에 상처받기 싫은 것 서로 마찬가지니까."

 

 그녀는 이런 일종의 자기 위안으로 그와의 끊어질듯한 관계를 이어갔다. 먼저 연락도 해보고, 공연 등 티켓이 생기면 빌미 삼아 먼저 그에게 연락도 해봤다. 하지만 만남이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아주 모처럼만에 그들은 만날 기회가 생겼고, 그는 자신이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녀도 흔쾌히 승낙했고 그와 만나기로한 1주일 내내 그녀의 마음은 들떴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당일까지 그의 연락은 오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먼저 연락을 했다. 그는 "식당 예약을 하려던 참이었다"고 둘러댔지만, 나중에야 그녀는 그것이 변명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모자를 눌러쓰고 자다 나온 듯한 그의 옷차림에 그녀는 적잖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쫙 빼고 나온 자신이 머쓱하게 느껴졌다. 더 화가난 것은 그의 옷차림보다는 성의없는 듯한 태도였다. 어디로 갈지조차 염두해두지 않은 그를 보니 그녀는 마치 자신이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2차로 옮겨서 그는 알듯말듯한 뉘앙스의 제안을 해왔다. 다음에는 서로 친구를 데려와서 넷이 만나자는 것이었다. 1차적으로는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번에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지만, 그와의 거리는 다시 좁혀지지 않았다.

 

 더이상 그녀는 그 관계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예전같으면, 모처럼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 이상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고 했겠지만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관계 속에 더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녀는 꽤 사랑에 집착하는 타입이었다. 관심남이 밤 12시에 나오라고 하면 자려고 누웠더라도 다시 화장을 하고 삼엄한 엄마의 경비망을 뚫고 새벽에 그를 만나러 나갔다. 여자들은 알것이다. 화장을 지우고 다시하는 과정이 얼마나 무모한 일에 가까운지를.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이길 수 있었다. 예술쪽 일을 하는데다 밤 늦게까지 부업을 하는 탓에 워낙 바쁜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는 자기 위안을 하며 그녀는 집을 나섰다. 하지만 새벽 1시에 호프집에서 만난 그 남자는 눈빛에서 반가움은 잠시였고 이내 자만감이 가득했다. "그럼, 그렇지. 니가 안나오고 배겨?" 그녀는 '아차' 싶었다. '그는 내 마음을 눈치챘구나'

 

 혹자는 왜 그렇게 '등신'처럼 살았느냐고 이죽거릴 지도 모른다. 그때 그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도 넒은 의미의 인간 관계라고 본다면, 누군가는 약자가 된다면 누구는 승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아주 가끔은 이런 감정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한번 굳어진 관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녀는 대학때 아르바이트를 세개씩이나 해서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 남자친구에게 맛있는 것을 거둬 먹이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결국, 그의 엄마에게 '내 아들 공부 망치는 X'으로 몰려 헤어지게 됐지만, 그때의 그녀 자신 그렇게 속상해하지는 않는다. 비록 그 남자는 그 이후 연락두절이 되었지만, 적어도 그때의 사랑은 어느정도는 주고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아니, 그렇다고 위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생각하면 무엇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에 그토록 집착한 것인지 잘 모를 때도 있다. 그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연애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인지, 남자친구 없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서였는지, 남자에게 보호받고 사랑받는 그 감정에 집착한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가해지는 많은 폭력들을 떠올리면, 그때 했던 것이 과연 사랑이었는지도 의문이 들때가 적잖이 있다. 상대방의 호감을 자기 편한대로 이용하는 것은 애교, 오직 육체적인 관계에만 몰두하는 것을 사랑으로 포장할 때면 정말 단어라도 정정해주고 싶다. 그것은 '욕구 해소', '욕정'일 뿐이라고.


 모든 것을 떠나서 사람의 관계나 감정이라는 상호교류가 바탕이 되어야지 일방적이어서는 건강하지도 않고 오래가지도 않기 마련이다. 남녀를 떠나서 누군가의 돈과 시간의 희생을 강요하는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사실 돈보다 더 아까운 것은 시간이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의 인격마저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사랑이라는 말의 또다른 폭력이다.


 어떻게보면 사랑을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당하고 일방적으로 느꼈다면 그 관계가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고 해도 종료하는 것이 맞다.


 당신이 지금 두려워하는 것을 잠잠히 생각해보자. 혼자 남았을 때의 외로움인지,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인지. 그 어떤 불안감인지. 끊어야할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것을 붙들고 있는 이유를 들여다 보면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그 감정을 베푸는 것은 큰 의미로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허탈하고 지치는 느낌이 든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약자임을 강요받는 상황이라면 그 관계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말이다.
 
 서연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49%대 51%'로 서로를 반반씩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사랑은 '밀당'을 기반으로한 게임은 아니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를 원했다.


 그녀는 아직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조급해 말고 기다리기로 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 가운데 성장하고 발전하는 건강한 관계임을 믿기 때문에. 사랑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 역시 행복해지고 성장하는 관계임을 알기에. 더이상 자신을 해하는 모든 관계는 일순간 정지시키기로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만일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면, 그녀는 기꺼이 약자임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포기한 댓가가 외로움이라면 그것 역시 순리로 받아들이고 당당히 혼자 서보기로 했다. 이제는 무조건 약자가 된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완성되지 않는 다는것을 알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