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단순한데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는 서커스 공연이 있다. 바로 외줄타기다. 매일 밤 각종 화려한 쇼가 공연되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에는 까마득한 공중에서 외줄타기쇼가 펼쳐진다.
공연자는 흔들거리는 외줄 위에서 온정신은 집중해 긴 장대를 들고서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는다. 줄 위에서 폴짝 뛰기도 하고, 공중 제비를 돌기도 한다. 심지어 의자쌓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밑에 그물 장치가 있는 것도 알지만 관객들의 시선은 온통 그 사람의 발끝을 향해있다.
외줄타기가 더욱 다이나믹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네 인생과 닮아서다. 그 누가 대신 올라갈수도 없고, 대신 해줄수도 없는 외줄타기. 인생이라는 외줄타기는 가보지 않은 길이고, 누구나 혼자이기에 떨리고 긴장될 수 밖에 없다.
인생의 외줄 위에서 조심스레 마음의 중심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씩 내딛다보면, 줄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정신적인 무력감, 우울, 외로움 등 내적인 감정들 뿐만 아니라 관계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방해요인들...
뿐만 아니라 비교에서 생기는 열등감, 무례한 행동으로 인한 굴욕감, 상대방의 무시로 인한 초라함과 울분 등 외적인 관계에서 생기는 감정은 중심을 잡지 못하도록 심하게 줄을 흔든다. 이제 자존심 상하게 하는 한두마디 정도는 그냥 지나칠 수 있다고 생각한 때쯤, 외줄을 마구마구 흔드는 각종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악재는 꼭 한가지만 오는 것이 아니라 쌍으로 온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무례한 행동에 상처를 받고도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는 날이 있는가하면 제안서가 일언지하에 거절 당한 날, 회사 상사는 여전히 '네가 어떻게 감히...'라는 꼰대성 대사를 읊는다.
또한 외로움이 밀려드는 날에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이 여전히 싱글인 처지를 비웃는 것만 같고, 회사 동료들의 눈빛도 왠지 차갑게만 느껴진다. 그런 날에는 전화해서 속내를 털어놓을 곳도 만만치 않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 속에 무사히 외줄을 타기도 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마음의 중심을 잡지 않으면 자칫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도 많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도 많고, 인맥이 화려한 사람도, 거기에 운까지 좋은 사람도 많다. 그들과 자의든 타의든 비교하다보면 또 한없이 초라하고, 의욕도 의지도 사라진다. 대체 의미없는 외줄타기를 언제까지 해야하는 회의감이 몰려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외로운 외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외로움을 견디며 불확실성속에서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줄타기에 한눈을 팔다보면, 자칫하면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의 줄타기를 성실하게 또 의미있게 만들어 나가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2020년 새해. 다들 지금 다들 장대를 들고 2020년의 외줄 앞으로 하나둘씩 나설 때다. 운좋게 기분 좋은 바람마저 땀을 식혀주며 평안한 때도 있지만 당신이 아무리 중심을 잘 잡아도 누군가가 당신의 외줄을 살살 건드릴 수도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끝까지 갈것 같은 우정도, 공들여 쌓았던 인간 관계도 흔들릴 있고, 좋은 일이든 그렇지 못한 일이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줄이 흔들릴 때 가장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이다.
공연자가 잠시 한눈을 팔고 스스로 중심을 잃는 순간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마음의 평정심이라는 중심을 잃는 순간 우리는 마음의 낭떨어지로 떨어질 수 있다. 새해에는 어떤 외부 환경이 흔들려도 스스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써야한다.
외줄타기 공연자는 발 뿐만 아니라 온몸의 근육이 단단하다. 근력이 스스로를 지치는 힘인 셈이다. 장수의 비결이 근력인 것처럼 마음의 감기에 걸리지 않고 정신 건강을 다지기 위해서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때로 당신을 해치는 것이라면 과감히 외면해도 되고 그냥 지나가도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외줄이 흔들릴 때마다 떨어질 듯 위태로워도 중심을 잘 잡고 걸어온 나와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올 한해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단단한 마음의 근육으로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그 누가 응원하지 않더라도 작게나마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리고 한해의 끝에서 밝은 얼굴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2020년 인생의 외줄 앞에 선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