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 말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날 내 입에서도 그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애. 아무래도 좀 어렵지 않을까?'
처음에 주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에이, 왜 해보지도 않고 저런 회의주의적인 말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제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점점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이미 삶이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져, 아예 첨부터 다시 시작하고픈 싶은 그런 마음.
인생이라는 그림이, 처음 흰 도화지를 받아들 때만 해도 내가 그리고 싶은대로 쓱쓱 그리면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면 좋으련만, 어째 그려지는 그림은 그렇지가 않다.
시작점은 이상한 곳에 찍힌 것만 같고, 선은 비뚤게 그려졌으며, 모양도 어그러진 것만 같다. 색깔도 지금보니 우중충하고 영 별로다. 색칠을 더하면 더할수록 자꾸만 그림이 엉망이 되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내 그림을 내가 사랑할 수가 없다.
가끔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땐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내 자신을 지키는 것은 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일에만 몰두하고 매달리고 살았는데,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허탈하고, 지난 세월 근로 소득으로만 살았던 내 자신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를 하는 순간 자존감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나에게 새 도화지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인생이라는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잘 그린다는 보장도 없고, 그건 물리적으로 힘든 일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언젠가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다음 생에 할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고 말이다. 그냥 마른 웃음으로 넘겼지만, 어딘가 웃픈 구석이 있는 말이었다. 그만큼 이번 생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좌절을 겪었다는 이야기니까.
요즘 웹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환생'을 주제로 한 작품이 유독 많은 것은 '이생망'을 느낀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나라나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때로는 많은 좌절감과 무력감에 맞서 싸워야하는 일이기에.
한번 상상을 해보자. 당신에게 다시 인생의 새로운 도화지가 주어진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주변에 물어보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안다는 전제가 아니라 새로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인생은 매 순간 나 자신의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오는 작업이지만, 돌아보면 가장 후회되는 일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잘 생각나지도 않는 그 때 당시의 두려움이 매번 발목을 잡아 새로운 기회를 놓쳤던 것은 아니엇을까.
물론 다음 생을 산다면, 좀더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돈 걱정 없이 살기를.. 좀더 재테크에 일찍 눈이 띄이기를. 좀더 훌륭한 외모로 태어나서 많은 이성의 인기를 누리며 살기를. 출중한 재능으로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되기를...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멘털이 흔들리지 않고 늘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앞서 세가지는 다음 생에서도 확실치는 않지만, 마지막 조건은 좀더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화려한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나도 나 자신의 걱정과 두려움이라는 감옥에 갇혀 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살아있는 한에는, '자기 앞의 생'이 놓여있다면. 한번 조용히 다짐을 해본다. 지금까지의 생은 망했을 수도 있지만, 이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삶은 두려움이라는 알껍질을 깨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 보기를.
그러면서 마주하는 새로운 삶과 기회를 조금씩 바꿔 보기를. 그렇다면 내 안의 틀에 갇혀 더이상 기회가 없어 보이는 나의 삶도 조금은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새롭게 살 수는 없지만 더이상 '앞생망', 앞으로의 생은 망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오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서 작은 용기를 가지고 오늘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