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꼭, 걱정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나를 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어느 날 건넨 한마디가 비수처럼 마음에 와서 콕 박혔다.
'그래, 인정. 나 걱정 많어. 그래서 뭐 어쩔껀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그 친구와의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걱정'돼 그러지 못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약간의 걱정이 없지는 않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실천이 안되는 그런 말이다. 맞다. 누군가 당신을 구성하는 '성분'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8할은 걱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나도 걱정없이, 누군가처럼 대범하고, 시원시원하게 살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게 맘처럼 잘 안된다.
어느날 갑자기 내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깡통처럼 빈소리가 나고, 먼지가 켜켜이 쌓여서 그 안을 좀처럼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바라보기로 했다. 그냥 여러가지가 얽히고 설킨 내 마음이 보였다.
욕심, 열등감, 불안감, 불만 등이 서로 뒤엉켜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 가끔씩은 그것들을 분해하고 해체하고 싶지만 너무 굳어버려 그 마저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과연 처음부터 다 청소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번 생에서는 힘든게 아닐까.
하지만, 이대로는 질식해서 못 살것 같아, 조금씩이라도 마음의 걱정을 덜어내보기로 한다. 정말 여러가지 고민이 얽혀 걱정이라는 딱딱한 실태라가 된 것만 같다.
이 나이 먹도록, 집 한채 없는 '무주택자' 신세인 것도 초라해 보이고,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를 '미혼자'라는 위치가 어느 순간 한없이 불안해질 때도 있다. 100세 시대가 열린다는데 이 직장을 언제까지 다녀야 할지 막막할 때, 여전히 십여년전 하던 '뭘 해먹고 살지' 진로 고민을 하는 자신을 볼때 한없이 답답해 보이기만 한다.
지난 세월 뭘하면서 허송세월을 했나 싶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만 같아서, 정말 울고만 싶고 답답하다. 할 수만 있다면 스케치북의 한장을 찢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렇게 꽁꽁 엉켜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런지.. 그러다 조용히 나를 구성하는 '성분'을 다시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과연 나를 규정하는 것이 집과 일과 직장, 배우자가 전부일까. 그 세가지로 나라는 사람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가하거나 행복을 이야기할때 가시적이고 도식적으로 수치화 할 수 있는 것들로 말하기 좋아한다. 몇평 짜리 집에 살고, 얼마짜리 차를 몰고, 직업과 외모가 얼마나 뛰어나고, 어떤 잘난 배우자를 만났는지. 그 틀에 맞춰 누군가를 재단하고, 자신도 그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안다. 마음의 평화, 삶의 기쁨과 보람, 인정과 격려, 안정감과 행복감 등은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이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다시 맨 첫문장으로 돌아가보자. '걱정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니냐'는 말을 뒤집어보면 '걱정의 습관화'라는 말과도 일맥 상통하게 된다. 사실 걱정하는 것이 나쁜 것만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이 늘상 하는 그 걱정은 성공의 밑거름이 됐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망신당할까봐, 무시당할까봐, 혹은 경쟁에서 지기 싫어서 어떤 일을 미리미리 준비해서 성공시킨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쌓여가는 완벽주의는 '성공의 경험'이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자신을 점점 옥죄어 간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점점 더 성공하고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2중, 3중의 걱정을 하고, 더 많은 준비를 한다. 때로는 운이나 신의 영역까지 당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패배의 역사'는 당신에게 알려준다. '신의 영역'은 건드릴 수 없고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를 아는 순간, 누군가는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반면, 누군가는 이를 걱정하고 또다른 플랜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할 시점이 왔다. 당신의 본질을 파괴하는 성공을 선택할 것인지, 당신을 어느정도 지키는 '절반의 성공'을 선택할 것인지. 물론, 각자가 생각하는 답은 다 다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하고 분명한 점은 어떤 순간에도 걱정이라는 '생각'은 당신 자신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잠깐 잠식할 수는 있지만 당신을 계속 잠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과 생각에 '그냥 이대로 잠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집채같은 폭풍우가 마음속에 몰아친다고 하더라도, 설사 그것이 언제 잠잠해질지 몰라 앞이 캄캄하고 마음 속폭우가 내란다고 하더라도,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 우산도 없이 휘몰아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해도, 언젠가는 잠잠해질 바다를 생각하면 한걸음이라도 발을 떼어 보는 것.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 그것은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꼭 해야할 '숙명' 같은 일이다. 언젠가는 알게되지 않을까. 그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모여서 나를 한단계 더 나아가게 하고, 그 조각들이 모여서 삶이 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