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에 찾은 크러쉬 콘서트(2023 CRUSH CONCERT [CRUSH HOUR:wonderego]. 그는 유독 시작부터 “오늘이 3일 콘서트 가운데 마지막이고,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강조했다. 멘트에서 공연에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는 각오가 읽혔다. 수많은 연말 공연 중에 고민끝에 크러쉬의 콘서트를 보기로 결정한 것은 R&B부터 힙합, 재즈, 소울 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음악에는 90년대 서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이 녹아있었다. 공연을 펼친 잠실실내체육관은 3층까지 가득 메워졌고 3층 오른쪽 맨 끝 자리에 앉았다. 몇년전 성시경 콘서트에서도 비슷한 위치에 앉아 너무 가파른 경사에 약간 어지러워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힘들면 중간에 나가야지 했는데 예상 밖에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2030 관객이 대다수를 차지할 만큼 MZ 세대들이 사랑하는 가수답게 공연은 스타일리쉬했다.(물론 40~60대 관객도 있었다.) 무대장치나 특수효과도 적재적소에 잘 어우러졌다.
특히 'SoFa', 'ㅠ.ㅠ'때 무대중앙 흰 천을 사용한 퍼포먼스도 꽤 인상적이었다. 미디어아트를 접목해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는 듯한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거의 모든 노래를 떼창하는 팬들과 가수와의 끈끈한 교감과 밴드 원더러스트의 수준 높은 세션이 공연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공연을 보고 나니 그간 크러쉬의 음악에 따뜻한 감성이 흘렀는지 어렴풋이 알게됐다. 그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음악에 사랑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늘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보니 크러쉬는 공연 중간에 “직접 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팬들에게 여러차례했다. 팬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였다. 크러쉬가 ’She‘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을 때 가수들이 말미에 으레 나오는 순서이겠거니 했다. 어둠속에서 노래를 부르다 밝은 조명에 비친 그의 얼굴은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한동안 노래를 잇지 못할 정도로 ’대성통곡‘하는 모습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여러분들이 저에게 무엇보다 값진 사랑을 주시는 것에대해서 감사한 기쁨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을 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힘든순간들 있는데 그 때마다 저를 외면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저에게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에게 ’She‘라는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삶이 때로는 너무 음악에만 치중이 돼 있어서 주변을 못 보고, 가족들도 잘 못 보고 그럴 때가 있는데 사실 저도 어떨 때는 좀 벗어나고 싶기도 해요."
"하루 종일 음악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고,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사랑을 어떻게 음악에 진심으로 담아서 전달할수있을까 그런 고민을 계속 하다보면 괴로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서 제가 지금처럼 많은 여러분들앞에 서지못하더라도 어떤 자리 어떤 곳에 있더라도 항상 사랑을 가지고 음악을 하도록 약속드릴게요.” 그의 진심어린 이야기를 듣고나니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동안 수많은 가수들이 공연 말미에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많이 봐왔지만, 팬들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진심이 담긴 눈물은 실로 오랫만이라 새로웠다. 스스로를 ’유리멘탈‘이라고 했지만 팬들 앞에서 가수로서 각오를 새롭게 하는 모습도 눈길이 갔다.
히트곡 'beautiful'과 신나는 그루브의 '그냥'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유재하의 '가리 워진 길'을 부를 때였던 듯 싶다. 영상에 오래 남기고 싶을 정도로 진심를 담은 목소리가 가슴에 남았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리메이크 앨범은 꼭 한번 들어보고 싶어졌다. 집에 돌아 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사랑이 있는 한 해를 살았는지, 가식적이지 않은 진심이 담긴 관계가 얼마나 있었는지. 혹은 너무 표현을 아끼거나 행동을 못하지는 않았는지. 배신과 외로움이 더욱 많아지고 강팍해져가는 이 세상에서 과연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니는지. 또 그런 사랑은 어떻게 새상을 바꿔갈 수 있을지.
내년에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따뜻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사랑이 세상을 바꿀수 있음을 확인하는 한 해가 되기를 마음이 가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