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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Nov 03. 2020

동네 친구와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할로윈데이를 기억하는 법





동네 친구 혜의 초대를 받아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녀는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고 했지만, 가히 밥상에 대고 예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근사했다. 푸릇푸릇 식감을 돋우는 상차림이었는데 어젯밤 맥주를 마시고 속이 허했던 내겐 특히 더 좋은 한식이었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고 우리는 나른해졌다. 약간 열린 테라스 문틈 사이로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살살 불어왔지만 따스한 햇살도 함께여서 괜찮았다. 적당히 이어지다 끊어지기도 하는 이런 대화가 좋다. 그녀가 러시아에서 사 온 찻잔이 참 예쁘면서도 가벼워서 실용적이라는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해외 출장을 또 가게 되면 대신 사다 주겠다는 말도 기억한다. 다정해.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려는데, 오늘 우리가 사진을 한 장도 함께 찍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셀피를 찍지 않았지.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다이어리에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라고 썼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나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되었다.’라고 썼으며, 20대에는 그저 어른인 척하고 살았다. 서른 살이 지나면서부터는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따위의 글을 자주 끄적이곤 했는데, 그에 반해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셀피를 찍지 않게 된 이유를 말하는 거다.

때마침 오늘 나는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책 <삶의 한가운데>를 다 읽었고, 니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니나는 늙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해설은 말한다. 그러나 그건 해설자의 의견 아닐까. 어쨌든 가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거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시몽이 거울을 보고 얼굴을 서른여섯 해로 나누어보았다는 장면을 따라 해보기도 하면서.


아프지 말자는 말, 귀여운 할머니가 되겠다는 말, 앞으로도 여행은 계속할 거고, 날씬할 거고, 때에 맞게 어울리는 옷을 입으며, 지금처럼 나이 상관없이 모두를 친구라 부르고,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할 거라는 다짐. 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자못 서글픈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가 가는 게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다.

세수를 하려고 화장을 지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따라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아이라인을 그리고 마스카라를 했는데,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밤새 핼러윈 파티를 하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2020HalloweenDay


귀여운 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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