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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Mar 11. 2019

하쿠나마타타 (Hakunamatata!)

드뷔시의 달빛이 생각나는 새벽이었다.

 음악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내가 찾는 것은. 그리고 그 옆에 책이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조각은 입안에서 녹아내리고 있었고. 그렇게 수분이 흐르면 세상에서 날 아프게 했던 것들은 가슴 가장 멀리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 글을 쓰고 싶어 지더라.


은퇴를 1년 앞둔 존경하는 국어 선생님과는 유일하게 소주를 마시곤 했다. 딱 1병만 마시고 일어서는 짧은 시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시를 안 써. 왜냐면 시는 피눈물 나는 사랑을 해본 사람만 쓰는 거거든. 그렇지 않으면 다 거짓이야."




드뷔시의 달빛이 생각나는 새벽이었다. 또 한 번 파도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낭만적인 나날을 그려내려 일부로 하는 말이 아니다. 쏴아- 하는 파도소리가 유독 내 귓가에만 가까이 찾아오는 걸까. 고요한 새벽 가만히 파도소리에 심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감동한다.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피눈물 나는 사랑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가 생각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치부해본다. 사랑을 잘 안다고, 나는 진짜 사랑을 해봤다고 소위, 사랑 부심을 펼쳐 보이던 나는 과거에 있었다. 그 누구도 사랑을 제대로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으로, 손길로, 입김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일 테니, 사랑은.

 

오후에 스톤타운(Stone Town) 근처로 숙소를 옮길 예정이다. 며칠간 정든 랑기랑기 리조트를 떠나며 가장 아쉬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 단잠을 깨우던 새벽 파도소리였다. 바람이 불어 들어올 때면 끼익- 대던 창문, 나무 틈새에 불규칙하게 박혀있는 녹슨 못의 모양새, 아침마다 테라스에 찾아오던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뒤를 잇는다.


내가 머무른 방의 이름 : BIKHOLE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을 나섰다. 이들은 찬란한 태양이 빛을 발하며 내는 알람 소리로 잠에서 깨고, 철썩대는 파도에 몸을 맡겨 초록빛 하루를 보낸다. 이들은 맨발로 바삭바삭 걸어도 다치치 않을 부드러운 모래알과 영롱하게 사라지는 해를 바라볼 개와 늑대의 시간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시원하게 목을 축일 맥주 한 병이 없다. 축구공이 없다. 날이 밝으면 마을 사람들이 TV 한 대 앞에 모두 모여 축구경기를 시청하거나, 여행객이 주고 간 공 하나를 가지고 공놀이를 하거나, 해변에 트랙을 그려놓고 수십 바퀴쯤 뛰거나, 물구나무서기로 세상을 뒤집어 보며 시간을 보낸다.

하나 둘,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셋, 넷, 아홉, 열. 그리고 까만 새들이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며 끼룩대다가 깍깍대다가 하며 울었다. 새로운 장난감 혹은, 처음 보는 괴생명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괴생명체의 정체






잔지바르 중심가로 가기 전에 다시 오지 않을 북쪽 동네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한다. 유럽의 노부부와 백패커들이 바다에 선사하는 다채로운 색깔과 분주함은 여기까지. 눈여겨보았던 팅가팅가 그림이나 아프리카 동물 조각을 사야겠다. 북쪽의 부엌에서 나는 요리를 한번 더 맛보고 떠나야겠다. 따뜻한 환대로 시작하며 만드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는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바다에서 주워온 주먹만 한 소라 껍데기를 귀에 데면 들리던 바다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Jambo, Karibu" (Hello, Welcom)

"Pole, pole" (Slowly, slowly)

"Hakunamatata" (No problem)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무언가 쫓기듯 행동하면 그들은 Pole Pole 하고 외친다. 혹시라도 식사가 맛이 없거나 내가 주문한 음식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Hakunamatata! 무엇이 문제 되는 것일까? 나는 지금 두 눈에 다 담기 어렵고 말로 형용하기 힘든 황홀한 파라다이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이토록 단순한 사고방식은 그들을 조금은 느리게 만들었지만 그 모습을 닮고 싶어 졌다. 너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고 나무라는 지인들에게 내가 되려 "Hakunamatata, my friend." 하고 밉지 않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상상을 했다. 까맣게 타버렸지만 통통해서 아삭 씹히는 맛이 좋은 문어요리를 먹으며 나는 실제로 웃고 있었다.



랑기랑기 안녕-



리조트 체크아웃을 마쳤다. 그들은 내가 추가로 지불한 현금의 개수가 맞는지 세고 또 셌다. 옆에 있는 남자가 한번 더 세었다. 덩치 큰 할아버지와 청년의 돈 세는 방법이 귀여워 보였다. 그들의 돈 세는 속도에 맞춰 벽에 걸린 시계가 째깍거렸다.


이제 진짜 북쪽에서 머문 집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아까 사지 못한 밥 말리 자석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보다 더 비싼 '마마 빠빠' 정통 부족 조각은 키 크고 정교한 것으로 한 쌍 샀으면서 겨우 자석 하나에 흥정을 시도한 내 잘못이다. 5000 Tsh(한화 약 2500원)이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너무했다. 남은 여행기간 동안 밥 말리 자석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쓸데없는 걱정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부록 : 잔지바르 드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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