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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Jun 03. 2021

질병에도 우위가 있을까? (뇌종양 수술 후, 1년)


아픔에도 레벨이 있을까?

질병에도 우위가 있을까요?


바보 같은 질문이란 걸 안다. 종이에 손가락만 베어도 아프고, 몇 바늘 꿰매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는데, 장염이나 맹장염 같은 수술을 하느라 입원을 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무려 내가 아니라 내 자식 일이라면? 엄마, 아빠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아픔을 어디 비할 수 있을까?


작년 이맘때 쯤, 내가 사랑하는 사람(제이)이 갑자기 뇌종양이라는 병명을 부여받았다. 단단한 종양이 머릿속에서 조금씩, 오랫동안 자라나고 있었단다. 정확한 발병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뇌종양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무작위로 찾아오는 질병이었다.


드라마나 보험회사 광고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단어, 뇌종양이라는 말을 듣고 한 동안은 관련 정보나 후기를 찾아보느라 정신없었다. 뇌 관련 전문 서적까지 뒤져 보았지만, 뚜렷한 정보는 아무 데도 없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정보는 뇌종양 환우들의 온라인 카페 공간뿐이었다.


그때 나는 조금 이상한 걸 경험했다. (이상한 경험이라야 할지, 특별하다 해야 할지, 특이하다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로선 조금 신비한 영역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말하고 싶다)



뇌종양 환우 카페에는 생각보다 (매우) 많은 뇌종양 환우가 있다는 것(새로운 회원이 매일 일정 숫자로 늘어난다), 뇌종양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 양성과 악성으로 나뉠뿐더러 성질과 상관없이 위험한 부위나 위험한 시기가 있을 수 있고, 병원에 따라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등... 을 알게 되었는데,


한 마디로 다 같은 뇌종양 환우라고 하더라도 (예후가 안 좋은 뇌종양 종류가 많아서) 제이의 ‘뇌수막종’은 아프다고 명함 내밀기가 힘들어 보였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절대 누구 하나 나서서 편 가르기를 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카페에서는 간혹 비슷한 뉘앙스의 외침이 오가곤 했다. 아픈 건 다 똑같다는 주장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종류의 뇌종양 환우 가족의 슬픔의 극한... 과의 대비가 보이는 현장 말이다.


제이는 양성 뇌종양 판정을 받았지만, 뇌부종이 심해서 시한폭탄 같았고, 종양의 크기가 매우 크고 단단했고, 시신경 압박으로 인해 종양을 제거하기도 힘든 수술(머리 30cm를 가르는 대 수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환자들의 후기를 읽다 보면 나는 저절로 가만한 심정이 되곤 했다.


더 힘든 환우들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다행이라는 말이 쉬이 나오지도 않았고, 그런 슬픔이 어린 아이나 학생에게 닥친 걸 보면 정말 내 일같이 마음이 아팠다. 함께 기도하는 심정으로 위로를 건넸다.


사실 이건 제이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일주일간의 지난한 입원생활도 견뎌낸 뒤에 조금은 무뎌진 마음이라 가능했을 거다. 수술 전에, 그러니까 입원하기도 전에, 온갖 걱정  짊어지고 두려워만 하고 있을  나는 뭇 지인들의 이런 위로가 싫었었다.


‘그거 별거 아니래.’

‘요즘 그 정도는 의술이 발달해서 다 괜찮을 거야.’

‘나도 염증 수술하느라 입원했었는데, 시간이 약이야.’




위로해주는 마음이 다 같다는 걸, 소중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 긍정적인 말만 일부러 해주셨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땐, 세상 무너질 것 같았던 그땐, 제이의 병이 그저 최고 아픈 병인 것만 같았기에(어리석게도 나 스스로 등급을 매겼다!) 흔한 위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힘들겠다. 힘들지만 잘 이겨낼 거야.’ 정도였을까?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의 아픔은 비하지 말라고 속으로 소리치고 있었을까? 세상 가장 아픈 사람이 제이라고, 말도 안 되게 질병에마저 등급을 매겨놓고 나 혼자 동굴 속에 처박혀 있었다. 정작 아픈 환자를 앞에 두고 오히려 내가 더 아프기라도 하듯, 심술을 부렸다.


간혹 큰 질병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글에서 '그건 뭐 별거 아니지. 00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따위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는 걸 본 적 있다. 그런 어리석은 발언을 한 사람들 무리에 한 때는 나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아픈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와 안 아픈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변하는 내 모습의 아이러니라니.


제이가 어느 정도 회복할 때쯤 깨달았던  같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했다는 신비한 사고는 대략 이런 걸까? (아직도  부러지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내가 아프면 아픈 거고, 남이 아프면  아픈  아니라는 사실, 물론 특정 질병에는 확실한 등급이 있고  위험한  있긴 하지만, 어느 질병이 ‘나의 누구에게 찾아왔느냐에 따라  체감의 정도는 달라진다는 사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다가 아니라는 사실...



제이가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께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아유 흉측해라. 머리 수술했네? 나도 작년에 수술했어. 많이 아팠겠네."


흉측하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기분이 나빴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많이 아팠겠네.'라는 한 마디만 기억에 남았다. 겉으로 볼 때 전혀 티가 나지 않던 아주머니는 그렇게 총총 사라지셨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참 많고, 티 나지 않은 중증 환자도 많아서, 병원 갈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조금은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두서없는 글을 남겨본다.


이 생각의 조각을 언젠가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반성의 글이기도 하다.





*제이는 수술한 지 1년이 지나 MRI 검사를 했고,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를 들었어요. 내년에도 같은 날 추적검사를 해야 하지만 지금처럼 긍정적으로 지내면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머리카락도 자라서 흉터도 보이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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