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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Jun 09. 2024

너무 나중 일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아이슬란드 웨스트피요르드 시골 마을, 듀파빅 호텔에서.



혼자말을 할 때가 있다.


혼자 있는데 문득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나의 일이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인데, 그렇다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하면 너무나 서운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에 인스턴트커피 가루가 슬며시 녹아내리는 걸 바라보는 것부터 작업의 시작이니까. 책상에 앉아서 다이어리를 꺼내고, 할 일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해서 꼭 그 순서대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것만은 정말 먼저 해야 해!' 하는 일을 먼저 하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다시 책상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칼로리 밸런스를 하나 꺼내 툭 툭 잘라먹으며 생각한다. 아니,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살이 조금 쪘나? 아, 모르겠다. 이따가 운동 가야지. 역시 칼로리 밸런스는 맛있어. 점심에 쌀빵에 땅콩잼을 발라 먹을까? 내뱉고는 깜짝 놀라는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났다. '어머, 나 혼잣말을 했어!'같은 놀라움은 이제 의연함으로, 자연스러운 나만의 오전 의식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혼잣말을 한다고 해서 꽤나 심심한 건 아니다. 쓰고, 기록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심심하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거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다못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시간조차 작업이라는 시간으로 이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는 것 같아도 소위, 자면서 돈을 버는 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얼마나 더 부지런히 생산해 내냐에 따라 그 세계를 넓혀나갈 수 있는데, 갑자기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면서 돈이 들어오게 하기 위해,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이다. 절대 심심하면 안 된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볼 때에도 무언가를 이를테면, 어떤 영감을!얻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아름다운 어촌 마을을 여행 중이던 돈 많은 노신사가 어부와 나누었다는 대화를 떠올렸다.



"하루에 몇 시간만 더 일하면 큰 배를 살 테고, 큰 배를 사서 판매량을 늘리면 좋을 텐데, 왜 딱 그만큼만 일하시나요?"


"지금처럼 일하면 충분합니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거든요."


"아니, 열심히 일하면, 더 큰 배를 사고, 더 좋은 집을 살 수 있는데, 왜 조금만 일하죠?"


"그렇게 많이 일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집 짓고, 평화롭게 노후를 보내야죠."


"... 저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걸요."











어느 한적한 시골 어촌마을에서 아침에 눈을 떴다. 개울물이 졸졸 흘러내려 바다와 만나는 소리가 났다. 창문을 열면 파리가 들어와 손으로 휘휘 내저어 쫓아낼 도리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창문을 열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하얀 빨랫감이 빨간색 오두막집에 대조되어 더 하얗게 보인다, 고 생각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음이 일었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산과 바다와 새를 보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식을 먹으러 가서 커피를 마셨다. 세 가지 종류의 버터를 잔뜩 바른 빵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졸졸졸 개울물이 바다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내뱉을만한 혼잣말은 '좋다!' 그뿐이었다. 꽤나 심심한 건 아니었다. 영감이니, 미래니, 돈이니 하는 '신경을 쓰지 않음'에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이 떠올랐다. 문 열기, 편지 쓰기, 손 내밀기 같은 평범한 일을, 마치 세상의 운명과 별들의 행로가 좌우될 것처럼 정성껏 해야 한다고. 세상의 운명과 별들의 행로가 좌우된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아이슬란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엔 한 달쯤 고립되어도 괜찮겠다고. 울 스웨터를 입고, 세계 각지에서 오는 여행자를 맞는 일이 내게도 와준다면, 바로 여기 웨스트피오르드의 작은 어촌마을, 듀파빅일거라고. 너무 나중의 일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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