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호영 May 20. 2024

필름카메라

필름카메라에 담긴 아이슬란드 조각







살다 보니 책을 읽지 않고 지낸 시기도 있었다. 어느 날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동료들이 놀러 왔을 때 깨달았다. "에린은 쉬는 시간에 책을 종종 읽는 것 같았는데, 집에는 책이 많지 않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아마도 그 말을 한 동료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날 내가 만들어준 파스타가 맛이 없었다는 말은 아직도 술자리에서 회자되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두유크림 파스타를 만들어주었건만, 그렇게 맛없는 파스타는 처음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맛없는 파스타보다 충격적이었던 '우리 집에 책이 별로 없다는'깨달음. 퇴근해서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발견. 그러니까, 그 시절 나는 출근, 퇴근, 운동과 모임, 굳이 새로 시작한 공부와 또 모임, 모임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중에는 책 모임도 있었다. 


사이즈가 작아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아늑하게 집을 꾸미고 살았다. 분명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큰 책장을 두는 대신 책을 여기저기 쌓아두거나 다 읽은 책은 부모님 댁에 가져다 두거나 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갖는 책 욕심에 비하면 그때는 그런 욕심의 방향이 다른데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그만큼 책을 별로 읽지 않던 시기. 아주 어렸을 때 좋아하던 책 표지나 책장을 넘길 때 나던 냄새가 어렴풋이 날 것만 같은 기억으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믿고 있던 거다. 무방비 상태로 찾아온 발견 덕분에 나는 다시 책과 사랑에 빠졌다. 쉬는 시간에는 더 자주 도서관을 찾았다. 퇴근 후에는 작가와의 만남을 찾아다녔고, 주말에는 북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 내게 찾아온 또 다른 관심은 사진이었다. 블로그를 오래 운영해 온 탓에 사진은 늘 내 곁에 있었다. 핸드폰 사진을 주로 찍다가 블로그를 운영 덕에 카메라를 협찬으로 받았다. 지금은 단종된 삼성 카메라였다.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았는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작은 기쁨이 있었다. 두 번째 카메라는 하얀색 캐논 100D였다. 단렌즈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렌즈에 대해 아는 체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진 찍기는 점점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잘 찍은 사진을 보는 건 좋아했지만, 잘 찍고자 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사진은 취미일 뿐이었는데, 또 다른 취미인 블로그 기록을 하는 정도, 딱 그만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 면 자신에게 한계를 그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는데 굳이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후회.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달라. 어떤 일에 열정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내게 열정은 자주 찾아오는 성질의 마음이 아니었다.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즐기는 삶을 살았고, 그렇게 살아왔다.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삼키고, 적당히 타협하는 삶. 


누군가 좋아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여행, 책, 음악과 영화 같은 단어를 읊어보겠지만, 거기에 '열정'을 더한다면 대답은 조금 달라진다. 어떤 일에도 미쳤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당한' 열정만이 내재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다가 주말을 망쳐버리기도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냐는 물음표가 자꾸 생겼다. 

그런 내가 아이슬란드에 챙겨간 것 중 하나가 필름카메라였다. 나와 조금 닮았다고 여겼다. 고장 난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사진 절반이 흐리멍덩하게 나왔지만 괜찮았다. 뜨뜻미지근한 결과물을 보며 그 시간을 추억했다. 더 좋은 카메라로 찍은 더 좋은 사진들보다 마음이 기울었다. 


허술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남았다. 사진을, 사람을, 풍경을, 책과 글과 아이슬란드와 아이슬란드가 궁금한 당신을. 아이슬란드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조금씩 다가가길 권해본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듯이, 필름카메라 뷰파인더에 가만히 눈을 대듯, 느긋한 마음으로 숙소 문을 열고 나서 땅을 밟는 기분으로. 어딘가에 미쳐있지 않아도 괜찮은 나와 당신의 여행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될 테니까. 












필카감성




20일간 이탈리아여행 다녀왔어요.

다녀와서 아이슬란드 필카 사진을 갑자기 찾을 겨를이 없어 예전에 올렸던 인스타 링크 연결합니다. :)



이전 10화 언제까지 나를 증명해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