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밀가루 구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
쿠바에서 보내는 편지 #3
From Linda, 2019.05.02
에린아, 여기 시간으로 오늘이 노동절 5월 1일이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노동절은 아주 중요한 날이라 지난 토요일 밤에는 우리 동네 말레꼰 근처에 포장마차가 많이 섰어.
닭고기, 돼지고기 바베큐며 처음 본 쿠바 맥주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시민들에게 제공하더라고.
또 월요일에는 미니 슈퍼에 닭고기가 들어와서 오랜만에 닭고기 팩을 3개나 샀어.
이웃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정부가 아주 머리가 좋다며 노동절이 다가오자 물건을 싸게 조금씩 푼다는 거야.
덕분에 난 쿠바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쿠바 맥주'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 뭐야. 작년 12월에 쿠바에 도착한 이후, 슈퍼마켓에서 쿠바 맥주를 파는 건 볼 수 없었거든. 혹시 맥주를 사려면 길거리 바(bar)나 레스토랑에 가야 해.
쿠바 맥주공장에 재료가 없어서 공장 몇 개를 닫았다고 하더라고.
참, 지난번에 ‘바라데로’에 갔을 때 큰 슈퍼마켓을 갔더니 거기엔 쿠바 대표 맥주 ‘크리스털’이 있길래 냉큼 10개를 사 가지고 왔지.
관광객 천국인 바라데로에는 아바나와 달리 먹을 게 풍부하거든.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쿠바’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버튼 하나로 살 수 있던 물건들이 무척 구하기가 힘들고 또 이 나라 물가에 비해서 엄청 비싸기까지 해.
조단의 어머니 즉, 나의 시어머니는 닭고기를 살 때마다 줄을 4~5시간 서 있다가 사셨다고 하더라고.
닭고기 전에는 식용유가 그랬고, 한동안 소금도 그랬대.
난 아직도 이 나라 슈퍼마켓에서 밀가루를 사 본 적이 없어.
이 모든 게 쿠바 정부가 돈이 없다며 돈을 빌리고는 갚지를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 물론 미국의 엠바고가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작년 말에 브라질 대통령이 자본주의 출신으로 바뀌면서 의료진 문제로 쿠바와 관계가 틀어졌고, 또 밀가루 파동까지 나 버려서(브라질에서 수입) 밀가루 구하기가 너무나 힘들어. 가끔 눈에 보이면 냉큼 사야 하는데 그 ‘냉큼’의 기회가 아직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어. 그래도 다행인 건 난 원래 밀가루를 많이 먹진 않는다는 거야.
간혹 시장에서 ‘부추’나 ‘쪽파’를 발견할 때면 한 단을 사 가지고 와서 전을 해 먹는데 그럴 땐 밀가루 없이 계란으로만 부치거든. 사실 이게 영양가는 더 있고 맛도 꽤 좋아.
쿠바에서 요리할 때는 그냥 있는 재료로만 하다 보니 새로운 경험을 꽤 할 수 있어서 난 이것도 참 좋아!
너무 많아 차고 넘쳐서 뭘 사용할지 망설이는 것보다 몇 개 없어서 가진걸 잘 활용해서 만드는 게 효용성 면에서는 어쩌면 더 나으니까^^
‘계란’ 얘기가 나오니 안 할 수가 없네. 계란은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필수 식품이라 이 나라 전체에 계란이 없었을 때에는 나도 조금 힘들더라고.
그래서 그때는 집에서 닭 키우는 사람이 제일 부럽기까지 했어. 한 달을 넘게 계란을 못 먹다가 가끔 먹으면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런데 요즘엔 계란을 마음껏 먹어. 시장에서 불법으로 파는 장소를 알게 됐거든. 계란이 필요하면 시장에 가서 계란 30개를 한국돈으로 육천 원을 주면 살 수 있어.
쿠바에서는 합법적으로만 살 수가 없어서 가끔 이렇게 암거래를 해야 원하는 걸 얻을 수가 있어.
경찰들도 이런 현실을 잘 아니까 이런 걸로 큰 문제를 삼는 것 같지는 않아. 만약에 문제를 삼아서 걸리면 감옥행이겠지만.
지금 노동절 오전 열 시여서 티브이에서 혁명광장에 가득 모여있는 인파들을 보여주네. 조단 말로는 낮 열두 시까지는 큰 거리에 차가 못 다닌다고 해.
방금 뉴스에서 전 세계 노동절 행사 장면이 지나갔는데, 한국이 잠깐 나와서 조단이랑 너무 반가워서 둘이 쳐다보곤 서로 웃었어:-)
우린 오늘 몇 개의 집을 보러 가기로 부동산(한국 부동산과는 많이 다른 듯 하지만)과 약속이 되어있어.
백 개를 훨씬 더 보고 나서 제대로 된 집을 못 찾자 조단도 결국은 에이전시를 찾아서 도움을 구하게 된 거야.
작년 12월 1일에 도착했으니 오늘은 우리가 쿠바에 둥지를 튼 지 6개월째의 시작일이기도 해.
그래서 이젠 좀 빨리 자리를 잡고 싶은데 집들이 모두 1959년 혁명 전에 지어진 거라(올드 아바나에는 몇 백 년 된 건물들이 수두룩-올해 아바나 건국 500주년) 건물 상태를 잘 봐야 해. 한국에서 수도 없이 집을 봤던 (집 구하기 베테랑인) 나도 이 곳에서는 기준이 달라서 조단의 의견을 더 존중하게 돼.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다.
다음 편지에서는 에린이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으니 에린이도 멀리서나마 우리가 좋은 집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줘!
노동자의 날을 축하하며!
한국에서 보내는 편지 #3
From Erin, 2019.05.01
이렇게 카카오톡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쿠바 소식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제부터 나는 한국 일기를 쓰기보다는 언니 편지에 대한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 소식만으로 답장을 보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쿠바에서 보내는 편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잖아.
한국에서도 오늘은 노동절이야. 근로자의 날이라고도 해. 공무원이 아닌 기업의 회사원들은 정정당당하게 하루를 쉬는 날이야. 만약 정상 출근으로 근무할 경우에는 하루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은 '모든' 기업에서 근로자의 권리(?)를 찾는 건 힘들어 보여.
한국은 5월 1일 수요일을 기점으로 5월 황금연휴 기간이 다가오고 있어. 많은 직장인들이 중간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나거나 고향 부모님 댁에 갈 예정인 것 같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잖아. 이번 어버이날엔 오랜만에 엄마 아빠에게 작은 카드를 쓸 예정이야. 언니는 애교 많은 막내딸이라 한국에 있을 땐 그런 걸 잘했겠지만 나는 의외로 집에서는 무뚝뚝한 장녀라 표현을 잘 못하고 지내. 항상 마음은 쓰고 있지만. 이상하지?
표현하는 사람을 원하면서도 정작 나는 '엄마, 아빠 내 맘 알지?' 로만 일관하는 아이러니.
한국은 이제 봄과 여름의 중간 계절로 접어들었어. 스치는 바람결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날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 잦아서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이 바람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
언니의 글을 읽고 나도 어제, 오늘 식단을 떠올려 보았어. 한국에 있을 때도 건강한 재료로 요리하는 걸 좋아했던 언니와 달리 나는 요리 문외한이지만, 어쨌든 필요한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감사할 줄도 몰랐던 것 같아.
언니가 언급한 밀가루와 계란, 그리고 치킨이나 맥주도 없어도 되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보다가도 막상 눈 앞에 없으면 귀하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맥주 없는 슈퍼마켓은 절대 상상할 수 없어!)
한국에서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언니를 다시 한번 존경해. 그곳에서의 방식을 받아들여 고스란히 언니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부족한 것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불평하기는커녕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그 마음, 나도 실천해봐야겠어!
#생각을다시생각해보기
새로 만난 에이전시와 집 구하는 일이 잘 풀리길!
P.S.
요즘 화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어. 여인초와 고목나무 잎사귀가 잘 자라. 하나, 둘 늘어나며 키도 커지고. 물 줄 때마다, 잎사귀가 하나씩 자라날 때마다 예쁜 말을 해주고 있어. 참, 혜리가 줬던 그 작은 스투키에서도 더 작은 새 잎들이 자라나는거 있지?
언니 서울 집에도 큰 화분이 여러 개 있었는데...
쿠바에서도 식물을 키우고 있으려나?